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통 슈퍼스포츠를 E클러치와 함께 즐길 수 있다니 반칙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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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R650R은 전경 자세의 혼다의 F시리즈의 계보를 잇는 모델이다. 이 모델의 역사를 들여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 꽤 재밌다. 그 시작점은 1987년 출시한 CBR600F다. 전경자세(Foresight)라는 의미의 F차를 대표하는 모델이었다. 이후 4년 간격으로 CBR600F2, CBR600F3, CBR600F4로 업데이트 되었고 2001년, 최초의 퓨얼 인젝션 시스템을 탑재한 CBR600F4i까지 진화한다. 일제 4대브랜드의 스포츠 바이크 경쟁이 한창이던 2003년, 혼다는 CBR600F4i를 바탕으로 더욱 본격적인 스포츠 바이크로 진화시킨 CBR600RR을 선보였다.
그렇게 끊어진 F차의 계보는 2011년 유럽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선보인 CBR600F가 바통을 잇는다. 600RR의 네이키드 버전이었던 CB600F에 다시 페어링을 씌운 모델이었다. 2013년에는 배기량을 살짝 높인 CBR650F를 선보였으며 2017년에는 월드와이드 모델로 전환되며 국내에도 출시하게 된다. 그리고 2019년에 이름 뒤의 F를 떼고 대신 R을 붙였다. 이름만 바꾼 게 아니라 포지션도 본격적으로 다듬고 스타일도 CBR1000RR이 연상되는 근사한 디자인이 되었다.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스포츠바이크에 전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높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미들급 4기통 스포츠바이크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며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된다. 중고차 가격이 신차 가격을 웃도는 현상이 나타났을 정도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최신 모델이 등장한 것이다.
새로운 CBR650R은 E-클러치 도입이 워낙 화제가 되다보니 외형의 변화는 오히려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기존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새롭게 다듬어진 디자인은 슈퍼스포츠 분위기가 더 진해졌다. 굳이 아쉬움을 지적하자면 리어가 살짝 낮게 빠지는 것 정도다. 전면의 디자인은 혼다 슈퍼스포츠 디자인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랑프리 레드컬러는 혼다 레이싱을 상징하는 삼색이 조합되어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여기에 새로운 컬러TFT계기반이 도입되어 확실히 요즘 바이크를 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UI도 정갈하고 깔끔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전체적으로 만족감이 높다.
4기통 스포츠라는 카테고리에서는 최근 다시 출시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혼다 CBR600RR이 가장 큰 경쟁자가 될 것이다. 때마침 두 모델을 같은 시기에 테스트해볼 수 있었기에 그 차이를 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차량 구성을 살펴보면 CBR650R이 더 낮은 무게중심과 긴 휠베이스를 가지고 있다. 무게도 15kg 더 무겁다. 훌쩍 쓰러지듯 기울고 날카롭게 선회하는 RR과 비교하면 스포츠 투어러 같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안정적이다. 처음에는 선회가 둔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바이크가 몸에 익어갈수록 슈퍼스포츠의 DNA가 드러난다. 적극적인 체중이동과 시선처리를 더하면 바이크의 페이스가 점점 빨라진다. 주행에 있어서는 첫인상과 끝마쳤을 때의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처음 10분 동안은 나라면 절대 사지 않을 바이크였는데 1시간 뒤에는 완전 사고싶은 바이크로 바뀌었다.
CBR650R의 엔진은 애초에 600RR로부터 물려받은 엔진이었지만 배기량을 살짝 키워서 저회전 토크를 보강하고 출력은 낮춰서 다루기 쉬운 방향으로 독자적으로 진화했다. 회전은 부드럽고 스로틀 반응도 빠르다. CBR650R의 인기비결인 4기통 사운드는 퀵시프트와 조합될 때 절도있는 변속사운드로 그 매력이 배가된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에 화룡점정이 되는 것이 E-클러치의 탑재다. 스포츠 바이크에 자동 클러치가 어울릴까란 의문은 주행하며 금세 사라졌다. 보통 E-클러치에 기대하는 출발 시 클러치 자동기능보다는 퀵시프트의 이점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일반적인 퀵시프트들과 달리 가속과 감속 상황과 별개로 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속하는 중간에 힘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스로틀을 연 상태로도 바로 저단으로 변속할 수 있었다. 퀵시프트의 감도를 설정할 수 있는 점도 좋다.
지금까지의 CBR650R은 인기 있는 구성에 잘 만든 모델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게 어필하는 매력은 없었다. 위로는 미들클래스 스포츠의 이상형에 가까운 CBR600RR이 존재하고 출력 스타일은 CB650R쪽이 훨씬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테스트를 통해 CBR650R이 마음속의 우위를 가져갔다. CBR600RR에는 없는 E-클러치가 생각보다 큰 이점을 만들어주고, 묘하게 스포츠성을 더해주며 CBR650R만의 재미를 만든다. 그러니까 E-클러치가 더해진 지금에야 CBR650R이 완성된 느낌이다. 만약 MT와 E-클러치중 무엇을 구매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무조건 E-클러치를 선택해라. 아니 이건 선택이 아닌 필수다.
글 양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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