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방식의 열정, 푸조 408 GT

    뉴 408이 푸조의 전성기를 되살려냈다. 푸조의 미래가 지금처럼 밝아 보인 적이 없었다.

    PEUGEOT 408 GT

    프랑스 방식의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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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인은 좋아하는 일을 가리켜 ‘Passion(열정)’이라는 말을 쓴다. 영어와 생긴 것도 같고 의미도 비슷한데, 구어체로도 이 말을 즐겨 사용하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프랑스인들은 개인의 취미와 취향에 관심과 집중도가 높다. 특히 디자인 분야에 열정이 남다르다. 프랑스 디자인하면 패션, 그중에서도 각종 명품 브랜드의 화려함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실제로 프랑스 디자인의 힘은 실용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개성을 중시하는 독창성. 자기표현에 적극적인 모든 방식을 디자인으로 승화한다. 이런 열정에서 만들어지고 디자인된 자동차 브랜드라면 대표적인 것이 푸조다.

    내 과거의 경험에서 발견한 푸조의 매력은 뚜렷했다. 독특한 외모, 실용성을 극대화한 디자인, 직관적인 핸들링과 뛰어난 승차감이 그것이다. 푸조는 차를 만드는 기준이 명확하다. 브랜드의 고집이랄까? 어쩌면 그런 패키징에 능한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됐건 지난 10여 년간의 푸조 차들은 이런 개성이 다소 부족했다. 혁신보다는 고집이 강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2023년형 푸조 408 GT를 타보고 푸조의 매력에 다시 취했다.

    ASSERT YOUR STYLE

    신형 408은 멋진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인간 중심의 제품이다. 겉모습은 크로스오버 SUV 장르를 완벽하게 규정한 것 같다. 신형 408은 푸조 브랜드의 과거는 물론이고, 기존 자동차 시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디자인에 초점을 뒀다고 한다. 해치백과 세단, SUV의 모든 장점을 아우르는 디자인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유연하면서도 구석구석 에지를 살린 라인과 정교한 스타일링을 더해 독특한 분위기다.

    프런트 그릴에 중심에는 사자 머리 형상의 최신형 푸조 엠블럼이 자리 잡았다. 과거의 푸조를 알던 사람도 완전히 새로운 느낌을 받게 할 만큼, 엠블럼 분위기가 변했다. 앞 범퍼 좌우로 사자 송곳니를 형상화한 헤드라이트가 자리한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푸조라는 것을 인지하도록 크고 개성이 있는 디자인이다. 윈드실드와 A 필러를 지나면서 시작되는 지붕은 마치 서핑 보드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매끈하게 뒤로 흘러내린다.

    408의 전고는 1,485mm로 일반 세단과 비슷하다. 반면 높이와 폭에 비해 차 길이(4,700mm)와 휠베이스(2,790mm)가 긴 패스트백 스타일이어서 뒤로 갈수록 볼륨감이 커진다. 뒷 유리창 위로 고양이 귀(캣츠 이어)로 불리는 돌기형 루프 스포일러가 독특하다. 이 디자인은 실제로 후방 와류를 줄여 공기저항계수 0.28cd를 달성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차의 뒤쪽은 둥근 앞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최근 유행하는 쿠페형 SUV처럼, 볼륨감을 달리고 단단해 보이는 마무리다. 마치 컨셉트카에서 보던 것처럼 복잡한 디자인의 19인치 그래파이트 알루미늄 휠도 인상적이다.

    비행기 조종석에서 영감을 받은 아이-콕핏(i-Cockpit) 디자인 실내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겉으로는 차가워 보이지만 인체공학적 설계로 승객을 배려한 따뜻한 공간이다. 직경이 작은 D컷 스티어링 휠과 계기반 상단에 자리한 헤드업 3D 클러스터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푸조는 이미 오래전부터 스티어링 휠 크기를 줄이고 계기반을 더 좋은 위치에 배치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결과가 408에서 완성된 듯하다.

    헤드업 3D 클러스터는 안쪽 디지털 계기반과 반사용으로 제작된 상단 디지털 창 두 개 구조로 만들어져서 운전자 시점에서 마치 3D 화면을 보는 것처럼 작동한다. 계기반 기본 정보창 위에 강조되는 정보들이 앞으로 돌출되어 정보 전달력이 우수하다. 계기반은 앞 창문 근처에 있어서 전방 시야를 유지하면서도 시선을 많이 변화시키지 않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직경이 작은 D컷 스티어링 휠이 계기반과 겹치지 않게, 최대한 아래로 배치할 수 있었다. 크기가 작고 낮은 스티어링 휠은 운전자가 일반적인 자동차처럼 두 손을 살짝 올린 포즈가 아니라 편안하게 내린 상태로 스티어링 휠을 잡을 수 있다. 동시에 급한 회전 조작을 요구할 때도 한결 민첩하다.

    센터패시아 중심에 위치한 10인치 고해상도 모니터는 아이-커넥트라 부른다. 여기에서 일반적으로 자동차 주행의 각종 세팅이나 공조 장치 제어, 스마트폰 연결과 내비게이션 같은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제어한다. 화면 아래 ‘i-토글 디스플레이’라는 전용 디스플레이를 마련해서 홈, 온도조절, 내비게이션, 전화 같이 자주 쓰는 메뉴를 고정시켰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장점만을 살려낸 똑똑한 설계다.

    기어 레버는 검지와 엄지손가락만으로 앞뒤로 움직일 수 있는 버튼 형태. 주행 모드 전환 스위치부터, 주차 브레이크 같은 조작 버튼은 디자인 맥락에 따라 순차적으로 구현된다. 모두 손이 편하게 닿는 위치에 아니, 정확한 위치에 있다. 시승을 했던 GT 트림의 경우 스마트폰 무선 충전, 애플 카플레이 무선 연결,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등 최신형 자동차에서 기대하는 편의/안전장비를 대부분 갖췄다. 또한 앞좌석 가운데 커다란 컵홀더가 두 개나 있다. 사실 프랑스는 앉아서 토론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카페 문화’가 만들어진 본고장이다. ‘프렌치 카페’의 자존심이 너무 고매하여 프랜차이즈 카페라는 것이 들어서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프랑스 스타벅스에서 테이크 아웃이 도입된 것도 고작 10년쯤 됐다. 그만큼 테이크아웃 커피를 위해 컵홀더를 자동차에 굳이 넣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에비앙 같은 생수 페트병을 들고 다니는 것이 자연스럽다. 대용량 컵홀더를 도어 포켓에 두고, 깊고 넓은 센터콘솔 박스를 갖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과거엔 그랬다. 신형 408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An intuitive sense

    무엇보다 408 GT의 가치는 주행 성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차의 모든 움직임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핸들링은 직관적이고 승차감은 훌륭하다. 한마디로 운전하기가 편했다. 앞바퀴 굴림의 풍부한 접지력을 살려 차를 원하는 방향으로 운전하는 맛이 난다. 특히 급한 코너의 정점으로 파고들 때 차의 앞뒤 균형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다. 전자제어 장비는 느긋하게 개입하는 데도 네 바퀴 타이어의 접지력은 일정하다.

    사실 놀라운 것은 이 덩치에 엔진 배기량을 1.2L로 설계했다는 점이다. 1.2 퓨어테크 엔진은 8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부드럽지만 일정하게 출력을 뿜어낸다. 엔진의 최고 출력은 131마력(23.5kg·m)으로 절대 넉넉한 수준이 아니다. 그러나 일단 엔진에 달린 싱글 터보가 바람을 압축하면서 움직임이 한결 가벼워진다. 저속부터 고속까지 속도가 꾸준히 붙는 것이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세팅이다. 초반 가속 페달 반응에 커다란 터보 래그가 분명히 있지만, 전체적으로 민감하거나 신경질적이지 않다.

    8단 자동변속기는 이전 수동기반 전자제어 방식(MCP)이 아니면서도 반응성과 효율성을 모두 챙긴다. 쉽게 말해 이전 푸조의 꿀렁이는 변속 감각이 없다. 그래서 변속은 업/다운 모두 매끈하다. 다만 차의 속도가 줄어서 변속기에 부하가 걸리는 구간에서 예상치 못하게 변속기 충격이 전해지긴 했다. 이 부분은 시승차의 컨디션 문제라 생각되는 부분이라 검토가 필요하다.

    어쨌든, 엔진과 변속기는 상황에 따라 꼭 필요한 만큼 반응했다. 운전자가 편하고 부드럽게 운전할수록 408의 모든 것이 장점이었다. 반대로 거칠게, 그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길 요구할 때는 자동차의 호흡과 다소 엇박자가 났다. 408은 운전 스타일이 정해져 있는 차다. 이 차의 구입을 고려한다면 꼭 그 부분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외에는 외부 소음을 억제하는 능력도 탁월했고, 요철 구간에서 단단한 듯 푹신한 정교한 승차감도 도드라졌다. 무엇보다 확실히 다운사이징 엔진의 덕으로 연비가 탁월했다. 연비를 본격적으로 테스트한 것은 아니지만, 시내 주행 시 리터당 8~9km, 고속 국도에서 리터당 22~23km를 쉽게 달성했다.

    408은 자신의 색깔이 분명했다. 동시에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프리미엄을 거부한다. 남들의 기준에 맞추기보다는 사용자의 취향에 맞는 만족감과 실용주의를 우선시한다. 여기서 얻는 최대의 보상이 바로 푸조가 주장하는 408의 가치다. 똑같지 않은, 아주 개성적인 자동차다. 그런 관점에서 어쩌면 남들의 시선에 맞추는 것에 익숙한 한국 소비자들이 408을 선택할 때 약간의 용기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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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UGEOT 408 GT

    레이아웃 앞 엔진, FWD, 5인승, 크로스오버   엔진 3기통 1.2L 터보   최고 출력 131마력/5,500rpm   최대 토크 23.5kg·m/1,750rpm   변속기 8단 자동   휠베이스 2,790mm   길이×너비×높이 4,700×1,850×1,485mm   복합 연비 12.9km/L   무게 1,455kg   기본 가격 4,690만원


    글 김태영(모터 저널리스트)
    사진 양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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