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을 미친 듯이 달리고, 오프로드 파크에서 흙먼지를 날리고, 경찰들의 호위 안에서 도로를 자유롭게 만끽했다. 이 모든 것을 단 하루에 즐기는 것. 이게 바로 할리데이비슨 DRT다.
지난 7월 16일, 말레이시아 세팡 국제 서킷에서 할리데이비슨 DRT 익스피리언스(이하 DRT)가 진행됐다. 올해로 4회차를 맞이하는 DRT는 더트, 로드, 트랙의 약자로 할리데이비슨과 함께 오프로드부터 온로드, 심지어 트랙을 달리는 매력적인 행사다. 아시아 국가의 저널리스트와 인플루언서가 초청을 받았고, 총 10개국에서 24명의 라이더가 모였다. 국내에서는 나를 포함한 바이커즈랩의 김남구 기자, 유튜버 89브로스, 할리데이비슨 코리아의 엠버서더 노홍철이 함께했다. 주행은 6명씩 총 4개의 조로 나뉘어 정확한 일정 속에서 움직였다.
DIRT
더트 세션은 세팡 서킷 근교에 위치한 세팡 베이 13에서 진행됐다. 세팡 베이 13은 이륜차와 자동차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어드벤처 트레일, 정글 트레일, 고속 랠리 코스, 플랫 트랙, 점프 코스 등이 마련되어 있다. 할리데이비슨의 대표적인 어드벤처 모델인 팬아메리카 1250 스페셜 2025를 타고 달리며 그 매력에 흠뻑 젖었다.
준비된 팬아메리카는 스탠딩 포지션을 고려해 핸들바를 조금 더 높게 세팅하고 타이어는 미쉐린의 아나키 와일드 타이어를 장착했다. 그 외에는 완벽한 순정 상태였는데 출발 30초도 채 되지 않아 깜짝 놀랐다. 새로운 팬아메리카 스페셜 2025 모델은 스로틀 반응성이 대폭 개선되면서 라이더의 의도에 맞게 움직인다. 팬아메리카 특유의 전방 위주 무게 중심 세팅이 까다로운 코스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만든다. 핸들 바가 높아진 만큼 조작 직결감은 떨어지지만, 라이더는 확실히 더 편안한 자세로 오프로드 충격을 대응할 수 있다. 또한, 아나키 와일드 타이어는 온로드와 오프로드 5:5 비율의 성향인데 개인적으로 19/17인치 어드벤처와의 조합을 좋아한다.
적당한 쿠션감과 함께 일정한 트랙션을 제공하고 미끄러짐 대한 피드백이 정확한 편이다. 코스 중에는 코너 방향과 반대되는 기울기에 작은 돌이 뒤섞인 오르막 구간(굉장히 까다롭다)도 있었는데 오프로드를 처음 경험하는 라이더들도 대수롭지 않게 주파할 만큼 팬아메리카의 기본기와 친절함이 좋다. 코스를 익히고 난 후 인스트럭터와 1대1로 자유 라이딩을 즐겼다. 라이더의 실력에 맞게 이끌면서 팬아메리카를 제대로 테스트하고 경험할 수 있게 도와줬다. 나는 마치 엔듀로 바이크를 다루듯 점프하고, 물살을 가르고, 윌리와 드리프트를 마구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DRT 메인 포토그래퍼에게 붙잡혀 DRT 행사 이미지를 뽑아내기 위한 반복 동작을 해야 했다. 사실 국내에서는 팬아메리카 런칭 행사 당시 온로드 성향의 순정 타이어로 오프로드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 정도의 진한 매력을 경험할 수 없었다. 이번 더트 세션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팬아메리카는 강렬한 엔진에 비해 오프로드 성능은 그저 그런 모델일 뻔했다. 팬아메리카는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신나게 달릴 수 있는 리얼 어드벤처가 맞다.
ROAD
온로드 세션은 24년식과 25년식을 모두 포함해 대략 15대의 기종이 마련됐다. 각자 원하는 모델을 타고 중간지점까지 달려가며 테스트한 뒤, 돌아올 때 다른 모델을 타고 즐기면 되는 일정이었다. 출발 전 간단한 브리핑이 진행됐는데 도로 환경에 따라 1열과 2열로 바꿔가며 달릴 예정이며 현지 모터사이클 경찰 4대가 동행할 예정이니 편히 달리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마음속으로 경찰이 동행하면 각 모델을 제대로 테스트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나는 새로운 25년식 소프테일 시리즈의 로우라이더 ST와 브레이크아웃을 타기로 정했다.
서킷을 벗어나자마자 우측에 잔뜩 멈춰 선 차량을 발견했다. 경찰이 우리 그룹이 달리는 코스를 미리 달려가 다른 일반 차량이 합류할 수 없도록 막아서는 것이었다. 자, 정확하게 말하자면, DRT 속 로드 테스트는 도로의 온갖 변수를 모두 신경 쓸 필요 없이 오로지 할리데이비슨에 집중하여 즐기는 시간이란 뜻이다. 로우라이더 ST는 새로운 117 하이아웃풋 엔진이 탑재되면서 5,900rpm까지 짜릿하게 회전한다.
높게 올라온 두 팔과 약간은 어정쩡한 듯 매력적인 하체 포지션이 그 짜릿함을 배가시킨다. 주변에서 클럽 스타일 모델을 타는 걸 보면 ‘저 장르의 매력은 뭘까?’ 싶었는데 단번에 이해됐다. 173Nm의 최대 토크로 순식간에 가속하는 즐거움과 그에 비해 느슨함을 넘어 건방지고 오만한 듯한 포지션이 오묘하게 어우러진다. 그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즐거움에 신나게 소리를 지르며 달렸다. 중간지점까지 바닥에 발을 단 한 번도 내리지 않고 도착했다. 앞서 말했지만, 경찰 모터사이클 4대가 함께 했다는 건, 최소한 내 앞의 2개 교차로는 통제 중이었다는 뜻이니 당연한 일이다.
이어서 브레이크아웃으로 바꿔탔다. 로우라이더 ST가 괴짜 같은 멋짐이었다면 브레이크아웃은 그냥 멋지다. 광폭 리어 타이어의 존재감부터 떨어지는 빛에 따라 곳곳에서 빛나는 크롬 파츠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낮은 무게 중심에 양팔과 다리를 전방으로 쭉 뻗고 달리기 시작하면 이 세상에 더 갖고 싶은 게 떠오르지 않을 만큼 자유롭고 만족스럽다. 34도 레이크가 만드는 차퍼 스타일 코너링 감각은 대중들이 공감하고 누구나 즐기기 좋은 수준이다. 완벽하게 통제된 도로 위에서 빠르게 가속하면 리어 휠이 순간적으로 노면을 놓치며 슬립음을 낸다. 다음 신호를 막기위해 나를 추월하던 경찰이 엄지를 건네줬다. 새로운 4인치 계기반 속 바늘은 오직 속도를 표시하는데 ‘엔진이 조금 힘들어하는 건가?’ 싶어서 바라보니 더 이상 올라갈 숫자가 없는 모양이었다.
TRACK
지금까지 말레이시아에 몇 차례 방문한 바 있는데 이렇게나 화창했던 적은 없었다. 항상 간헐적으로 비가 쏟아졌고, 세팡 서킷을 완벽한 드라이 컨디션으로 달릴 수 없을 정도로 국지성 호우가 심했다. 그런데 이번 DRT는 시작부터 끝까지 완벽한 드라이 컨디션이었다. 오예.
시작은 로드 글라이드 CVO 2024 모델이었다. 한국에서 시승 차량이 마련되어 테스트해 본 경험이 있었지만, 서킷을 달려본 것은 아니었기에 기분이 새로웠다. 밀워키에이트 VVT 121 엔진이 탑재된 만큼 전체 rpm영역에서 풍부한 토크가 이어진다. 꽤 빠른 속도로 달려도 팔꿈치와 정강이에 작은 바람이 두드릴 뿐 피로감이나 두려움이 없다. 브렘보 캘리퍼의 제동 성능도 일품이다. 스트레이트 구간에서 약 200km/h의 속도에서 달리다 단번에 속도를 줄여도 쉽게 지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새로운 팬아메리카 1250 ST에 올랐다. 개인적으로 팬아메리카 1250 스페셜을 처음 시승했을 때 스포츠 투어러 콘셉트도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현대적인 감각의 레볼루션 맥스 1250 엔진은 스포츠 바이크를 다루듯 회전수를 끝까지 채워가며 달릴 때 진짜 매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1250 ST는 프런트 휠이 17인치로 작아지고 서스펜션 트래블이 짧아지면서 핸들링 감각이 날카롭게 변했다. 코너를 돌아나갈 때마다 19인치 어드벤처 특유의 언더 성향이 확연히 줄어들어 더 정확한 라인을 그릴 수 있다. 6.8인치 계기반은 터치를 지원하고 세 가지 프리셋 라이드 모드와 두 가지 커스텀 모드가 있다. 코너링 ABS, 트랙션 컨트롤, 드래그 토크 슬립 컨트롤, 프런트 휠 리프트 완화 기능 등의 전자장비도 모두 갖췄기 때문에 마음 편히 달릴 수 있었고 당일의 개인 베스트랩도 달성했다.
마지막으로 스크리밍 이글 135큐빅인치(2212cc) 스테이지 4 엔진이 탑재된 CVO 로드 글라이드 ST에 올랐다. 이 엔진은 할리데이비슨 전문가들이 설계하고 밀워키에서 처음부터 제작한 것으로 주문 당시 ‘TRACK ONLY’라는 경고문과 함께 건네받았다고 한다. 전용 흡기 시스템, 배기 시스템, 전용 오일 쿨러 시스템 등을 탑재했다. 최고출력 145마력, 최대토크는 194Nm를 발휘한다. 출발할 때 조금 과한 스로틀웍 만으로 리어 휠이 사정없이 미끄러진다. 양산형 모델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배기음을 내는데 이건 단순히 머플러만 교체해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박력이 담겨 있다. 코너를 들어가고 나오는 감각은 순정 모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만약 서스펜션 트래블을 늘려 뱅킹 한계를 높인다면 꽤 빠른 랩타임도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뱅킹 한계가 낮음에도 코너 중간에 스로틀을 전개하는 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토크가 세다. 코너 진입 전에 스로틀을 닫으면 미연소 가스가 배기라인에서 사정없이 터지는데 이는 마치 총소리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흉악하다.
사실, 이벤트의 마지막 세션에 모든 라이더에게 추가 라이딩 기회가 주어진 상태였는데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타버렸다. 누군가도 이 모델을 경험하고 싶을 것이란 생각보다 내가 더 즐기고 싶은 이기심이 앞설 만큼 매력적인 경험이었다. 단 한 가지 아쉬운 건, 대략 20분을 내리 달렸음에도 135 CVO 로드 글라이드 ST를 타는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는 것이다. 뭐, 영상으로 담아놨으니 이후 월간 모터바이크 유튜브 계정을 통해 그 매력을 간접 체험해보길 바란다.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
이번 일정은 한국에 귀국하여 공항에서 주차비를 계산하면서 얼마나 짧고 굵은 시간이었는지 체감했다. 1일 23시간 53분. 한국에서 말레이시아로 날아가 더트, 로드, 트랙을 모두 달리고 다시 한국으로 귀국한 총 시간이 만 2일이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머릿속 할리데이비슨의 이미지, 내가 이해하고 있던 할리데이비슨의 역량과 가치가 대폭 상향됐다. 결과적으로 할리데이비슨은 단순한 크루저 브랜드로 도태되길 원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도전하고 개선하고 발전한다. 누군가 할리데이비슨을 묻는다면,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가능한 브랜드’라 답하겠다
글 윤연수
사진 할리데이비슨 아시아
취재협조 할리데이비슨 코리아 harley-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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