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한 브리티시 훌리건, 트라이엄프 2023 스트리트 트리플 R/RS

    훌리건 혈통의 스트리트 파이터가 미들클래스를 평정할 수 있을까? 스페인 헤레즈에서 열린 미디어 테스트에서 한 단계 진화한 스트리트 트윈 R과 RS를 경험했다.

    TRIUMPH 2023 STREET TRIPLE R / RS

    진화한 브리티시 훌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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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라이엄프 스트리트 트리플 시리즈는 원래부터 미들클래스 네이키드에서 손꼽히는 성능과 재미를 가진 모델이다. 2007년 출시 이래로 전 세계 13만대 이상 판매고를 올리고 있으니 인기 모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좋을 정도다. 대한민국 트라이엄프의 역사 자체가 짧다보니 그 인기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1200cc의 스피드 트리플보다 배기량이 작다고 그저 그런 하위모델로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대대로 재미 면에서 스피드 트리플도 따라오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하는 바이크였다.

    멋지게 다듬다

    2023모델은 꽤 많이 다듬어졌다. 첫인상의 디자인 차이는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뭔가 모르게 분위기가 한결 멋있어졌다. 날렵하게 변주된 트윈 헤드라이트 디자인은 캐릭터 고유의 분위기를 그대로 잇고 있지만 차량 전체가 좀 더 각이 잡히고 야무진 형태로 변경되었다. 연료탱크 형상을 날렵하게 다듬고 사이드 패널이 좌우를 감싸며 내려오는 것이 차체를 더욱 근육질로 보이게 한다. 밸리팬 디자인은 짧고 경쾌해진 반면 배기시스템은 다시 길어졌다. 디자인이 스포티한 느낌이라 둔해보이진 않는다. 뭔지 모르게 예뻐진 첫인상은 단지 기분 탓은 아니었다. 뭐가 달라졌을까, 이전 모델과 꼼꼼히 비교해보고 나서야 차이점을 발견했다. 헤드라이트를 차체 쪽으로 좀 더 밀착시키고 헤드라이트 둘레 디자인을 낮고 작게 바꿨다. 여기에 뒤쪽으로 라인이 이어지는 탱크 상단의 높이는 높이면서 기존 모델이 가지고 있던 껑충하게 목을 뺀 느낌이 사라지고 자세를 웅크린 느낌이다. 곧 튀어나갈 것 같은 긴장감도 더하고 비율도 더 좋다. 단지 눈에 익어서, 혹은 기분 탓으로 예뻐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 예뻐진 것이다.

    765의 반란

    3기통 765cc 엔진은 모토2 레이스에서 숙성되었다. 그동안 레이스를 통해 축적된 마일리지가 100만km를 넘겼단다. 이 엔진을 장착한 후 모토2 레이스 최초로 경기 중 시속 300km/h를 돌파했고 각종 트랙의 랩타임을 끊임없이 기록갱신하고 있다. 3기통 765cc라는 엔진 형식은 그대로지만 연소실 형상을 개선하고 압축비를 높였다. 흡기구 흐름과 밸브 리프트량을 높였으며 이에 맞춰 피스톤도 밸브 형상을 고려한 새로운 피스톤으로 변경했다. 출력 향상은 R기준 2마력 RS기준 8마력인데 그보다는 토크의 향상이 눈에 띈다. 전 회전 영역에서 풍부해진 토크는 바이크의 모든 움직임에 경쾌함을 더한다.

    첫인상은 부드럽다. 새로운 765 3기통 엔진은 역대 트라이엄프의 3기통 엔진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경험해본 그 어떤 3기통 엔진보다 매끄럽게 돌아간다. 사전에 정보가 없다면 4기통 엔진이라고 해도 속을 정도다. 진동감소는 바로 체감할 수 있었다. 장시간 주행 후 멈췄을 때 손이 찡하고 저린 느낌이 거의 없다. 회전이 부드럽다는 것은 성능에 있어서도 큰 장점이 된다. 엔진 특성상 고회전에서 제 성능이 나오는데 스트레스 없이 쭉쭉 오르는 회전수 덕분에 스포츠 주행 시 고회전 영역을 유지하며 달려도 부담감이나 스트레스가 없다. 오히려 자꾸만 회전계 바늘을 끝까지 붙이도록 부추길 뿐이다.

    R과 RS사이

    기본이 되는 R을 처음 봤을 때는 확실히 단점만 눈에 들어왔다. 일단 계기반은 RS의 5인치 TFT계기반이 아니라 트라이던트와 같은 LCD TFT가 합쳐진 계기반이다. 엔트리 모델인 트라이던트에 달려있을 때는 나름 괜찮은 계기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상위 모델인 스트리트 트리플에 달려있으니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느껴졌다. 특히 RS의 5인치 TFT를 보고난 뒤라 더 그렇다. RS와 다른 점은 이것뿐이 아니다. RS에는 브렘보 MCS마스터실린더와 스티레마 캘리퍼가 조합되지만 R은 M4.32 모노블럭 캘리퍼를 장착하고 있으며 올린즈 리어쇽도 없다. 쇼와 프런트포크도 RS와 비교했을 때 한 급 아래 제품이 장착된다. 순정타이어도 피렐리 슈퍼코르사가 장착되는 RS와 달리 콘티넨탈 콘티로드 타이어가 장착된다.

    하지만 이러한 스펙의 아쉬움이 덜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체적인 시인성은 5인치 TFT보다 좋았다. 그리고 메뉴 개수와 선택지가 많아지면서 트라이던트에 비해 단촐한 느낌이 덜어졌다. 장식적인 그래픽이나 애니메이션이 사라지면서 세팅은 오히려 간편해졌다. 서스펜션은 한 급 아래라곤 해도 조절이 불가한 깡통이 아닌 풀어저스터블 서스펜션을 장착하고 있고 M4.32캘리퍼는 지금까지 다양한 슈퍼바이크와 플래그십 모델에서 성능이 검증된 캘리퍼인 만큼 발군의 성능을 낸다. 양방향 퀵시프트와 슬리퍼 클러치는 차별 없이 기본사양이다. 시장에서 R과 동급이라고 설정할만한 모델들과 비교하면 결코 떨어지는 사양이 아니다. 너무 잘난 형을 둔 동생의 마음이랄까? 처음부터 비교대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RS와의 출력차이는 10마력이지만 10000rpm 이전까지는 동일한 출력을 내고 11000rpm이 넘어가서 최고출력에서만 10마력 차이가 난다. 트랙이라면 랩타임으로 차이를 구분해내겠지만 도로라면 여간해서 느끼기 힘든 출력 차이다. 기어비나 엔진의 회전한계도 같아서 각 기어별 최고속도 자체는 동일했다. 끝까지 쥐어짜지 않는 상황이라면 두 모델의 차이를 콕 찝어내긴 쉽지 않다. RS를 먼저 경험한 뒤 R을 타는 순서였는데 의외로 R이 괜찮아서 놀랐다. 주행 순서 때문에 좋은걸 먼저 경험하면 아쉬움이 더 클까봐 걱정했는데 완전히 기우였다. 실제 주행시 체감되는 토크나 가속감은 전혀 뒤지지 않았다. 직선로에서 최고속을 겨룬다면 몰라도 주행하면서 R이 더 둔하거나 느리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퀵시프트 역시 깔끔하게 작동한다. 주행 코스가 고불고불한 산이 아닌 한적한 교외의 도로를 타고 완만한 코너들이 이어지는 곳이라 전체적인 주행 페이스가 꽤 빨랐음에도 R이 특별히 뒤처지는 느낌이 없다.

    오히려 확실한 차별점은 R과 RS가 전혀 다른 핸들링 감각을 가졌다는 것이다. 약간의 세팅 차이지만 번갈아 타보면 그 특성의 차이가 꽤 크게 다가온다. RS는 스포츠 바이크처럼 프론트 휠부터 가고자하는 방향으로 우겨넣고 리어는 그대로 따라오는 지극히 공격적인 핸들링의 느낌이라면 R은 전통적인 네이키드 스타일처럼 원하는 만큼 기울이고 그대로 따라가는 아주 자연스러운 감각이다. RS를 타다가 R을 타면 핸들링이 느긋하고 푸근하게 느껴질 정도다. 트랙이나 와인딩 로드에서는 RS가 한계는 높겠지만 R은 일상적인 주행에서 훨씬 편안하게 달릴 수 있었다. RS는 리어쇽업소버가 올린즈 STX가 기본 장착되어 더욱 쫀득한 반응을 보여주지만 R의 쇼와 피기백 쇽업소버 역시 풍부한 움직임으로 바이크를 다루기 쉽게 만든다.

    라이딩 경력이 쌓일수록 미들클래스 바이크는 만만한 대상으로 느껴진다. 네이키드들이 200마력이 쉬 넘는 요즘, 120, 130마력의 네이키드가 만만하게 느껴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스트리트트리플 RS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풀스로틀로 가속하면 피크파워를 찍기 직전 스티어링이 떠오르며 무게감이 사라지는데 마치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의 느낌이다. 이렇게 매순간을 짜릿하게, 그리고 긴장감을 더하는 미들클래스는 정말 오랜만이다. 스트리트 트리플 시리즈는 스피드 트리플 시리즈의 아랫 모델이 아닌 또 하나의 하이엔드 모델임을 확실히 증명했다.

    RS와 함께 춤을

    테스트 둘째 날은 헤레즈 서킷에서 스트리트 트리플RS과 함께 본격적인 트랙 테스트를 진행했다. 헤레즈 서킷은 고속코너가 많고 직선로가 짧아 높은 테크닉이 요구되는 서킷이지만 각 코너가 탈출구까지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해 적응하기는 어렵지 않은 서킷이다. 그리고 두 번째 달려보는 곳이라 부담감도 덜해 첫 세션부터 재밌게 달릴 수 있었다. 순정 타이어는 피렐리 슈퍼코리사SP V3에 워머로 충분히 달궈놓은 터라 환상적인 그립을 만들어준다. 도로에서는 미묘했던 10마력이지만 트랙에서는 끝까지 써먹을 수 있다. 레브리미트 직전까지 파워가 쉼 없이 쭉쭉 뻗어준다. 앙칼진 엔진은 수시로 12000rpm을 넘어 한계를 물어버린다. 보통 10000rpm을 넘겨가며 달리면 불안감이 가중되는데 RS는 고회전이 될수록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이게 가장 놀라웠다.

    RS에는 R에 없는 ‘TRACK’모드가 추가되어있다. 트랙모드는 ABS의 개입도, 트랙션 컨트롤도 최소화되며 랩타임을 공략하는데 초점이 맞춰진다. 트랙션 컨트롤은 프런트휠이 떠오르는 것 정도로는 개입하지 않으며 완전해제도 가능하다. 바이크를 믿고 맡겨보라는 느낌이다. 반면 브레이크에 대한 개입은 조금 소극적이었다. 트랙모드를 켜면 ABS의 개입이 최소화 되며 ABS경고등이 들어온다. 이 상태에서는 코너링ABS가 개입하지 않고 급제동시 리어휠이 떠오르는 것까지도 허용한다. 그런데 휠을 의도적으로 미끄러트리면 바로 ABS가 개입한다. 또한 전후 ABS를 완전히 해제할 수는 없다.

    차체의 움직임은 가볍지만 노면을 물고 있는 느낌은 묵직하다. 안정감이 극대화 되는 밸런스 덕분에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로에서는 네이키드 치고 긴장감이 지나치지 않나 싶을 만큼 본격적인 포지션이지만 트랙에서는 휘두르기 딱 좋은 포지션이다. 보통의 네이키드라면 트랙에서 기울임 한계가 빨리 오기 때문에 더 과장해서 몸을 빼야하고 그러다 보면 바이크를 억지로 돌려나가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스트리트 트리플의 경우는 코너에서 슈퍼스포츠 바이크처럼 자연스럽게 돌아갈 수 있었다. 첫 번째 세션은 코스확인 랩으로 시작해 거의 30분을 쉬지 않고 달렸는데도 지치지 않았을 정도로 편했다. 체중이동과 시선처리, 그리고 퀵시프트를 조작하는 발놀림 이외에 쓸데없이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기 때문이다.

    방향을 바꾸는 게 워낙 빠르게 끝나버리니 코너마다 여유가 남았다. 남는 여유를 줄여가며 달리니 랩을 더할수록 페이스가 빨라진다. 테스트를 떠나 진심으로 트랙을 즐기며 탔다. 이번 헤레즈 주행을 통해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는데 그만큼 달릴수록 공부가 되는 바이크였다. 아쉬운 점은 오히려 외적인 요소에 있었다. 5인치 TFT계기반은 정보도 많고 세팅하기에 편리한 장점은 있지만 트랙주행에서는 오히려 화려한 그래픽 때문에 시인성이 떨어진다. 트랙에서는 속도보다는 회전계가 더 중요하며 특히 회전한계가 높은 바이크 일수록 그 중요성도 커진다. 추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서라도 트랙용으로 사용할 심플하지만 보기 쉬운 그래픽이 추가되면 좋겠다. 이날 예정된 4개의 세션에 추가로 1개의 세션이 더 생겨서 총 5세션을 달리며 트랙 주행시간만 2시간 넘게 달렸다. 트랙에서의 모든 순간 RS의 주행은 완벽했다.

    미들클래스의 새로운 강자

    R과 RS는 같으면서도 각기 다른 매력을 가졌다. 만약 도로 주행이 목적이라면 R이 여러모로 장점이 있고 경제적이면서 편안함까지 갖추고 있어서 꽤 매리트가 있다. 국내 가격은 발표 전이라 얼마나 차이가 날지 모르겠지만 영국 기준으로 1900파운드 약 300만원의 차이가 난다. 이정도면 충분히 합리성을 따져볼만한 가격이다. 경쟁 모델들에는 옵션이거나 추가 비용을 들여야 하는 기능도 기본으로 포함하고 있다. 퀵시프트와 전후 조절식 서스펜션이 기본인 점은 R의 경쟁력을 높인다. 하지만 트랙 주행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선택은 RS다. 이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최근 미들클래스 바이크들이 연이어 출시하는 등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 소형과 대형 사이에서 탄탄한 시장구조를 만드는데 미들클래스의 영향력이 큰 만큼 참 반가운 소식이다. 여기에서 스트리트 트리플은 3기통의 유니크함과 뛰어난 성능, 그리고 스타일리시한 디자인까지, 스트리트 트리플만의 매력을 더욱 날카롭게 연마했다. 그러니 스트리트 트리플에 원래부터 관심이 있던 라이더라면 더욱 더 기대해도 좋다.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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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IUMPH STREET TRIPLE R/RS

    엔진형식 4스트로크 12밸브 DOHC 직렬 3기통   보어×스트로크 78 × 53.48 (mm)   배기량 765cc   압축비 13.25:1   최고출력 120PS / 11,500rpm (130PS / 12,000RPM)   최대토크 1 80Nm / 9,500rpm   시동방식 셀프스타터 셀프스타터   연료공급 방식 전자제어 연료분사식   연료탱크 용량 15L   변속기 수동 6단   서스펜션 (F)41mm 도립 (R)싱글 쇽 스윙암   타이어 사이즈 (F)120/70ZR17 (R)180/55ZR17   브레이크 (F)브렘보 310mm 더블 디스크 (R)브렘보220mm 싱글 디스크   전장 2055x792x1407mm (2052x792x1064mm)   시트 높이 826mm   차량 중량 189kg(188kg)   판매 가격 가격 미정 ( )는 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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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레즈 앙헬 니에토 서킷 circuito de jerez–angelnieto

    높은 테크닉과 속도를 요구하는 헤레즈 서킷은 그만큼 극적인 드라마가 쏟아지는 모토GP의 가장 중요한 무대중 하나다. 스페인의 전설적인 레이서 앙헬 니에토(1947-2017)를 기리기 위해 2018년에 붙여진 이름이다. 총 길이 4,428m이며 두 개의 짧은 직선주로에 13개의 코너가 있다. 그중의 절반은 90도 이상으로 방향을 바꾸는 깊은 코너라 차량의 출력보다는 테크닉과 코너링 퍼포먼스가 중요하다. 헤레즈 서킷의 가장 마지막 코너이자 가장 치열한 순위 다툼이 벌어지는 13번 코너의 이름은 호르헤 로렌조 코너다. 헤레즈 서킷은 로렌즈가 승승장구하던 시절인 2013년, 26번째 생일선물로 마지막 코너에 그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또한 백스트레이트에서 이어지는 헤어핀 코너인 6번 코너의 이름은 다니 페드로사 코너다. 서킷 옆에 작은 언덕이 있는데 모토GP경기가 있을 때면 이 산이 관중으로 가득 차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글 양현용
    사진 트라이엄프
    취재협조 트라이엄프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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