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한 대자연 속으로, 모토 히말라야 2023 (1편)

    다시 히말라야로

    MOTO HIMALAYA 2023

    “당연히 와야죠, 아니 꼭 다시 올 거예요”
    지난해 모토 히말라야를 완주한 후 다짐한 말이 현실이 되었다. 다시 한 번 고산병에 시달리면서도 내내 미소가 지어질 만큼 히말라야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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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모토히말라야에 참가했을 때 사실 별다른 기대가 없었다. 히말라야는 인도 북부 어디쯤인가 있는 산맥 정도라고만 알고 있었고 장소보다는 바이크를 타고 오프로드를 신나게 달리는 걸 더 기대했을 정도다. 하지만 모토히말라야를 완주했을 때 나는 히말라야와 완전히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지금까지 가봤던 곳 중 어디가 최고였어요? 라고 물어오면 조금의 고민도 없이 ‘히말라야’라고 대답했다. 히말라야는 그 어떠한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웅장한 스케일과 연출하나 없음에도 눈물이 흐르게 만드는 대자연이 있다. 이를 두고 그림 같은 풍경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난 이보다 아름다운 그림은 본적이 없으니까.

    다시 히말라야

    딱 1년 만에 다시 히말라야에 도착했다. 올해 모토히말라야를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의아한 반응이 많았다. 지난 투어에서 고산병으로 고생했던 것을 아는 사람들의 걱정 어린 이야기와 지난해와 같은 코스를 다시 가는 것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스스로도 걱정되었다. 고산병보다는 두 번째 경험이 첫 경험의 강렬함보다 못할까봐 걱정이었다. 혹여나 질리진 않을까, 내 기억이 미화된 것은 아닐까?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라다크(Ladakh) 지역의 중심인 레(Leh) 공항에 도착하던 순간, 비행기 창밖의 풍경은 이미 내가 기억하고 있던 히말라야의 모습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두 번째라 더 좋았다. 처음 왔을 때는 달리는데 급급해서 주변을 두루 살펴보지 못했다. 하지만 한 번 달려 본, 아는 길을 달리게 되니 주변을 좀 더 꼼꼼히 살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팀원 중 한국인은 단 둘이었던 지난 투어와 달리 전원 한국인으로 구성된 이번 팀과 함께 달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고소적응

    히말라야 투어는 고소적응으로 시작해서 고소적응으로 끝난다. 해발 3,500미터에서 시작해 5,000미터를 넘나드는 여정을 겪으면 누구나 고산병 증세가 올 수 있다.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서 급성 고산병(AMS)이나 고소폐부종, 고소뇌부종 등의 질병이 생기면 산을 내려가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데 레는 이미 3,500미터, 그러니까 델리로 돌아가서 치료를 받으며 일정이 끝나길 기다려야하는 것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방비 상태로 3,500미터에 던져졌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꽤 준비된 마음가짐으로 레 공항에 내렸다. 하지만 기억보다 숨쉬기는 더 힘들었다. 그새 한 살 더 늙어서 그런가?(웃음) 그래도 지난 해 배웠던 심호흡을 적극 활용하며 비교적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우리가 심호흡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실제로는 그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다. 폐 깊은 곳까지 공기를 불어넣는 진짜 심호흡은 고소적응에 가장 중요하다. 여기에 충분한 물이 필수다. 이곳에서 탈수는 치명적인 두통을 동반한다.

    첫날은 운동도, 술도, 담배도 금지된다. 지난해에 비해 고소적응에 하루의 시간이 더 주어진 덕분에 레의 고도에 충분히 익숙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첫 날은 숙소에서 그대로 골아 떨어져서 삭제되어 버렸고 둘째 날은 레 시내 관광으로 가볍게 몸을 풀었다. 지난해와 주행일정은 같지만 전후에 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덕분에 레가 좀 더 친숙해졌고 이제는 지도 없이도 레 시내를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몸 풀기 투어

    셋째 날 아침. 고소적응을 마치고 드디어 첫 라이딩이다. 레에서 약 3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인더스 잔스카 합류점이 오늘의 목적지다.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 일행들 모두가 기대감으로 한껏 상기된 표정이다. 드디어 7일간의 환상적인 라이딩이 시작되었다. 올해 역시 우리의 발이 되어줄 바이크는 로얄엔필드 히말라얀이다. 인도의 도로는 여전히 복잡하고 클랙슨 소리로 혼란하지만 어쩐지 마음만은 편안해진다. 인도의 클랙슨은 경고가 아닌 차량 간의 대화수단이다. 추월 할 때도, 양보해줘서 고맙다고 인사 할 때도, 수시로 빵빵거리는 게 이곳의 교통예절이다. 한국 팀 모두 환경에 대한 적응이 상당히 빨랐다. 그러고 보면 인도의 환경보다 한국이 더 거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도는 보기에 정신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 나름의 규칙이 확실하게 잡혀있고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륜차에 대한 배려가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다.

    레 도심을 벗어나자 쭉 뻗은 도로를 달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인더스강과 잔스카 강이 모여 하나의 물줄기로 흐른다. 인더스강과 잔스카 강의 색이 달라 두 물줄기가 뚜렷하게 구분된다. 이 인더스 강이 그 유명한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이며 이 강의 이름을 따서 영국인들이 인디아라고 부른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바라트(Bharat)이라는 이름이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종종 쓰이고 있다. 돌아오는 길은 산길로 돌아가는 오프로드를 살짝 더해 더 재밌는 루트로 달렸다. 우리의 페이스가 빨라서일까? 첫날의 투어는 너무 순식간에 끝나 버렸다.

    아쉽지만 내일부터 본격적인 투어가 시작되는 만큼 체력을 아껴둘 필요도 있다. 베이스캠프에 돌아와서 차량에서 아쉬웠던 부분의 정비를 의뢰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우리의 정비는 이브라지가 담당했다. 뻑뻑했던 스로틀케이블은 새것으로 교체했고 레버 높이를 내 몸에 딱 맞췄다. 바이크가 한결 다루기 편해졌다. 출력이 조금 약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오랜만에 타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다.

    카르둥라를 넘다

    이튿날 아침, 일찍부터 출발을 서두른다. 오늘은 레를 떠나 카르둥라를 넘어 누브라 밸리로 향하는 날이다. 카르둥라(Khardung La)는 해발 5,600미터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도로다. 건강한 사람도 15분 이상 머무르면 대부분 고산병 증세가 시작되는 높이다. 나 역시 지난해 카르둥라 정상에서 고산병 증세가 시작되었고 결국 산소통 신세를 져야했던 굴욕의 장소다. 하지만 올해는 나름 잘 적응하고 있었기에 큰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카르둥라 초입에서 바이크가 시동이 간헐적으로 꺼지더니 갑자기 야생마를 타듯 출력이 널뛰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정비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연료펌프 문제라는 진단을 받았다. 연료펌프를 교체해야하는 상황, 오늘의 라이딩을 통으로 날려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진다.

    속전속결 야전 정비의 매력

    이브라지는 담담한 표정으로 바이크 뒷 시트에 올려 맨 가방 끈을 풀었다. ‘아 이대로 바이크를 차에 싣고 가려나보다’ 하고 생각하는 찰나 시트를 제거하고 능숙하게 연료탱크까지 분리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협동해 연료탱크를 수직으로 세우고 구멍 몇 개를 손가락으로 막은 채 연료펌프 신품을 가져와 교체한 뒤 순식간에 재조립한다. 이 과정이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히말라얀의 야전 정비성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다시 달리기 시작하니 이게 웬걸. 출력이 훨씬 좋아졌다. 조금 뒤처진 것을 만회할 수 있을 정도로 신나게 달려서 일행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고소적응에 무난히 성공한 덕분에 지난해에는 10미터도 걷지 못하고 내려와야 했던 카르둥라 정상에서 여기저기 걸어 다니고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숨이 차서 헉헉 거리긴 했지만.(웃음) 그래도 시작이 좋다 보니 더 나은 투어가 될 것이란 자신감이 생긴다. 카르둥라 정상에서 누브라 밸리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은 포장이 완료되어 거의 대부분의 구간이 도로로 바뀌었다. 덕분에 작년에는 두통에 쫒기듯 내려오며 보지 못했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다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버 라이더으니도 이번 투어에 함께했다

    누브라 밸리

    카르둥라를 내려와 누브라 밸리(Nubra Valley)로 가는 길은 또 새롭다. 습지와 사막이 펼쳐지고 강을 따라 굽이치는 절벽 길을 달리면 누브라 밸리에 도착한다. 그리고 누브라 밸리가 시작되는 디스킷 마을 언덕 위에는 디스킷 곰파(Diskit Gompa, 불교 수도원)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지역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명당에 아래를 굽어 살피는 모습의 거대한 불상이 모셔져있다. 탁 트인 누브라 밸리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는 다시 바이크를 타고 누브라 밸리의 좀 더 깊숙한 곳에 위치한 헌더(Hunder)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곳이 정말 신기한 점은 산과 산 사이의 계곡에 거대한 사막이 있고 개울 하나를 사이에 끼고 완전한 사막과 습지가 마주보고 있다. 이상하고도 신기한 풍경이 감탄을 자아낸다.

    판공초로 가는 길

    이번 투어에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루트가 있었다. 바로 누브라 밸리에서 샤욕(Shyok) 강을 끼고 판공초로 가는 길이다. 지난해에는 강물이 불어나서 도로가 폐쇄된 탓에 가보지 못했다. 대신 창라와 타그랑라의 해발 5,000미터가 넘는 고개를 두 개나 넘어서 가야했다. 하지만 올해는 원래의 루트로 가게 된다. 오전 루트는 거의 비슷했지만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새로운 길이 나온다. 히말라야가 놀라운 점은 모든 지역이 각자의 개성이 있고 각각 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어느 산은 보라색, 또 어느 산은 붉고, 다른 지역은 하얗다. 사막도 늪지대도 호수도, 비슷한 곳 없이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니 지루할 틈이 없다. 샤욕 강을 따라 달리는 길은 풍경도 좋았지만 곳곳에 작은 도강과 쭉쭉 뻗은 오프로드 등 주행의 재미가 상당히 좋았다.

    반면 판공초로 가는 길은 아쉬움도 있었다. 탕쎄에서 판공초로 향하는 길에 접어들면 기암괴석들이 도로 주변을 장식해 진짜 화성을 달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멋진 곳이 나온다. 그런데 이 길이 일년 만에 모두 정비되어 큰 도로를 깔기 위한 기초공사가 한창이었다. 길가에 늘어선 바위들은 싹 치워지고 곳곳의 도강 포인트도 기초공사와 함께 전부 사라졌다. 정비를 마치면 분명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판공초의 풍경을 즐길 수 있겠지만, 모험을 찾아 온 우리에게는 김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에 호숫가에는 전봇대가 길게 늘어섰다. 이 전봇대 덕분에 캠프에 전기가 들어오겠지만 아쉬운 마음이 더 커진다. 너무 빠르게 흐르고 있는 히말라야의 시간을 잡고 싶었다.

    짧아진 루트와 길이 좋아진 덕분에 목적지인 판공초에는 이른 오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판공초(Pangong Tso)는 길이가 130킬로미터나 되는 긴 호수이며 그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아직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다. 원래 바다 속이었던 곳이 밀려 올라와 해발 4,400미터에 호수로 만들어진 곳이라 물에는 염분이 있고 독특한 생태계를 가지고 있어서 연구 가치도 큰 곳이란다. 캠프에 일찍 도착한 덕분에 판공초의 아름다움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었던 점은 좋았다. 해가 지는 판공초의 아름다움을 느긋하게 즐겼다. 캠프파이어에 둘러 앉아 각자 자기소개 시간도 가졌다. 이야기와 함께 어느새 깊어진 밤. 하늘을 올려다 보니 은하수가 진하게 하늘을 수 놓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똥별이 끊임없이 우주 쇼를 펼친다. 우리가 히말라야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했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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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에 계속>


    글/사진 양현용
    취재협조 로얄엔필드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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