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벤처에서 스포츠 투어러, 할리데이비슨 팬아메리카 1250 ST

    149마력의 레볼루션 맥스 엔진, 17인치 온로드 휠, 짧아진 서스펜션 트래블, 그리고 12kg 줄어든 차체 중량까지 수치만 봐도 ‘ST’의 방향성은 명확하다.


    2021년 출시한 할리데이비슨 최초의 어드벤처 바이크 팬아메리카. 국내에서는 아쉽게도 그리 인기를 끌지 못했다. 하지만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어드벤처 투어링 모델 중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고 현재도 상위권에 랭크하고 있는 등,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2025년에는 라인업에 새롭게 ST모델을 추가했다. 팬아메리카가 국내에 처음 출시하던 2021년, 온로드와 오프로드 모두에서 시승했을 당시 여러모로 충격이었다. 할리데이비슨에게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들을 완전히 깨부수는 성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에도 이 바이크에 스포츠 투어러 콘셉트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볼루션 맥스 1250 엔진은 스포츠 바이크를 다루듯 회전수를 끝까지 채워가며 달릴 때 더 매력적인 엔진이었기 때문이다.

    팬아메리카의 온로드 주행성능에 대해서는 사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할리데이비슨은 팬아메리카를 모토 아메리카 슈퍼훌리건 클래스에 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는 클래스를 아주 씹어 먹고 있다. 올해는 1위부터 5위까지가 전부 팬아메리카가 독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행 성능을 그대로 이어받은 모델이 바로 팬아메리카 ST다.

    스포츠 투어러

    기존의 팬아메리카와 가장 큰 차이점은 전후 17인치 온로드 휠을 장착했다는 것이다. 어드벤처 바이크에 17인치 휠을 장착하면 꽤 괜찮은 조합이 된다는 것은 두카티 멀티스트라다와 BMW XR시리즈를 보면 알 수 있다. 스포츠 성능에 초점을 맞춘 바이크들이 가장 널리 사용하는 휠 사이즈를 그대로 적용했다. 여기에 제동성능을 높이기 위해 320mm대구경 플로팅 디스크로 교체하고 작아진 휠에 맞춰 스포츠 타입의 프런트 펜더를 더했다. 팬아메리카 고유의 디자인은 유지하면서도 윈드쉴드 높이를 낮추고 스모크 컬러로 변경해 스포티함이 더욱 강조되었다.

    차체는 팬아메리카와 공유하지만 간결해진 구성, 경량 휠 등으로 차량 전체 무게를 12kg줄였다. 비로소 팬아메리카의 강력한 149마력 엔진을 도로 위에서 제대로 써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프레임은 물론 엔진과 프런트 포크, 그리고 전후 휠까지 블랙으로 칠했으며 여기에 새로운 그래픽으로 통일감을 더했다.

    주목할 점은 초기의 팬아메리카가 가지고 있던 자잘한 문제점들이 거의 다 해결이 되어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어드벤처 바이크에 대한 첫 도전이었기에 완성도, 특히 대거 추가된 전자장비와 소프트웨어의 완성도가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세대를 거치면서 거의 다 해결되어 이제는 완성도가 제법 높아졌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팬아메리카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독특해서 호불호가 갈렸던 디자인이었다. 나는 원래부터 디자인에 높은 점수를 줬다. 비슷비슷하게 닮아가는 어드벤처 시장에서 홀로 독보적인 생김새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개성이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지고 받아들이기 수월해졌는데 ST에서는 조금 더 심플하고 가볍게 바꾸니 “엇. 이거 꽤 근사해 보인다.”

    뛰어난 주행성능

    주행 성능은 기대가 컸다. 일반 팬아메리카를 탈 때 이미 뛰어난 온로드 성능을 확인했었고 여기에 17인치 휠까지 더했으니 더욱 잘 달릴 거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예상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팬아메리카와 팬아메리카 ST가 얼마나 다른지에 초점을 맞춰서 테스트를 진행했다. 바이크 위에 앉으면 느껴지는 첫인상은 바이크가 확 작아졌다는 것이다. 휠이 작아지며 실질적인 차량의 크기도 작아졌지만 시트도 깎여서 시트고도 낮아진데다가 살짝 좁아진 핸들바와 윈드쉴드의 크기까지 줄어들었으니 체감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확실히 작다. 첫인상만큼 주행성능 전반의 느낌도 달라졌다. 어드벤처 바이크 특유의 성큼성큼 걸어가는 느낌에서 스포츠 바이크 특유의 한발 앞서 가려고하는 민첩함이 더해졌다. 휠베이스는 1570mm로 줄고 트레일은 95mm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노면에 바짝 붙은 듯한 안정감과 동시에 민첩한 회두성을 보여준다. 폭발적인 가속성능과 날렵한 코너링이 더해져 주행의 재미가 좋다. 브레이크는 브렘보의 레디얼 캘리퍼와 320mm 플로팅 디스크 조합으로, 코너링 ABS와 함께 완벽한 제동감을 선사한다.

    팬아메리카의 성능 자체만 두고 보면 무난한 편이다. 어드벤처 바이크로는 결코 나쁘지 않은 성능이었지만 스포츠 투어러로 경쟁자를 바꿔서보면 요즘에는 꽤 흔한 성능이기에 특별함까지는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특별함은 페이스를 낮춰 천천히 달리기 시작하면서 드러났다. 톱기어에서 엔진의 회전수가 낮아지며 V트윈 박자를 쪼개낼 때 머릿속에 ‘맞다! 이거 할리데이비슨 이구나’라는 생각이 확 스쳤다. 부드러운 V트윈 필링이 리어휠을 매끄럽게 돌리는 감각은 할리데이비슨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과 본질적으로 닮아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단단하다고 느꼈던 서스펜션이 일반적인 할리들보다는 길게 움직이며 매끄러운 주행감각을 돕는다. 이건 다른 스포츠투어러가 가지지 못한, 흉내 낼 수 없는 팬암ST만의 것이다. 할리데이비슨의 헤리티지가 이렇게 튀어나올 줄이야.

    퀵시프트는 변속이 다소 거칠게 느껴지는데 이마저도 할리데이비슨 특유의 텅텅 거리는 변속감과 닮아있다. 퀵시프트는 낮은 회전수에서 오히려 매끄럽게 작동했다. 기본적으로 퀵시프트의 킬타이밍이 일반적인 바이크들에 비해 낮은 회전수에 맞춰진 느낌이다. 빠르게 가속 할 때는 조금 거친 변속 느낌도 양념처럼 느껴진다. 기존의 팬아메리카와는 이름이 같다는 것 말고는 상당히 다른 감각의 바이크였다. 그리고 예상보다 이름의 ST, 즉 스포츠 투어링에 꽤 잘 어울리는 바이크였다. 이건 할리데이비슨 같지 않아? 아니면 크루저만 만들던 할리데이비슨이 스포츠 투어링을 얼마나 이해하겠어? 이런 생각들 하는 라이더라면 한번 꼭 타보길 바란다. 고정관념이 한방에 날아가는 경험을 하게 될 테니까.

    양현용
    사진 양현용, 윤연수
    취재협조 할리데이비슨 코리아


    TRACK TEST

    윤연수

    할리데이비슨 팬아메리카 ST를 타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KIC)을 찾았다. 할리데이비슨 팬아메리카가 전 세계에 공개됐을 당시만 하더라도 새롭게 출시한 어드벤처 모델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확했다. 팬아메리카는 그저 오프로드를 달리기엔 너무나 스포티한 레볼루션 맥스 1250 엔진을 품었다는 것이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진행됐던 할리데이비슨 DRT 행사에서 가장 빠른 랩타임을 낼 수 있는 모델을 고르라고 했을 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팬아메리카 ST를 골랐다. 팬아메리카의 엔진을 기반으로 스포츠성이 강화된 모델이라면 단연 할리데이비슨의 그 어떤 모델보다 트랙에서 빠를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완벽하게 적중해 모든 참가자 중 가장 빠른 랩타임을 기록했다.

    편안하고 빠른 스포츠 투어링

    팬아메리카 ST는 상체가서는 포지션으로 편안한 자세가 취해진다. 한정된 공간에 딱 맞게 자세를 취해야 하는 스포츠 바이크에 비해 훨씬 느긋하고 여유롭다. 서킷의 직선주로에서도 전방의 윈드 스크린 덕분에 상체를 바짝 숙일 필요도 없다. 스로틀을 끝까지 열었다면 스모크 윈드 스크린을 통해 보이는 전방의 코너까지 차분하게 기다리면 된다. 최고출력 150마력은 246kg의 묵직한 차체를 박력 넘치게 몰아간다. 1, 2단 기어에서는 전방 휠이 통통 튀며 아스팔트에 타이어 마크를 남길 정도로 넉넉한 출력을 발휘한다. 강한 제동으로 프런트 포크와 타이어가 힘껏 눌린 상태라도 시선 처리만 잘하면 에이펙스를 향해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차체 강성은 꽤 무른 편이라서 스포츠 바이크처럼 재빠른 움직임은 불가능하지만 편안함 속 빠른 페이스로 달리기엔 최적의 세팅이다. 순정 퀵시프터는 초반 가속력을 그대로 탄력 붙여 톱 기어까지 빠르고 정확하게 작동한다.

    할리데이비슨은 단순히 크루저 브랜드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민망해질 만큼 9,000rpm까지 엔진을 돌리며 변속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미국의 모토아메리카 슈퍼 훌리건 클래스에서 팬아메리카의 활약이 단번에 이해가 된다. 특히 감속 상황에서 기어를 빠르게 내리면 백토크로 인해 리어 휠이 잠기려 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rpm을 적극적으로 띄워 대응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주행 성능은 팬아메리카 이름 뒤에 붙은 ST(스포츠 투어링)가 충분히 인정될 만한 완성도다. 딱 한 가지 아쉬움을 꼽자면, ABS의 개입 정도를 제어할 수 없다는 점이다. 팬아메리카의 경우 오프로드 주행을 고려해 리어 ABS를 해제하는 기능을 탑재하고 있는데 팬아메리카 ST로 트랙을 달리다 보니 ABS 개입이 조금 늦춰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타이어, 브레이크, 차체 완성도가 높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 스포츠 바이크를 다루듯 눈도 깜빡이지 않으며 완전히 몰입한 자신을 깨닫고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믿음의 투어러

    팬아메리카 ST는 트랙에서도 아쉬움을 찾기 어려운 모델이었다. 전방에 17인치 휠을 탑재했다는 것 이외에도 콘셉트에 맞춘 서스펜션 세팅과 낮은 윈드 스크린, 스포츠 투어링 타이어까지 용도에 맞게 조화를 이뤘다. 물론, 이 모델로 트랙을 달리는 라이더는 극히 드물겠지만, 트랙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걸 알고 나니 더욱 큰 믿음과 함께 스포츠 투어링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이모델을 선택할 이유
    도로와 트랙 모두에서 가장 빠른 할리데이비슨

    HARLEY-DAVIDSON PANAMERICA 1250 ST

    엔진 형식 4스트로크 V형 2기통
    보어×스트로크 105 × 72(mm)
    배기량 1,252cc
    압축비 13 : 1
    최고출력 150hp / 9,000rpm
    최대토크 127Nm / 6,750rpm
    시동방식 셀프 스타터
    연료공급방식 전자제어 연료분사식(FI)
    연료탱크용량 21.2ℓ
    변속기 6단 리턴
    서스펜션 (F)47mm 도립포크 (R)모노 쇽 스윙암
    타이어사이즈 (F)120/70 ZR17 (R)180/55 ZR17
    브레이크 (F)320mm더블디스크 (R)280mm싱글디스크
    전장×전폭×전고 2,240×895×미발표
    휠베이스 1,580mm
    시트높이 825mm
    건조중량 230kg
    판매가격 2,790만 원


    양현용, 윤연수
    사진 양현용, 윤연수
    취재협조 할리데이비슨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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