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윤연수 기자의 시승기를 통해 CB1000F를 소개했다. 당시에는 빠듯한 일정에 비까지 내렸고, 담당이 아니었던 만큼 직접 타볼 수 있는 시간도 짧았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모델이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다시 만난 CB1000F는 와인딩로드와 고속 영역을 중심으로 주행 성능을 집중적으로 확인했다.

CB1000F는 처음 공개됐을 때부터 직접 타보고 싶었던 모델이다. 이 바이크의 진짜 성능이 궁금했다. 특히 마른 노면의 와인딩로드에서의 선회 감각과 운동성능이 궁금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CB1000F에 올랐다. CB1000F의 첫인상은 분명 레트로다. 클래식한 원형 헤드라이트와 연료탱크, 길게 뻗은 시트와 테일 디자인까지 한눈에도 CB 시리즈의 연결고리가 느껴진다. 하지만 달리기 시작하면 레트로 무드는 훌훌 날아간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최신 슈퍼네이키드인 CB1000 호넷과 엔진과 프레임의 기초를 공유하는 모델이다. 하지만 주행감각, 그 맛은 꽤 달랐다. 어떤 부분이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걸까?
CB1000 호넷은 리어가 바싹 들린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지만 CB1000F는 더 길고 낮은 서브프레임을 적용해 리어 라인을 낮췄다. 캐스터각과 트레일, 휠베이스는 호넷과 동일하지만 풋패그는 앞으로 이동했고 시트는 뒤쪽으로 옮겼다. 핸들바 역시 31mm 높이고 라이더 쪽으로 당겼다. 지오메트리보다 라이더의 위치와 무게 배분을 바꿔 전혀 다른 주행 감각을 만든 것이다. 시트가 뒤로 이동한 만큼 라이더의 시야에 연료 탱크와 프런트 둘레가 넉넉하게 들어오며 더 큰 바이크를 타고 있다는 감각을 준다. 주차된 CB1000F를 바라볼 때보다, 시트 위에 앉았을 때 차체가 더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로 달리면 크기는 점점 더 작게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4기통 차량치고는 조향각도 괜찮은 편이라 회전반경도 작게 그릴 수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탔던 바이크 중 가장 역동적으로 달렸다. 부담이 덜어지면서 조작이 쉽고 다양한 상황에서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슬라럼 주행에서 상당히 강점을 보일 것 같은 세팅이다.

이 바이크의 매력에 비하면 정말 작은 옥에 티 정도다.

냉각수 연결 호스가 엔진 중앙을 가로지르는 것도 아쉽다.

다리가 과하게 접히는 일 없이 편안하게 탈 수 있다
부드럽지만 느리지 않다
스티어링 감각은 자연스럽고 엔진의 출력은 매끄럽게 이어진다. 덕분에 와인딩로드에서 차체를 기울여 가는 과정이 무척 부드럽다. 코너에 진입해 원하는 각도까지 바이크를 눕히고, 탈출까지 거침 없는 일획으로 라인을 그려낸다.
특히 기울기에 대한 확신이 드는 점이 좋았다. 라이더가 원하는 만큼 빠르게 기울일 수 있고 그만큼 프런트의 방향 전환도 정확하다. 스티어링이 지나치게 빠르거나 날카롭게 반응하지 않으면서 내가 그리는 라인을 꾸준히 따라간다. 그래서 공격적으로 몰아붙이는 상황에서도 불안감이 없다. 라이더와 바이크의 호흡이 일체화되는 느낌이다. 엔진 역시 다루기 쉬웠다. 스로틀을 열었을 때 출력이 뒷바퀴에 차분하게 전달된다. 그렇다고 반응이 무디거나 느린 것은 아니다. 필요한 순간에는 오른손을 살짝만 더 비틀어주면 충분한 가속력을 꺼낼 수 있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 사실은 과할 정도로 강력한 출력을 전자장비가 충분한 수준으로 다듬어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디튠을 했더라도 이 엔진은 CB1000호넷, 그 이전에 슈퍼바이크인 CBR1000RR의 엔진에서 파생된 것이다. 스탠다드 모드는 선형적인 출력이 바이크를 몰아붙이기 좋았고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거칠고 발랄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스포츠 모드로 젖은 노면에서 가속하던 중 리어 휠이 미끄러지는 상황이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미끄러짐을 무조건 잘라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차체가 균형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일정 수준의 슬립을 허용하다가 자세가 흐트러질 조짐이 나타나자 출력을 정리했다. 라이더의 즐거움을 지나치게 빼앗지 않으면서 안전망은 남겨둔 세팅이었다. 서스펜션의 기본 세팅은 일상 주행에 충분히 편안하지만 이 바이크가 가진 스포츠 성능을 끝까지 끌어내기에는 살짝 아쉽다. 브레이크 역시 제동력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강한 초기 제동력보다 부드러운 컨트롤에 초점을 맞췄다. 조금 더 단단한 리어의 지지력과 날카로운 제동 반응이 더해진다면 엔진의 성능을 한층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형제 모델인 호넷 SP의 브렘보 캘리퍼와 올린즈 리어 서스펜션이 부러워지는 대목이다. 일본 파츠 회사들이 앞다퉈 CB1000F의 튜닝 파츠를 선보이는 것을 보면 다들 비슷한 생각인가 보다. 거친 주행을 반복하면서 감탄했던 것은 의외로 잘 억제된 발열이었다. 아직 여름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8월이었지만 라이더에게 전달되는 열은 많지 않았다. 리터급 4기통 네이키드라고는 믿기 어려운 쾌적함이다.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속도를 높이면 프런트가 가벼워지며 차체의 안정감이 살짝 떨어진다. 물론 라이더가 충분히 잡아낼 수 있는 수준이지만 의외였다. CB1000 호넷과 비교해 뒤쪽으로 이동한 무게중심과 상체가 세워지는 포지션도 안정성에 영향을 미친다. 속도가 높아질수록 라이더가 받는 주행풍이 커지고 프런트에 실리는 하중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와인딩 로드에서는 부담을 덜어주는 세팅이지만 고속 영역에서는 프런트를 가볍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행성능 전체에 높은 점수를 줄 수있는 것은 이 바이크의 주행이 꽤 재밌다는 것이다. 혼다 바이크는 안정적인 성능과 경제성, 완성도, 내구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반면 재미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박한 평가를 받는 브랜드다. 하지만 CB1000F의 주행을 복기해보면 상당히 재밌었다. 최근 이렇게 화끈하게 달렸던 바이크가 있었나 싶을 만큼 즐겁게 탔다.
CB1000F를 타보기 전 마음에 든 것은 근사한 디자인이었다. 그런데 바이크를 타고 난 뒤에는 엔진의 존재감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출력이 더 높았던 CB1000 호넷보다 그 존재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이 엔진의 존재감은 단순히 배기음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혼다는 CB1000F를 위해 캠샤프트를 새로 설계하고 1·2번과 3·4번 실린더의 밸브 타이밍을 다르게 설정했다. 여기에 두기통씩 서로 다른 직경의 에어 퍼널을 조합해 직렬 4기통 특유의 균일한 회전에 의도적인 맥동을 더했다. 매끈하게 회전하는 직렬 4기통 엔진에 일부러 불규칙성을 더해 과거 카뷰레터 엔진과 비슷한 질감과 소리를 만들었다. 정교한 전자제어를 이용해 오래된 4기통 엔진의 맛을 재현했다는 점이 재밌다. CB1000F는 레트로 디자인 속에 예상보다 훨씬 화끈한 주행 성능을 숨기고 있다. CB1000F의 진짜 실력은 달릴 때 드러났다. 다시 타보지 않았다면 이 바이크의 진짜 실력과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HONDA CB1000F
엔진형식 수랭 4스트로크 직렬 4기통
보어×스트로크 76 × 55.1(mm)
배기량 999cc
압축비 11.7:1
최고출력 124hp / 9,000rpm
최대토크 103Nm / 8,000rpm
시동방식 셀프 스타터
연료공급방식 전자제어 연료분사식(FI)
연료탱크용량 16ℓ
변속기 6단 리턴
서스펜션 (F)41mm 도립 (R)싱글 쇽 스윙암
타이어사이즈 (F)120/70 17 (R)180/55 17
브레이크 (F)310mm더블디스크 (R)240mm싱글디스크
전장×전폭×전고 2,135×825×1,125mm
휠베이스 1,455mm
시트높이 795mm
차량중량 215kg
판매가격 1,598만 원
글 양현용
사진 윤연수
취재협조 혼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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