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얀과 함께 달린 히말라야 1100km (2)

    히말라얀과 함께 달린 히말라야 1100km

    MOTO HIMALAYA 2022

    인생 가장 아름다운 경험. 고산병으로 인한 두통마저도 행복했던 히말라얀 투어의 두 번째 이야기

    Day 4
    누브라밸리 > 판공초
    총 주행거리 240km

    누브라밸리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상쾌했다. 공기가 너무나 투명해 온 세상의 원근감이 사라진 다. 오늘의 목적지는 해발 4350미터에 위치한 라다크 지역에서 가장 큰 호수인 판공초다. 원래의 계획은 누브라 밸리에서 샤욕강을 끼고 가는 루트였지만 불어난 강물로 도로가 폐쇄된 탓에 우회로로 달려야했다. 당연히 거리도 더 멀어지지만 진짜 문제는 창라 고개를 포함해 해발 5000미터를 넘는 고갯길을 두 번이나 넘는 다는 것이다. 어제 카르둥라의 악몽이 떠올라 겁이 덜컥 났다. 특히 두통과 오프로드의 조합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기에 고산병 약을 챙겨먹고 진통제도 미리미리 준비해두었다.

    주행하면서 심호흡에 무척 신경 쓰면서 달렸다. 이번 투어에서 심호흡의 중요성을 깨우쳤다. 깊은 심호흡 몇 번에 산소포화도가 10%는 높아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강물이 불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그 때문인지 가는 내내 크고 작은 물길을 만났다. 그래도 나름 방수에는 철저히 대비한터라 도강을 만나면 반가웠다. 슬쩍 젖어도 좋았다. 건조한 라다크의 바람은 금세 뽀송뽀송하게 말려주니까. 물만 보이면 좍좍 가르며 달렸다. 일정에 맞추기 위해 오전 8시 반에 출발해 최소한의 휴식 시간만 가지며 달렸다. 

    도로 폐쇄 때문에 고갯길로 차가 몰려 교통정체도 있어서 시간이 더 걸린다. 마지막 휴식 포인트에서 이미 오후 다섯 시가 가까워진다. “우리 이러다 설마 해가 지고 밤에 도착하진 않겠죠?” 야맹증 때문에 밤눈이 어두운 박쌤(박지훈, 유튜브 더스티노 채널 운영중이며 활동명은 ‘박쌤’이다)은 오늘 일정을 듣고 야간주행에 대해 불안해했다. 판공초가 가까워질수록 주변 풍광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게 변한다. 노을에 물들면서 정말 화성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모습에 홀려 잠시 세우고 싶지만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야속할 정도다. 사막구간을 지나 호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 쯤 해가 완전히 졌다. 박쌤의 야맹증 이야기가 생각나 일행들은 먼저 보내고 그의 앞에서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달렸다. 호수가 코앞이니 금방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자신만만하게 내 불빛만 보고 따라오시라고 큰소리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한 사실은 이 호수는 길이가 130km나 되고 우리의 목적지는 그 중간 즈음에 있다는 것이다. 노면을 살피며 수차례 물을 갈랐다. 온 신경을 곤두세운 상태로 한 시간 가량 달리다보니 멘탈이 터지기 시작한다. 그냥 차량에 실어올 걸 괜히 내가 앞장선다고 해서 오히려 그를 위험한 상황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박쌤 역시 이번 마을도 지나치면 그냥 그 자리에 멈출 생각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둘이 힘을 합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Day 5
    판공초 > 레

    총 주행거리 175km

    판공초에서의 아침은 역시 묵직한 두통으로 시작되었다. 캠프가 위치한 곳이 이미 해발 4,400미터쯤 되다보니 산소가 부족한 결과다. 하지만 햇살이 비춘 판공초의 풍경은 감탄을 절로 자아낸다. 판공초는 인도와 중국에 걸쳐있는 호수로 마치 바다 같은 모습이다. 모습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염분을 포함한 소금 호수다. 원래 바다 밑이었던 땅이 4,400미터까지 밀려 올라와서 호수로 만들어진 것이 신기했다. 오늘은 다시 레로 돌아가는 일정이라 마음도 가볍다. 

    출발 시간도 늦는 만큼 좀 더 여유롭게 판공초의 풍광을 즐기고 난 뒤 바이크에 올랐다. 어제 밤의 길고 힘들었던 길을 그대로 다시 거슬러 나간다. 이렇게 짧고 편안한 길이었나 싶다. 그리고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판공초의 풍경에 감탄했다. 어제는 그냥 지나쳐버렸던 창라 고개를 다시 거슬러 오르며 바쁘게 지나느라 놓쳤던 풍경을 만끽한다. 확실히 인간의 적응력은 대단하다. 4,400미터에서 하룻밤을 보냈더니 5,000미터 역시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게다가 가벼운 두통정도는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카페에서 쉬며 한 잔씩 마시는 짜이(인도식 밀크티)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도로 옆으로 건물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면 레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도시의 분위기가 더해지며 코너를 돌아가는 중 차 한 대가 중앙선을 불쑥 넘어온다. 맞은편 도로에 큼직한 낙석이 떨어진 탓에 그것을 피하려는 차량이 넘어온 것이다. 인도는 중앙선 개념이 거의 없다 보니 항시 조심해야한다. 찌부러진 축구공만한 돌덩이가 도로 한가운데 떡하니 놓여있으니 참으로 위험해 보였다. 이틀 만에 돌아온 레는 이제 완전히 대도시처럼 느껴진다. 차도 사람도 너무 많다. 호텔에 도착하자 나를 반겨준 와이파이와 3일만의 온수샤워에서 현대문명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다.

    Day 6
    레 > 초모리리
    총 주행거리 220km

    오늘의 목적지는 초모리리 호숫가의 코르족 마을이다. 아침 일찍 출발해 도심 외각에서 주유 후 투어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주유소에 도착하자 박쌤의 바이크 프런트 휠이 완전히 찌그러져 있는 게 아닌가. 그 원인이 바로 어제 레로 돌아오는 길에 봤던 그 커다란 돌덩어리를 밟은 것이다. 그래도 넘어지지 않아서 천만 다행이었다. 걱정스러운 상태였지만 미케닉이 능숙하게 앞바퀴를 교체해 바로 주행할 수 있게 수리해준다. 초모리리 호수까지 가는 길은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 전화는 물론 전기도 없는 그야말로 오지다. 인더스 강줄기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에서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느긋한 주행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새로운 이벤트가 발생했다. 불어난 물 때문에 다리는 유실되고 도로가 강이 되어버린 것이다. 

    깊이를 알기 힘든 거센 물살에 망설이고 있는데 로드를 담당하고 있는 아르제이가 나를 보며 고갯짓으로 먼저 가라고 한다. 걱정스레 들어가긴 했지만 가장 깊은 곳이 무릎 살짝 위에가 올 정도의 깊이라 다행히 빠지지 않고 뽀송뽀송한 상태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운이 나쁜 몇몇 라이더는 중간에서 넘어지고 그중 서너 대의 바이크가 침수되어버렸다. 그중 한 대는 깊은 곳에서 완전히 물속에 빠져버린 탓에 헤드라이트 속까지 물이 가득 차버렸다. 과연 이걸 살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정비시간이 꽤 걸릴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바로 점심식사가 준비된다. 이것도 다 계획의 일부였나? 그리고 식사를 마치니 모든 바이크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이정도면 거의 랠리 팩토리팀 수준의 지원 아닌가!(웃음) 이제 몸에 익을 만큼 익어버린 히말라얀은 오프로드 위해서 정말 잘 달린다. 한참을 시원스레 달려 초모리리의 길목인 키아가르초에 다다르자 탁 트인 풍경이 환영하듯 맞이해준다. 덕분에 초모리리까지 정말 행복한 기분으로 달릴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초모리리의 코르족 마을에서 호수 곁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전화는 물론 전기마저 발전기를 돌려야 쓸 수 있는, 그야말로 문명세계와 동떨어진 삶을 사는 코르족 사람들의 순수함에 감동받았다. 겨울에는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지는 척박한 환경에서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경외심마저 들었다. 하지만 저녁식사를 위해 마을 공동 식당에는 큼직한 LCD TV와 함께 플레이스테이션4가 놓여있다. 그렇지, 플레이스테이션은 못 참지.(웃음)

    Day 7
    초모리리> 초카
    총 주행거리 85km

    오늘은 아침 일찍 초모리리 호숫가에서, 그리고 오후에는 키아가르초 주변에서 사진과 영상 촬영시간을 가졌다. 이건 찍는 대로 인생샷이다. 오늘은 총 주행거리가 85km에 불과해서 마음이 느긋하다. 지형상 초모리리 바로 위가 초카다. 

    이름마다 들어있는 초 (정확히는 Tso로 초와 쏘 사이 발음)는 호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히말라야 풍경을 볼만큼 봤고 이제 이 이상의 풍경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 쯤 초카에에 도착했다. 그리고 보란 듯 내 예상이 빗나가서 오히려 좋았다. 

    눈 쌓인 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소금호수와 침식퇴적이 반복되며 만들어진 마블 같은 지형은 감탄사를 자아냈다. 저녁 식사시간에는 깜짝 만남이 있었다. 로얄엔필드의 실질적인 총괄 디렉팅을 맡고 있는 시드 랄과 로얄엔필드 CEO와 엔지니어, 마케팅 총괄까지 총 출동한 것이다. 

    이들 역시 하루 종일 바이크를 타고 이곳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리고 함께 이 지역의 아름다움에 대해 공감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달도 뜨지 않아 은하수가 쏟아질 듯 선명하게 보인다. 덕분에 제대로 된 은하수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Day 8
    초모리리 > 레
    총 주행거리 160km

    오늘은 히말라야에서 마지막 라이딩 날이다. 초카를 떠나 레로 향한다. “마지막 날이니까 쉽게 돌아가는 루트인가봐요” 하지만 그럴 리가 있나. 직진하면 레로 가는 국도이지만 우리는 좌회전으로 사막 위를 달린다. 푹신한 모래가 군데군데 튀어나오기 때문에 잠깐만 방심하면 균형을 잃는다. 달리는 내내 괄약근에 잔뜩 힘이 들어갈 만큼 찌릿찌릿한 구간이다. 

    그리고 사막 위에서 운 좋게도 이곳에서 새로운 히말라얀의 테스트를 진행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어제 밤에 만났던 로얄엔필드 본사 직원들이 여기 온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구나. 이를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로얄엔필드의 매니징 디렉터인 시드가 이 테스트 중 영상을 올려 그 존재가 공식채널을 통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에서 제대로 테스트되고 있는 히말라얀을 보니 기대감이 더 커진다. 사막 지형을 지나 이번에는 타그랑라를 넘었다. 이쯤 되면 눈치 챘을 텐데 이름의 ‘라’는 고개를 의미한다. 라다크라는 지명 자체가 고개(라)가 많다는 의미라는데 정말 어딜 가나 해발 5,000mm는 기본이다. 

    투어가 끝나갈 때 쯤에야 고소적응이 완전히 끝나버렸다. 정상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한달음에 내달려 다시 레로 돌아왔다. “꼭 집에 온 것 같네요” 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투어가 시작되었던 라루크 호텔 지하 주차장에 다시 바이크를 주차시키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모토히말라야의 여정이 끝났다.

    모토히말라야는 모험에 대한 내 마음가짐,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꿔주고 바이크를 타는 원초적인 즐거움까지 돌려놓은 그야말로 인생투어였다. 그리고 많은 친구를 선물해준 고마운 투어이기도 하다. 사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까지만 해도 수많은 출장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이 여정이 내게 이정도로 큰 의미가 될 줄 몰랐다.“이곳에 만약에 다시 올 수 있다면 올 겁니까?” 내가 두통과 고산병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던 박쌤이 물었다. “당연히 와야죠, 아니 꼭 다시 올 거예요”


    양현용
    사진 양현용, 로얄엔필드
    취재협조 로얄엔필드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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