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늑하게 새하얀 설봉이 펼쳐지고, 굽이진 언덕길을 돌아나갈 때마다 탄성이 터진다. 따듯한 햇살이 얼굴을 간질이며 계곡의 시원한 바람이 몸을 휘감아 돈다. 수풀이 빼곡한 임도를 달리며 태고의 신비로움이 깃든 침엽수림을 탐험한다. 도로가 없다 한들 문제 될 것 하나 없다.
독일 뮌헨에서 출발하여 오스트리아의 서쪽을 돌아 이탈리아 북부에서 복귀하는 알프스 투어를 계획했다. 여행의 콘셉트는 ‘노 플랜’. 기본적인 방향은 정하되 세부적인 루트와 숙박 계획은 정하지 않았다. 단지 마음이 가는 대로 알프스를 자유롭게 누비고자 했다. ‘이만큼 가서 여기쯤 묵고, 저만큼 또 달리면 이쯤 되겠지 뭐’ 정도의 계획을 세우곤 4일간의 투어를 함께할 바이크를 렌트하러 뮌헨의 BMW 모토라드 센텀(BMW Mottorad Zentrum)을 방문했다.
투어의 시작
독일 최대 규모 BMW 모토라드 매장인 센텀점은 BMW의 본사와 인접한 곳에 위치해 있다. 매장은 지하를 포함해 3개 층을 사용하며 지하층과 1층에는 현행 모델들의 거의 대부분이 전시되었고, 2층에는 어패럴과 파츠 매장으로 꾸몄다. 바이크 전시장의 규모도 상당했지만, 어패럴 매장은 다양한 라인의 용품들을 한자리에서 둘러볼 수 있어 좋다.
바이크 렌트는 1층 한편에 입점한 BTS(Bike Travel Service) 부스에서 할 수 있었다. BMW의 대부분 모델의 렌트가 가능한데, 이번 여행에는 오프로드 투어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GS 장르를 선택했다. 렌트 비용은 모델과 기간에 따라 다르고, 기간과 거리가 한정된 몇 가지 프로그램 중에서 구미에 맞게 선택이 가능하다. 탑 케이스, 사이드 케이스 등 트렁크는 물론 내비게이션까지도 옵션으로 렌트 할 수 있다. 우리가 선택한 바이크는 R 1200 GS 어드벤처와 F 800 GS. 각각 라이더의 덩치에 맞춘 설정이다. 투어를 위해 채비를 재정비하고 알프스를 향해 남쪽으로 출발했다.
뮌헨에서 출발하여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Salzburg)로 향하는 8번 아우토반에 바이크를 올렸다. 아우토반은 고속 운행에도 무척이나 안정적이었다. 독일 운전자들의 운전 매너와 단순하지만 매우 중요한 규칙-이를테면 추월차로 인 1차로를 이용하는 방법, 우측에서 추월하지 않는 등-이 거의 대부분 지켜지는 덕분이다. 고속도로를 고속도로처럼 이용한 덕분에 두 시간이 채 안되어 오스트리아 국경 인근에 다다랐고, 이쯤 해서 반복되는 고속도로가 지루해질 즘 국도로 빠져나갔다. 구불거리는 도로를 누비니 이제야 비로소 본격적인 투어의 분위기가 난다.
독일을 넘어 오스트리아로
오스트리아를 향해 갈수록 아득했던 산맥들이 가까워진다. 동화 속 풍경 같은 마을 사이로 난 작은 골목길을 지나며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만끽한다. 집집마다 창문에 걸어 놓은 선명한 빛깔의 꽃 화분들을 보니 괜스레 기분이 좋다. 산들바람이 불고 따듯한 햇살이 떨어진다. 들판에는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너른 들판에는 트랙터가 한창 움직이는 중이다. 감상에 젖어 풍경을 바라보는 사이 어느덧 오스트리아에 진입했다. 유럽연합국들 간에는 사실상 물리적인 국경이 없으므로 ‘국경을 넘었다’는 감동은 없었지만, 국경선 표지판을 지나자 미묘하게 분위기가 바뀐다.
잘츠부르크 구도심에 들어가기 전에 공항 근처에 위치한 레드불 행어 7에 잠시 들렀다. 항공기 격납고를 활용한 이곳은 항공기는 물 F1 머신, 랠리 머신, 모토크로스 바이크 등 레드불이 후원한 다양한 장르의 모터스포츠를 한자리에 전시해놓았다. ‘탈것’ 에 흥분하는 이들이라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관람할 만한 곳이다.
잘츠부르크 구도심의 전경이 잘자흐(Salzach) 강을 따라 단정하게 펼쳐진다. 고풍스러운 바로크 풍의 건축물은 자못 평화롭기까지 하다. 잘츠부르크의 잘츠(Salz)는 독일어로 소금을 뜻한다. 서기 700년경부터 암염 채취를 통한 경제가 형성되며 마을이 생겨나 유래된 이름이다. 잘츠부르크는 잘츠부르크 성당과 미라벨 정원 그리고 모차르트의 고향으로 유명하며,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독일에서 출발하는 라이더들에게는 알프스로 향하는 관문 도시의 역할을 한다. 잠시 시내에서 한숨을 돌린 후에 다시 교외로 빠졌다. 시내를 빠져나오자 길은 알프스의 목가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완만한 경사지에는 소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저 멀리 보이는 호수에는 햇빛이 반영되어 반짝인다.
아름다운 풍경을 따라 할슈타트(Hallstatt)를 향해 달려간다. 1시간여를 더 달려 호수가 마을인 할슈타트에 도착한다. 솟아오른 봉오리들이 잔물결 하나 없는 잔잔한 호수를 품어 평온하게 감싼다. 교회의 첨탑이 마을을 수호하듯 서있고 알프스 풍의 소박한 건물들이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석양이 내려앉으며 물 안개가 피어오를 때는 가히 신비로움마저 깃든다. 소소한 아름다움이 사랑스러운 할슈타트의 풍경이다.
알프스의 품 안에서
할슈타트 근방에서 숙박을 계획했지만 숙소를 구하기 어려웠다. 산간지역이었던 탓에 금세 어둠이 깔린다. 서둘러 스마트폰을 이용해 숙소를 찾아본다. 배터리도 떨어져가는 바람에 상세하게 비교할 수 없어 현재 위치에서 약 19km 정도 떨어졌다는 숙소를 덜컥 예약한다. 주소를 찍고 내비게이션에 안내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대 30분으로 예상했던 곳이 한 시간 이상을 달려도 목적지가 나올 기미가 없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할슈타트부터 예약한 숙소까지의 거리는 직선거리로 19km 하지만 실제 주행거리는 80km 이상을 돌아가는 코스였던 것이다. 알프스 산간의 칠흑 같은 어둠을 두 시간 가까이 더 달려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야간 라이딩 준비도 채 하지 못하고 달렸던 터라 피로 누적이 꽤나 심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저렴한 가격에 상당히 좋은 시설의 숙소를 얻었다는 것이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뒤 여독을 풀기 위해 서둘러 잠을 청했다. 아침햇살이 숙소 주변을 밝히자 우리가 왜 그렇게 한참을 돌아야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숙소 정면으로 거대하고 웅장한-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한-산맥이 병풍처럼 솟아있었다. 마치 알프스에 온 걸 환영한다는 듯이 말이다.
들뜬 마음에 서둘러 라이딩 채비를 마치고 그림 같은 풍경 속으로 달려간다. 더 이상 지도도 내비게이션도 필요치 않았다. 도로를 달리다 너른 들판이 나오면 들판을 달렸고, 숲 속으로 향한 오솔길이 보이면 그곳으로 스로틀을 감았다. 가파르게 굽이친 길을 돌 때마다 세상의 풍경이 저만치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아름다운 풍경에 넋이 빠져 한참 바라보다 보니, 어느덧 시야가 쨍해질 정도로 고도가 높다. 저 멀리 하얗게 눈이 쌓인 봉오리가 아득하게 펼쳐지고 우리가 지나온 길이 굽이굽이 산등성이를 둘러싸고 있다. 한참을 또 달리다 보면 도로가 끝나고 흙길이 시작된다. 우리가 GS를 타고 온 이유다. 울창한 숲길을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간다. 공격적으로 업힐과 다운힐을 공략할 것도 없다. 단지 대자연의 풍경의 하나가 되어 그것을 즐기며 나아갈 뿐이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Credit
글 이민우 수석기자
사진 양현용, 이민우
본 기사를 블로그, 커뮤니티, 웹사이트 등에 기사를 재편집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뭍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웹사이트 내 모든 컨텐츠의 소유는 모토라보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