12월의 여름휴가, 풀문 파티와 코팡안 라이딩

    풀문(Full moon)파티의 발생지, 에메랄드 빛 바다와 아름다운 열대 우림의 산악지대가 있는 태국 남부의 섬 코팡안(Koh Phangan). 혹독하게 추웠던 12월 한국의 추위를 잠시 탈출해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근심 걱정 1%도 없는 완벽하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번 태국여행은 시작은 2014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시 개포동 양재천 어느 계단. 조현 기자와 만나면 항상 많은 얘기를 하지만 그날의 대화 주제는 여행이었다. 축약해서 얘기하자면 ‘따뜻한 날이 좋다, 근데 이제 곧 겨울이다, 역시 추운 건 싫고 따뜻한 게 좋다, 그럼 겨울에 태국으로 여행이나 가자’였다.

     

    파라다이스 섬으로 모여드는 각국의 젊은이들

     

    나도 여행을 좋아하지만 철저하게 내수용이라 한국 밖을 나가 본적이 별로 없었고, 항상 다닐 때 혼자서만 여행을 다녀 봤지 누군가와 동행하며 여행을 해본 적도 없었고, 무엇보다 재미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우린 바로 티켓을 예매했다. 그렇게 태국 여행은 시작됐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콧속은 습한 기운과 사우나 냄새로 가득 찼다. 확실한 계획과 숙소 예약 같은 건 사전에 하고 오지 않았고 급할 것도 없었기 때문에 교통이 막히고 비행기가 연착돼도 웃으면 웃었지 미간이 찌푸려지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리드미컬하게 방콕에 도착 후 적당한 곳에 숙소를 잡고 밥을 먹고 난 후 이번 여행의 메인인 코팡안을 가는 교통편을 예약했다. 방콕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저녁 우리는 나름대로 미지의 섬인 코팡안 행 야간버스에 탑승했다.

    12시간이라는 장시간 버스 타보기도 처음이었으나 설렘이 있어서인지 그렇게 먼 거리로 느껴지지 않았다. 화창하다 못해 쨍쨍한 날씨는 심박수를 상승시키기에 충분했다. 코팡안 선착장에는 각 국, 각 동네 대표로 논다 하는 배낭을 짊어진 젊은 유목민들로 가득했다.

     

    취향에 따라 원하는 해변으로 각자 흩어진다

     

    추운 한국을 뒤로하고 태국 도착

    짐칸을 앉을 수 있게 개조된 트럭 택시를 타고 우리들의 목적지인 핫린 해변으로 이동했다. 사실 나는 여름의 해변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 여름의 해변은 마치 세렝게티 초원과도 같아서 사건사고가 빈번이 일어나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여름해변을 경험해 본적이 없다. 그런데 여름 바다를 해외에서 보내게 되다니! 한국은 한겨울인데 12월의 여름 바다라니!

     

    가격대 성능비 우수한 핫린 리조트

     

    목적지에 도착하고 익숙한 발걸음을 따라 해변이 보이는 숙소로 이동했다. 신기했다. 2014년 9월 달 개포동 양재천에서 이야기하던 그 곳에 정말 와 있게 될 줄이야!

    숙소에 짐을 풀고 해변이 보이는 프론트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 했다. 조현 기자가 코팡안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 설명을 할 때에 들었던 생각은 이렇게나 문화적으로 오픈 된 나라가 또 있을까 싶었던 것이었다. 정작 태국에 오면서 태국이란 나라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해 보니 그저 한국보다 물가가 싸다는 것과 365일 덥다는 거, 옹박, 사와디캅 정도가 전부였다.

    특히 여기 코팡안은 현지인들 보다는 세계 각국에서 파티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넘쳐 났다. 보통 수도에서 버스로 14시간, 배로 4시간 걸리는 거리라고 한다면 한적한 시골 이미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데 여기 코팡안은 정 반대. 방콕보다 더 뜨거웠다. 샌님 같아 보이는 허여멀건 한 살을 태우기로 했다. 5분 즉석요리처럼 완성.

     

    핫린 리조트에서 바라본 해변

     

    핫린(Haad rin) 해변에서의 시간

    코팡안의 풀문 파티는 세계 3대 파티중 하나다. 1990년대 섬의 남부 린노쿠 비치에서 보름달이 뜬 밤에 작게 시작됐던 이 파티는 점차 젊은이들이 몰리면서 세계적인 파티로 급부상했다. 밤새도록 테크노, 트랜스, 드럼 버스, 힙합 등의 신나는 음악들이 신나게 흘러나오는, 진정으로 놀 줄 아는 사람들의 파티다. 매월 15일 주기로 파티가 진행되다 보니까 마을 자체에 파티가 없는 날에도 다양한 인종, 연령, 성격의 사람들로 항상 들떠있는 분위기다. 무드 좋은 해변, 그리고 버킷칵테일, 온풍기를 틀어 놓은 듯한 바람, 밤인데도 밝은 하늘, 그리고 사람 잡는 음악.

    가격대 성능비 우수한 핫린 리조트

     

    우리들은 전날 과하게 살을 태워서 입은 화상 때문에 격하게 놀지는 못하고 음악이 잘 들리는 적당히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명상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 날 뜬금없이 숨 참기 내기를 했었는데 지는 사람이 한국에 돌아갈 때 선물짐을 가지고 들어가는 거여서 삼세번 숨 참기 대결 같은 유치한 짓도 했었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숙소로 걸어 들어 갈 때는 전사자들이 속출해 있었다.

    완벽한 풀문이다
    이 분위기로 아침까지!

     

    핫린 해변에서 눈여겨봐둔 바이크를 렌탈하는 데에 성공했다. 기종은 엔듀로 모델인 가와사키 KLX250. 하루 렌탈비 15,000원. 바이크를 탄지 7년이 됐지만 속력을 내는 것과 과격한 코너링은 즐기지 못하는 성격이다. 내 주변 라이더들은 무릎이 가려우면 손으로 긁지 않고 유명산으로 가는 지인들이 많은데, 나도 배워 보고 싶었으나 바이크에서 휠체어로 기변할 것 같아서 엄두를 못내는 성격이다.

     

    너로 정했다

     

    그렇게 속력 내는 것과 무관하게 여행수단으로서의 바이크를 좋아하는 편이다. 사실 조현 기자랑 바이크를 타면 이런 부분이 잘 맞는다. 그래서 이번 코팡안 라이딩도 무조건 안전지향 라이딩을 하기로 했다.

    어찌됐든 해외에서의 첫 바이크 여행이라니! 여기는 팔당 칼제비 서킷이 아니다. 퇴근하고 압구정 맥도날드에 모여서, 어드레스타고 전속력으로 팔당 가서 칼제비 먹고, 아라이 헬멧에 아웃 포커싱으로 사진 몇 장 때려 박고 오던 때와는 스테이지도, 도로 사정도, 사람도 다르다.

    끝없는 야자수와 산 속 계곡 탐험

    우린 출발하기 전에 바이크에 기름을 넣었다. 주유소 보다 도로 곳곳에 와인병에 기름을 넣어서 파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소믈리에가 된 것처럼 때깔 좋은 놈으로다가 하나 골라 선택하니 레니게이드를 닮은 주인 아저씨께서 친절하게 기름을 보충해 주셨다. 기름통이 비어 있었는지 3쿼터 끝난 농구선수가 게토레이 마시듯 벌컥벌컥 들어갔다.

     

     

    선두는 조현 기자가 서기로 했다. 난 여러 가지 사정상 바이크를 2년 가까이 타지 못했다. 그래서 얌전히 뒤를 따라가기로 했다. 속력을 내는 것 보다 여행수단으로서의 바이크를 즐기자는 우리였지만, 도로무늬까지 외울 정도로 칼제비 서킷에서 단련된 조현 기자는 택배를 받으러 현관문으로 달려가는 모습처럼 신나 보였다. 반면에 난 읍내 장보러 가는 할아버지처럼 수더분하게 즐겼다.

     

     

    가는 곳 마다 야자수다. 한국의 전봇대보다 더 높이 솟아 오른 야자수와 코코넛을 보면서 달리는 도중에 ‘코코넛이 떨어져서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떨어져 있는 야자수는 있어도 떨어지는 야자수를 보진 못했다.

     

     

    섬의 특성상 언덕과 내리막길이 정말 심했다. 언덕을 올라가면 하늘과 바다가 보이고 내리막길이 시작되면 ‘이 앞에 길이 있을까?’ 정도로 느껴질 만큼의 절벽 같은 내리막길의 연속. 한국에서는 쉽게 경험해 볼 수 없는 타입의 길이었다. 롤러코스터 같은 길을 여러 번 지나고 방파제처럼 생긴 곳에 도착했다. 눈이 시릴 정도로 쨍했던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먹구름이 밀려왔고 세찬 비가 다가오는 게 보였기에 지붕이 있는 곳에서 비를 잠시 피해서 가기로 결정했다.

     

     

    비를 피하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예전 생각이 났다. 지금의 조현 기자는 로얄엔필드 컨티넨탈 GT를 타면서 바이커의 멋을 뽐내지만, 그가 바이크를 타기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땐 125cc 스쿠터에 외장 스피커가 달린 속칭 ‘에어리언 카울’이라는 것을 장착한 바이크를 타는 것이 바람이라고 했었는데, 그 시절과는 다르게 지금은 여기서 빌려주는 반모는 자세가 안 나온다며 한국에서 부터 가장 아끼는 헬멧을 여기까지 챙겨온걸 보면 이제는 바이크 생활의 수준이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덧 비가 멈췄다. 후끈후끈하던 아스팔르 열기가 가라앉고 기분 좋아질 만큼 상쾌해진 바람이 우릴 반겼다. 계속 큰 길을 따라 달리기 보다는 천천히 주변 구경을 하면서 흥미가 있는 샛길로 들어가 보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 숲속 한가운데에 다른 바이크들이 주차가 되어 있고 표지판에는 폭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바이크에 내려서 트래킹을 시작했다. 큰 기대 없이 들어간 그 곳엔 해안가와는 다르게 조용하면서도 평온한 분위기가 펼쳐져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펭 폭포로 걸어가는 중

     

    퇴근하고 사당역에서 만나 송탄 미쓰리 버거를 먹으러 125cc 스쿠터의 스로틀을 풀로 휘감던 그 때와는 전혀 다른 여유 있는 구성의 라이딩이었다. 습한 날씨 덕분에 찝찝했지만 계곡물에 머리를 담굴 수 있어 행복했다. 이것이 바로 자연식 수랭 시스템.

     

    사실 이번 태국여행은, 여행이라는 접시 위의 여러 가지 반찬 중 바이크가 있었을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너무너무 즐겁고 신이 났다. 해는 어느 덧 넘어가고 어디선가 밥말리의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여행을 기억하는 방법엔 사진 말고도 음악을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장소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면 그 여행이 끝나고 길을 걷다가, 혹은 우연하게 들어간 장소에서 그때 들었던 노래가 흘러나오면 자연스럽게 영상처럼 그 장소 그 시간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짧은 봄날 일주일 동안 피었다 지는 벚꽃처럼, 짧기 때문에 다음이 기다려지고 기억에 남는 시간들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달려 보고 싶다.

     


     

     

    Credit

    글/사진  장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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