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면을 지워버리는 투어러, BMW R 1300 RT

    BMW R 1300 RT 노면을 지워버리는 투어러 R 1300 RT는 노면을 지우는 서스펜션과 강력한 박서 엔진, 동승자까지 고려한 편의장비를 갖추고 장거리 투어러의 기준을 다시 높였다.


    R 1300 RT를 국내 미디어 시승회에서 처음 경험했을 때는 몇 가지 의구심이 남았다. 짧은 시간 동안 잘 정돈된 코스를 달리는 것만으로는 이 바이크에 적용된 새로운 기술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특히 ASA는 완성도에 대한 의구심이 남았었다. 이번에는 시내와 고속도로, 와인딩로드를 오가며 장시간 주행했고 뒷자리에는 동승자도 태웠다. 그러자 첫 시승에서 보이지 않던 장점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ASA 다루기

    ASA의 조작 방식은 간단하다. 변속 레버를 밟아 1단을 넣으면 출발 준비를 마친다. 이후에는 클러치만 조작하지 않을 뿐 일반적인 매뉴얼 바이크처럼 다루면 된다. 중립은 1단에서 변속 레버를 길게 밟거나 ASA 버튼을 길게 눌러 선택한다. 클러치 제어는 흠잡을 부분이 없다. 스로틀을 아주 조금만 열어도 클러치를 섬세하게 연결하며, 낮은 속도에서도 구동력이 갑작스럽게 전달되지 않는다. 좁은 골목이나 경사로에서도 다루기 어렵다는 느낌은 없었다.

    변속 레버를 조작하면 레버가 찰깍 움직이는 동시에 변속이 이루어진다. 실제로 레버와 변속기가 기계적으로 직접 연결된 구조는 아니지만 손발에 전달되는 감각은 꽤 그럴듯 하다. 변속 속도도 빨라 일반적인 매뉴얼 바이크를 타는 감각이 상당 부분 남아있다. 클러치 레버가 사라졌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조작 방식에 적응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드라이브 D모드에서는 변속까지 시스템이 맡는다. 변속 자체는 대부분의 바이크에서 퀵시프터를 사용할 때보다 매끄럽다. 다만 라이더가 변속 시점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은 여전히 아쉽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단수가 바뀌면 충격의 크기와 관계없이 몸이 먼저 반응한다. 계기반 표시나 작은 신호음으로 변속 시점을 미리 알려준다면 한층 편안하게 느껴질 것 같다.

    시동을 걸고 출발준비를 마쳤을 때는 매뉴얼모드로 시작해서 편안함을 위해서 D모드를 켜는 것, 보통의 자동화 미션들과는 반대인 진입 순서에서 BMW의 의도가 엿보인다. 이 시스템은 어디까지나 수동변속의 즐거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가속의 여유

    1,300cc 박서 엔진은 최고출력 145마력과 최대토크 149Nm를 낸다. 역대 양산 BMW 박서 엔진 가운데 가장 강력한 수치다. 제원상 정지 상태에서 시속100km까지 가속 시간은 3.7초다. 281kg에 이르는 투어러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상당히 빠르다. 하지만 실제 주행에서는 폭발적인 수치보다 가속의 여유가 먼저 느껴진다. 낮은 회전수에서 스로틀을 열어도 차체를 바로 밀어내며, 추월을 위해 굳이 여러 단을 내릴 필요가 없다. 동승자와 짐을 실은 상태에서도 가속이 둔해진다는 느낌이 적다. 다이내믹 프로 모드에서는 엔진 반응이 빨라지고 차체 자세까지 공격적으로 바뀌면서 전혀 다른 바이크처럼 느껴진다. 큰 윈드실드와 사이드 케이스를 갖춘 투어러인데 가속할 때만큼은 차체 크기를 잊게 만든다.

    가변 에어로다이내믹

    RT의 방풍 성능은 이전부터 이 클래스의 기준으로 꼽혔다. 신형은 단순히 바람을 많이 막는 데 그치지 않고 라이더가 원하는 만큼 바람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전동식 윈드실드를 올리면 헬멧과 상체에 닿는 바람이 크게 줄어든다. 고속에서도 헬멧 주변의 난류가 적고 상체가 뒤에서 밀리거나 앞으로 당겨지는 느낌도 거의 없다. 윈드실드만 크게 세워 바람을 막으면 라이더 뒤쪽에 저압 영역이 생기면서 등 뒤에서 바람이 밀려드는 경우가 있는데, R 1300 RT는 차체 곳곳의 디플렉터로 공기의 흐름을 정리해 이런 현상까지 줄였다. 측면의 가변 윈드 디플렉터도 유용하다. 위쪽으로 올리면 상체 측면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줄인다. 반대로 아래쪽으로 내리면 라이더 쪽으로 공기를 유도해 더운 날 시원한 바람을 받을 수 있다. 실린더 주변에도 작은 커버가 더해져 있는데 발쪽으로 흐르는 공기와 빗물을 줄인다. 눈에 잘 띄는 장비는 아니지만 비를 맞으며 달려보니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노면을 지우다

    이번 시승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서스펜션이었다. 지금까지 경험한 투어러 가운데 노면의 충격을 가장 능동적으로 지워낸다. 상대적으로 노면 상태가 좋았던 미디어 시승 코스에서는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포장이 거친 도로나 맨홀, 이어진 요철을 통과할 때 차체로 전달되는 충격을 빠르게 정리한다. 특히 과속방지턱을 넘는 순간의 움직임이 놀랍다. 서스펜션이 스트로크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충격을 흡수하면서도 차체가 위아래로 출렁이지 않는다. 부드럽지만 물렁하지 않고, 탄탄하지만 충격이 날카롭게 전달되지도 않는다.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두 성격을 꽤 높은 수준으로 묶어냈다.

    라이더가 별도의 설정을 계속 바꿀 필요도 없다. 차량에 실린 하중과 주행 상태에 맞춰 서스펜션이 스스로 대응한다. 혼자 탈 때와 동승자를 태웠을 때 차체의 움직임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승자를 위한 RT

    R 1300 RT의 탠덤 안정성은 여전히 최고 수준이다. 뒷자리에 사람이 올라타도 차체의 균형이 크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출발과 정지, 저속 회전에서 느껴지는 부담도 예상보다 작다. 주행 중에는 동승자가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으면 혼자타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다.

    정차하면 차체가 낮아지는 기능은 동승자를 태웠을 때 더욱 유용하다. 혼자 탈 때는 발이 조금 더 편하게 닿는 정도지만, 동승자가 몸을 움직이는 상황에서는 안정감의 차이가 크다. 무거운 투어러는 정차한 순간 작은 균형 변화도 부담스럽다. 양발이 확실히 닿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저속에서도 ASA가 클러치를 알아서 제어하기 때문에 라이더는 스로틀과 브레이크, 차체의 균형에만 집중하면 된다. 동승자와 짐까지 더해진 장거리 투어에서 이 편리함은 단순히 왼손이 편한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달리는 라운지

    10.25인치 와이드 TFT 디스플레이는 계기반과 내비게이션, 오디오와 차량 설정을 한 화면에 담는다. 표시되는 정보가 많지만 화면 면적이 넓어 시인성은 좋다. BMW 특유의 멀티 컨트롤러와 버튼이 많아 처음에는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구조를 익히고 나면 주행 중에도 대부분의 기능을 왼손으로 조작할 수 있다.

    라이딩 어시스턴트에는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전방 충돌 경고, 차선 변경 경고, 후방 추돌 경고가 포함된다.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앞차와 설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가속과 감속을 조절한다. 여기에 ASA까지 함께 사용하면 장거리 고속도로에서 라이더가 해야 할 일이 크게 줄어든다. 집중력을 빼앗는 장비가 아니라 불필요한 조작을 줄여 주변 상황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장비다.

    동승자를 위한 장비도 상당하다. 라이더와 동승자 열선 시트는 물론 동승자용 열선 그립과 탑케이스의 열선 등받이까지 있다. 너무 더운 여름이라 테스트해볼 기회는 없었지만 조금만 쌀쌀한 날씨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헤드라이트 프로는 기울기와 차체 자세, 속도에 따라 조사 방향과 범위를 바꾼다. DCA가 가속과 제동에 따라 차체 자세를 바꾸더라도 헤드라이트가 이를 보정해 조사 범위를 일정하게 유지해줄 수 있다.

    필요할 때 넓어지는 수납공간

    용량 조절 기능이 적용된 사이드 케이스도 실용적이다. 기본 상태에서는 차체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도심 주행에서도 크기가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좁은 골목에서도 사이드미러가 통과한다면 케이스까지 무리 없이 빠져나갈 수 있다. 사이드 케이스를 확장하면 수납공간은 크게 늘어나지만 차체 폭에 대한 부담도 확실히 커진다. 따라서 주행 중 계속 확장해두기보다는 목적지에 도착한 뒤 헬멧과 장비를 보관할 때 더 유용해 보인다. 탑케이스까지 조합하면 풀페이스 헬멧 네 개를 넣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하다. 정차 시 라이더와 동승자의 헬멧은 물론 재킷과 장갑까지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보관할 수 있다.

    투어러의 기준

    짧은 첫 시승에서 R 1300 RT는 다소 복잡하게 느껴졌다. 자동변속기와 차고 조절 장치, 전자제어 서스펜션을 하나씩 의식하다 보니 바이크보다 기술이 먼저 보였다. 하지만 장시간 달리고 나니 이 모든 장비가 향하는 목적은 단순했다. 더 편하게 출발하고, 노면 충격을 줄이고, 동승자와 짐을 실은 상태에서도 안정적으로 달리기 위한 것이다. R 1300 RT는 크고 무거운 투어러다. 그런데 출발하는 순간부터 그 크기와 무게를 계속 덜어낸다. 첫인상보다 오래 탔을 때 훨씬 좋은 바이크다. 투어러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평가는 없다.


    양현용
    사진 양현용/윤연수
    취재협조 BMW모토라드코리아 bmw-motorr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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