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겐 헤드라이트, 투박한 스위치 뭉치, 스테이플러보다 작은 계기반. 겉모습만 보면 정녕 21세기에 출시한 모델이 맞는지 의심부터 든다. 하지만, 직접 달려보면 아무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재미에 매료된다.
KTM 690 SMC R 2023
오랜 고집과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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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M은 1998년, 640 SMC를 소개하며 빅 싱글 단기통 엔진의 슈퍼 모타드 탄생을 알렸다. 640 어드벤처를 기반으로 전후 17인치 휠을 탑재하고 가벼운 무게와 강력한 토크, 조절식 서스펜션, 싱글 디스크 등으로 오직 재미만을 위한 모델로 자리했다. 사실 굉장히 마이너한 장르인 만큼 대중적이진 않았지만, 마니아층은 확실할 정도로 차량 재미는 으뜸으로 꼽혔다. 이후, 동일한 엔진에 밸런서 샤프트를 제거하고 더 가벼운 플라이휠과 41mm 카뷰레터를 장착한 625 SMC, 510cc 단기통 엔진을 탑재한 정통 모타드 스타일의 SMC 525 등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2008년, 지금의 모델과 흡사한 690 SMC가 등장했다. 건조중량 140kg에 63마력이라는 매력적인 성능을 발휘했고 몇 차례 외관 디자인 변화와 함께 2012년, 고성능 파츠를 더한 690 SMC R을 출시했다. 계속되는 환경 규제 강화에 따라 대응하며 2018년, 날렵함이 강조된 페어링 디자인과 등화류 등으로 풀체인지되었다. 그로부터 5년간, 큰 변화 없이 빅 싱글 단기통 슈퍼 모타드라는 명성을 고스란히 지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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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분위기
이번 2023 모델은 기존 모델과 페어링 디자인이 동일함에도 오렌지와 블루가 절묘하게 섞인 신형 컬러 배치로 새로운 느낌을 준다. KTM의 1290 슈퍼듀크 R이나 890 듀크 R, 890 어드벤처 R과 같은 집안임을 나타낸다. 2018년 풀체인지 후 페어링 디자인 변화가 없음에도 전혀 올드하다는 느낌이 없고 날렵하고 경쾌함이 강조되어 젊은 느낌이 진하다.
물론, 꾸준히 고집하는 할로겐램프와 참 단조로운 스위치 뭉치, 작디작은 계기반을 보면 어이가 없는 웃음이 터진다. 스스로 ‘그래 뭐, 많은 기능을 바라면서 타는 바이크는 아니니까.’라며 최면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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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전통
690 SMC R은 오프로드 머신처럼 시트와 차체가 날렵하다. 과거부터 리어 서브 프레임을 연료 탱크로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다. 다시 말해, 서브 프레임이 연료 탱크고 연료 탱크가 서브 프레임이다. 그 결과 불필요한 무게가 증가하지 않았고 연료량이 달라지더라도 프런트의 경쾌함이 꾸준히 이어질 수 있다. 양산형 모델 중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방식이다. 여기에 긴 스트로크의 WP APEX 조절식 서스펜션이 장착되었고 핸드 다이얼로 쉽게 댐핑을 조절할 수 있다. WP는 오래전부터 오프로드 레이스를 대응하면서 스트로크가 긴 서스펜션에 대해 많은 노하우를 가진 만큼 고급스러움과 경쾌함의 경계를 절묘하게 조율한다.
슈퍼모타드 특성에 맞춰 큰 충격을 대응하기 위한 단조 와이어 스포크 휠도 눈에 띈다. 일반적인 캐스트 휠보다 무게가 늘어나더라도 높은 점프와 장애물을 뛰어넘었을 때 쉽게 파손되지 않도록 적용됐다. 여기에 강성과 유연함을 고려한 격자형 크롬 몰리브덴 프레임은 오프로드 랠리 머신과 동일한 구조로 적용됐다. 이 모든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오던 구성으로 세대를 거듭하며 그 완성도를 높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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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포지션
제원상 시트고는 890mm로 일반 양산형 모델 기준으로 매우 높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숫자에 불과하다. 좁은 시트와 날렵한 차체로 발착지성이 좋다. 또한, 무게가 많이 나가는 라이더일수록 부드러운 서스펜션이 눌려 높은 시트고에 대한 부담이 없다. 처음에는 앞뒤로 긴 시트 때문에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 가늠이 안 되고, 일반적으로 상체가 서는 네이키드나 어드벤처 바이크처럼 편안하게 앉으면 뭔가 어색하다. 690 SMC R은 오프로드 머신에 앉은 것처럼 풋 패그와 동일선상에 엉덩이를 올려두면 해결된다. 처음에는 너무 앞으로 당겨 앉은 것처럼 느껴지는데 바이크의 서스펜션이 눌리는 것을 보면 전후가 고르게 압력을 받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몸과 가까워진 핸들을 조향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팔꿈치를 들게 된다.
처음에는 앞뒤로 긴 시트 때문에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 가늠이 안 되고, 일반적으로 상체가 서는 네이키드나 어드벤처 바이크처럼 편안하게 앉으면 뭔가 어색하다. 690 SMC R은 오프로드 머신에 앉은 것처럼 풋 패그와 동일선상에 엉덩이를 올려두면 해결된다. 처음에는 너무 앞으로 당겨 앉은 것처럼 느껴지는데 바이크의 서스펜션이 눌리는 것을 보면 전후가 고르게 압력을 받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몸과 가까워진 핸들을 조향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팔꿈치를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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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장난감
692cc 단기통 엔진은 낮은 rpm부터 툴툴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몸이 가벼운 복싱 선수가 샌드백에 툭툭 펀치를 날리듯 가볍게 보이지만 노면에 실리는 토크는 절대 우습지 않다. rpm을 높이면 또렷한 맥동이 느껴지던 진동에서 자글자글한 진동으로 바뀌고 엔진의 음색도 순간적으로 바뀐다. 손끝과 엉덩이데 굳이 설정할 필요가 없다. 레이스 상황에서는 실수를 줄이고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변속하기 위해 유용하겠지만, 도심에서는 변속 타이밍을 실수해서 레브리미트를 건드리거나 순간적으로 탄력이 죽더라도 그 자체가 재미 요소다. 모토크로스 레이스 선수가 점프 상황에서 스로틀을 열어 레브리미트를 계속해서 건드리고 착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아스팔트 위를 놀이터처럼 즐기는 느낌이랄까? 최고출력은 8,000rpm에서 74마력을 발휘하는데 한참 전에 빠르게 변속해서 낮은 rpm의 토크로 주행하는 맛도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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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전
바이크 핸들을 조작하면 한 번씩 ‘모터사이클이 맞나?’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가볍고 내 생각대로 움직인다. 코너링 시 상체를 안으로 숙일 것인지 바깥으로 세울 것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대로 달리면 그게 정답이다. 핸들 좌측 맵스위치를 눌러 두 가지 주행모드로 변경할 수 있는데 2번으로 설정하면 더 공격적인 스로틀 반응과 리어 ABS 해제, 트랙션 컨트롤이 거의 해제된다. 특히, 트랙션 컨트롤은 바이크가 수직으로 선 상태에서 거의 개입하지 않고 린 앵글 센서를 통해 선회 상황을 인지하고 라이더를 안전하게 이끈다. 2번 모드에서 리어 ABS가 해제된 만큼 리어 브레이크 조작에 따라 작은 슬라이드와 슬라이드 턴이 가능하다. 무게가 가볍기 때문에 자전거로 리어 슬라이드 턴을 하던 감각과 흡사하다. 내 예상을 벗어날 정도로 미끄러지거나 덜 미끄러지더라도 불안함이 적다.
1단은 물론이고 2단 기어에서도 스로틀을 휙 감아버리면 최대 토크 구간을 지나 프런트 휠이 떠오른다. 두 바퀴를 모두 바닥에 댄 상태로 가속한다는 생각으로 스로틀을 고정하고 발목을 까딱이면 퀵시프터가 빠르고 정확하게 변속한다. 차량 특성상 프런트가 가볍기 때문에 엉덩이를 조금만 뒤로 옮겨도 극적으로 무게 중심이 변한다. 즉, 윌리가 참 쉽다. 유로 5를 대응하면서 엔진 캐릭터가 부드럽게 바뀌었는데 그래서 더 만만하고 그래서 더 다루기 좋다. 한참을 신나게 놀다가 다시 1번 모드로 돌아가면, SMC R의 스타일, 포지션, 성격, 특성은 그대로 두고 안정감만 추가되어 더 넓은 수준의 라이더를 커버한다. 슈퍼모타드가 위험하다는 인식과 걱정은 너무나 구시대적 생각이다. 물론, 날 것 느낌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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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나는 SMC R
KIC 서킷에서 트랙 테스트도 진행했다. 690 SMC R로 달리기엔 너무 크고 고속 코너가 많은 서킷인데 차량의 한계를 확인하기에 완벽하다. 조건은 동일하다. 시승 차량에 아무런 추가 작업 없이 얼마나 재밌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조금 더 고성능 타이어를 장착할까 싶었지만, 그로 인해 서스펜션 움직임이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타이어는 브리지스톤의 S21 스포츠 타이어가 장착되었는데 특유의 부드러운 기울어짐 특성이 각기 다른 선회각의 코너를 공략하기에 좋다. 무작정 날렵하지 않기에 라이더가 핸들을 조작하며 바이크와 교감하기 좋다. 전후 서스펜션의 스트로크가 길어서 제동과 가속 시 피칭이 크게 일어나고 타이어와 노면의 피드백이 정확하게 전달된다. 무작정 가볍고 날렵하지 않기에 더 좋다.
선회 시 코너 안쪽으로 엉덩이를 빼고 서서히 기울이면 클리핑 포인트를 닿기 직전에 니 슬라이더가 닿고 가속과 함께 매끄럽게 갈려나간다. 아무런 스크린 없이 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며 달리는 감각도 꽤 매력적이다. 공기저항만큼 상체를 숙여주지 않으면 자세가 불안정해지고 원활하게 제어할 수 없다. 바람과 싸운다기보다 그 마저도 같이 춤을 추고 노는 느낌이다. 프런트의 320mm싱글 디스크와 브렘보 M4.32 캘리퍼 조합은 대부분 만족스럽다. 다만, 메인 스트레이트 200km/h가 넘는 속도에서 감속하면 그 한계가 느껴진다. 도심에서는 경험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기에 더블디스크를 포기하고 더 가벼운 프런트 움직임에 집중했단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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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서비스
690 SMC R의 경쟁 모델을 떠올리기 어렵다. 물론, KTM 산하 브랜드 중 허스크바나와 가스가스에 동일한 콘셉트 모델이 있지만 타브랜드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다. 그만큼 독보적인 매력과 성격, 특성으로 가득하다. 커다란 빙 싱글 단기통이 손끝과 발끝, 엉덩이에 남긴 진동이 여전히 떨리고 있다. 과거보다 무뎌졌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짜릿하고, 반대로는 조금 무뎌졌기에 더 많은 라이더가 도전하고 재밌게 즐길 수 있다. 사실 KTM의 입장에서 690 SMC R은 많은 판매량을 가져가기 어려운 모델이기 때문에 사업성은 떨어진다. 하지만, KTM이 ‘라이딩 본연의 재미’라는 키워드를 강조하고 브랜드 스스로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모델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 고집과 신념을 지키며 설계하고 발전해오고 있으며 나는 이런 모델을 브랜드의 ‘팬 서비스’라고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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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M 690 SMC R 2023
엔진형식 수랭 4스트로크 단기통 보어×스트로크 105 × 80(mm) 배기량 693cc 압축비 13 : 1 최고출력 74hp 최대토크 73.5Nm 시동방식 셀프 스타터 연료공급방식 전자제어 연료분사식(FI) 연료탱크용량 13.5ℓ 변속기 6단 리턴 서스펜션 (F)48mm텔레스코픽 도립 (R)싱글쇽 스윙암 타이어사이즈 (F)120/70 ZR17 (R)160/60 ZR17 브레이크 (F)320mm싱글디스크 (R)240mm싱글디스크 전장×전폭×전고 미발표 휠베이스 1,485mm 시트높이 890mm 건조중량 147kg 판매가격 1,785만 원
글 윤연수
사진 양현용,손호준
취재협조 KTM 코리아 kt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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