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IETNAM SCRAMBLE TOUR
베트남 최북단까지 달리다
저 멀리 역동적으로 솟아오른 봉오리가 끝없이 펼쳐진다. 산 중턱을 깎아 만든 아슬아슬한 도로에는 지나가던 구름이 내려앉아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마치 무협지에서 봤던 한 장면처럼 몽환적이고도 환상적이다.
베트남 북부 투어를 위해 하노이를 찾았던 것은 10월 말. 한국에서는 바람이 벌써부터 차가워지면서 옷깃을 여미게 되는 가을 날씨가 이어지던 때였다. 늦은 저녁이라 긴팔을 입은 사람들도 종종 목격되었지만 이 정도 날씨면 반팔이 더 좋겠다 싶어 외투를 벗어던졌다. 지금도 이런데 한국이 꽁꽁 어는 한겨울이라면 이곳으로 한파를 피해 도피를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바이크도 옴팡지게 탈 수 있고 말이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 베트남에 도착한 기념으로 뜨끈한 쌀국수 한 그릇과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켠다. 기분 참 좋다.
DAY 1
하노이-하장
도시를 떠나자
투어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호텔 로비에 모여 투어 일정에 대한 안내와 주의사항을 듣는다. 이번 투어는 총 3박 4일의 일정으로 베트남 수도 하노이를 기점으로 베트남의 북부 산악지대를 돌아오는 일종의 거점 투어로 구성되었다.
베트남 북쪽의 작은 도시인 하장Ha Giang을 거쳐 최북단 도시 동반Dong Van을 돌아오는 코스다. 하장까지는 약 270km, 거기서 동반까지 약 150km를 주행하게 된다. 절대 거리로는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굽이치는 산길을 계속해서 지나가야 하고 또 도로의 상태도 좋은 편이 아니어서 평지의 배 이상은 걸린다는 설명이다.
바이크에 개인적으로 투어를 위해 준비해온 탱크백을 결속하며 출발 준비를 한다. 이번 투어 파트너는 두카티 스크램블러 62. 베트남 바이크 투어 전문 여행사인 랩터라이더스가 운영하는 전용 바이크로 부담 없이 다룸직한 400cc 배기량에 온 오프모드 모두를 고려한 세팅으로 현지 도로 사정에 최적인 선택이다.
복잡한 하노이 시내를 북쪽으로 빠져나오니 금세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넓게 펼쳐진 논밭 사이로 왕복 2차선 도로가 쭉 뻗어있고 중간마다 코코넛이나 사탕수수 등을 파는 노점들이 보인다. 오전 일정은 도시를 떠나 본격적인 바이크 투어 루트까지 가는 것이다. 휴식을 최소한으로 하고 속도를 유지한 채 달렸다. 점심과 휴식을 위해 멈추어 선 것 이외에는 거의 대부분 이동하는 것에 집중했다.
중간에 비를 만나 잠시 멈춰 서서 비를 피하기도 했지만 동남아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니 이것마저도 재미있는 요소가 된다. 다행히도 비는 금세 그쳤고 오후 내내 큰 비를 맞지 않고 이동할 수 있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때쯤 베트남 북동부 산악지대에 위치한 하장 성의 경계를 넘었다는 경계 표지석을 지났다. 하장성 경계를 지나자 산세가 깊어지고 길은 좁아진다. 도로는 작은 마을들을 지난다. 어떤 마을은 작은 개울이 흐르는 풍경으로 또 다른 마을은 밥 짓는 냄새로 지나가는 마을마다 저마다의 표정으로 여행자들을 반긴다.
해넘이가 시작되며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불거리는 길은 산 중턱을 향하고 있다. 어두워진 도로와 빗방울 때문에 시야는 좁아지고 속도 역시 더디다. 그렇게 얼마를 더 갔을까. 도시의 불빛이 보인다.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 하장이다.
DAY 2
하장-동반
스크램블 베트남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하늘의 낌새가 오늘도 왠지 두어 번 우비를 벗었다 입었다 해야 할 듯하다. 바이크를 재정비하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하장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본격적인 베트남 특유의 스크램블 투어가 시작된다.
도로포장은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물웅덩이가 되었고 모래가 슬쩍 깔려있는 곳도 있다. 저 멀리 개 몇 마리가 도로를 점유하고 있고 그 뒤로는 소 한 마리도 보인다. 때 마침 지나가는 스쿠터는 돼지 두 마리를 뒷좌석에 싣고 달려가고 있다. ‘완전 어드벤처네 이거!’ 헬멧 안에서는 웃음이 난다.
산중으로 난 길은 더 좁고 구불댄다. 능선을 따라 구비길이 이어지다가 길은 어느새 하천을 따라 곧게 가기도 한다. 중간중간 스쳐가는 마을은 점점 더 작아지고 가까워진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손을 흔들며 이방인들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중이다.
사실 이번 투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길에 있던 사람들과 지나가는 라이더에게 손 인사를 나눴던 기억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하노이-하장-동반 루트는 현지인들에게도 유명한 투어 코스였던 것. 거의 대부분이 평소 자신들이 타던 소형 스쿠터를 탔지만, 누가 봐도 여행의 즐거움이 얼굴에 묻어있는 모터바이크 여행자였다. 그들과 길 위에서 손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뭔가 함께 교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장에서 동반 코스는 헤어핀에 가까운 와인딩이 계속되며 제 속도가 나지 않았다. 노면 포장 상태도 좋지 않아 코너를 온전히 즐기기에도 조금은 아쉬웠다. 산을 넘을 때마다 마주치는 빗방울도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다. 대형 트럭이라도 앞서가고 있으면 신경이 곤두서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저 멀리 석회암 지형이 만든 기암괴석과 봉오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투덜거렸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진다. 구름이 깔린 석회암 봉오리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아름답다 못해 환상적이다.
동반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에서 소수민족인 몽Hmong족 왕의 궁전에 들렀다. 1900년대 초에 지어진 것으로 외세로부터의 방어를 위해 두꺼운 벽돌로 성을 쌓아올려 마치 요새처럼 보인다. 대단한 볼거리는 없지만 이런 첩첩산중에 한 부족의 터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또 어떻게 살았는지를 볼 수 있어 새로웠다. 몽족은 중국 남부와 동남아 북부 산악지대 일대에서 거주하는 소수민족인 묘족의 분파로, 천혜의 자연환경을 이용해 아편재배를 했고 1920년대까지만 해도 하장 전역을 통치했다고 한다.
DAY 3
동반-마피랭-하장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투어 3일차. 오늘은 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마피랭Ma PiLeng을 찍고 오는 코스다. 깎아지는 듯한 절벽에 사람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었다는 하노이 최북단의 하늘길 중 하나다. 마지막 숙소였던 동반에서 마피랭까지는 약 10km 거리라 오전에 한 시간 정도 느지막이 출발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덕분에 호텔 근처에 한창이었던 고산족 현지 아침 시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직접 빚은 술을 파는 가판대를 지날 때에는 향긋한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동네 아저씨들도 그랬는지 아침 댓바람부터 시음을 하겠다고 연거푸 술을 들이켜는 게 재미있다. 기르던 가축을 팔려고 나온 상인과 사려는 사람들이 엉키며 시끌벅적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만든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출발 준비를 마쳤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기에 오늘은 출발부터 우의를 착용했다.
동반의 마을 길을 따라 얼마간 가자 산 중턱으로 이어진 굽은 길이 나온다. 산을 하나 넘어가면 또다시 산으로 길은 계속해서 구불구불 대며 산에서 산으로 이어진다. 얼마나 더 갔을까. 저 멀리 구름이 쌓인 하늘 끝에 역동적으로 솟아오른 봉오리가 끝없이 펼쳐진다. 마치 무협지의 배경이라도 되는 양 몽환적이면서도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구름은 시시각각 뾰족한 봉오리들을 휘감아 돌아가다가 슬쩍 파란 하늘을 보여주며 애간장을 태운다. 산 중턱의 절벽을 깎아 만든 아슬아슬한 도로가 뱀처럼 길게 늘어서 있다. 지나가던 구름이 이따금 도로에 내려앉아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마피랭 휴게소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압도적이다. 급경사로 깎인 계곡 끝에 초승달 모양의 저수지가 보이는데 거대한 공간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하다.
돌아가는 길은 왔던 길은 되짚어가는 코스다. 한 번 지나왔던 길인지 편안한 느낌도 있고, 어디쯤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오후 동안 동반을 지나 하장까지 돌아가는 것이 목표다. 마치 바둑을 복기하는 것처럼 지나왔던 길마다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문득 코너를 같이 돌아나가고 있는 같은 팀원들이 눈에 들어온다. 3일을 같이 달리다 보니 이제는 꽤나 합이 잘 맞는다. 추월할 때나 속도를 낮출 때 코너를 돌 때 마치 함께 오랫동안 바이크를 타온 투어 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른 팀원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는 한다. 돌아오는 길이 돼서야 쨍한 하늘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워낙 날씨가 시시각각 변하는 산중이라 머리로는 이해는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헛헛하다.
DAY 4
다시 돌아가는 길
해질녘이 되어서야 하장에 도착했다. 산간 도로가 딱 끝나는 순간 공기가 따듯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숙소에 바이크를 주차해놓고 얼마간 개인 정비 시간을 가졌다. 간편한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인근 식당으로 옮겨 저녁 만찬을 즐겼다. 내일은 아침부터 시작해 하노이까지 돌아가는 복귀의 시간이어서 인지 왠지 오늘이 투어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이번이 첫 베트남 투어라는 전혜성 라이더는 원체 몸을 사리는 편인데 처음에는 도로가 좋지 않아 긴장을 했었다며 하지만 금세 적응이 되더라며 웃으며 이야길 꺼낸다. 어디가 가장 좋았냐는 물음에는 동반을 지나며 마필랭까지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대체할 수 없는 신비로운 풍경이라며 엄지를 보였다. 이번이 두 번째 베트남 투어인 최현민 라이더는 바이크를 같이 타고 있는 사람들이랑 합이 잘 맞아서 함께 모험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투어였다고 한 줄 평을 했다.
맛있는 현지 음식과 술을 곁들이며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밤이 깊어간다. 멋진 풍경과 좋은 사람들 맛있는 음식, 정말 즐거운 투어라는 것은 이런 게 아닐까.
비록 투어 일정 거의 대부분 비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원 없이 베트남 북부 산악지대를 누비고 다닌 듯하다. 꼭 다시 한 번 와보고 싶다. 하늘이 쨍하고 구름 한 점 없는 날에, 다시 한 번 이 모험을 즐기고 싶다.
Let’s Scramble VIETNAM!
credit
글/사진 이민우
취재협조 랩터라이더스 www.raptorridersto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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