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랠리 첫 출전, 7박8일 4,800킬로 무사고 완주, 250cc 클래스 우승. 경험 풍부한 성인 라이더도 완주하기 힘들다는 사막의 랠리를 마치고 돌아온 소년의 얼굴에는 앳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30년 몽골랠리 사상 최연소 참가자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윤연수 군과 그의 든든한 후원자인 아버지 윤정현 씨를 만났다.
저는 BMW, 페라리, 캔암을 거치며 지금은 KTM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BMW 자동차에 근무할 때 이 아이가 태어나서 차에 관심을 갔게 하기위해 기본적인 운전의 재미를 공유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BMW의 전 라인업을 태워주기도 했었고, 페라리에서 일하면서는 페라리의 전 라인업을 다 타보게 했지요. 아들은 자전거와 인라인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마트의 무빙워크에서 인라인을 탔고 그와 함께 자전거를 탔는데, 세발 자전거를 잃어버려서 네발 자전거를 사주었습니다. 사타구니에서 피가 날 정도로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습니다. 좀 특이한 가정환경인가요? (윤정현)
어릴 적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자전거를 잘 타서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윤연수)
초등학교 3학년 때 약속을 하나 했었습니다. 제부도로 하이킹을 다녀오자. 집에서 편도 35km 정도 됩니다. 아들이 건 조건은 아이스크림을 원하는 만큼 먹게 해줄 것. 제가 건 조건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울지 않기. 아침 8시에 출발을 해서 저녁 8시에 돌아왔습니다. 기억하기론 아이스크림 30개 정도를 먹었고 우는 일도 없었습니다. 원래는 편도로만 갈 예정이었지만 결국 왕복으로 가게 됐습니다. 돌아올 때는 아들이 더 신나게 가더군요. 자전거, 스키, 바이크를 가르치고 싶었고 여행도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몽골랠리도 그 중 하나입니다. 워낙 어려서부터 자전거를 좋아했고 테크닉도 곧잘 했기 때문에 믿음이 있었습니다.(윤정현)
모터달린 탈것을 타본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때 ATV를 처음으로 탔습니다. (윤연수)
장인어른께서 시골에서 이장을 하셨는데 항상 바이크를 업무용으로서 타시면서 사고가 한 번도 없었지요. 그래서 바이크는 누가 타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집안의 심한 반대는 없었습니다. (윤정현)
몽골랠리에 대한 얘기를 처음 들었던 것은 아버지가 작년에 다녀오시고 나서 입니다. 저한테는 말씀 없으시다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저도 간다고 발표를 일방적으로(?) 하셔서 ‘아, 나도 가는구나’ 했지요.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되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고 정비적인 측면에서는 걱정도 되었습니다. 다녀오신 분들은 다들 엄청 힘들었다면서도 내년에도 또 가겠다는 말씀을 하셔서 무엇이 랠리의 매력인지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윤연수)
참전하게 되는것을 알았을때 목표를 세운 것이 있냐고요? 바로 어떻게 해야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며칠 뒤에는 가서 무리하지 말고 안전하게 완주를 목표로 타고 오자고 마음 먹었어요. (윤연수)
250으로 출전한 이유는 사실은 그전에 250을 타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바이크를 준비하는 것도 무리가 있는 것 같아서 한 것도 있고, 랠리의 조건 속에 바이크의 배기량이 꼭 커야만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어리고 충동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제어가 쉽고 부드러운 장비를 선택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윤정현)
몽골 랠리에서 달리면서 매일매일 느낀 게 달랐던 거 같습니다. 첫날에는 길을 찾기가 어려워 어렵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 다음날부터는 이제 한 번 제대로 달려볼까 했지만 엔진 트러블이 생기는 차들을 보면서 페이스 조절을 익혔고, 3일째부터는 편해지고 완주를 목표로 하면서 풍경이 좋으면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즐겁게 달렸습니다. (윤연수)
어려웠던 점이라면 길을 잃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다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좌표를 보고 다시 경로를 정해야하냐에 대한 걱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조난에 대한 두려움도 항상 있었지만 장비가 좋았는지 길을 잘 찾아서 올 수 있었습니다. 스포츠에 대한 순수한 정신으로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경험을 쌓는다고 생각하고 달렸던 것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불러왔던 것 같습니다. 때때로 빨리 달리고 싶었지만 한 번은 어떤 바이크가 저를 다섯 번이나 같은 코스에서 추월하더니 결국에는 제 순위보다 낮게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페이스 조절을 하면서 길을 찾는 것이 오히려 잘 달리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윤연수)
몽골랠리 이전에도 경기에 출전했었고요, 중3 때 주니어 클래스를 나가서 1위를 했었고 작년하고 재작년은 부상으로 못나가다가 이번 연도 들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레이스에서는 1위, 4위를 차지했었습니다. 트레이닝은 KTM에서 진행하는 이재성 선수 아카데미에서 연마를 하고 있습니다. 체력 단련은 로드 사이클을 열심히 탑니다. (윤연수)
학교는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면학 분위기에 방해가 될 수도 있어서 튀지 않고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 바이크를 탄다는 것 자체도 숨기는 중입니다. 일반적인 학생들의 기준에서는 특이하니까요. 저는 아들이 고등학생이기 전에 연수이기를 바랬습니다. 자신이 간절한 것에 집중하기를 바랍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공부는 죽을 만큼 못하겠는데 바이크나 자전거는 죽을 만큼 탈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등록했던 학원과 야간자습을 취소하고 바이크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연수보다는 인간 연수로 키워주고 싶었습니다. (윤정현)
몽골 랠리를 다녀온 후의 바뀐 점이라면 조금 더 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웠다는 점이랄까요? 길게 보고 멀리 보는 눈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윤연수)
앞으로의 계획은 아직 결정은 하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성장하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랠리를 다시 나가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카르 랠리를 나간다면 제가 미케닉으로서 따라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윤정현)
저는 아들이 윤연수로 살았으면 합니다. 본인이 좋아하고, 간절하고, 본인을 잘 케어하고 착하게, 본인이 가장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그럴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윤정현)
저도 윤연수로서 잘 살고 싶고 아버지가 지금 해주시는 것처럼 잘 지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윤연수)
다른 누구도 아닌 그냥 자기 자신으로 있음에 충실할 것. 그런 진솔한 자세로 매사에 최선을 다해 임하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진리를 이 두 사람은 증명해 보였다. 큰 무대에서 자신을 실험하고 돌아온 아들. 그런 그를 뒤에서 흐뭇하게 지켜보는 아버지. 부자(父子)의 2인3각 여정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지금부터다.
Credit
글 이순수 편집위원
사진 양현용
취재협조 스포츠모터사이클코리아 www.kt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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