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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의 발전, 토요타 GR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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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의 발전, 토요타 GR 86

    10년의 발전

    TOYOTA GR 86

    제원으로는 모두 표시할 수 없는 완성도를 바탕으로 성숙해진 86이 돌아왔다.

    정확히 10년 전이다. 2012년 6월, 한국에 정식으로 출시한 토요타 86을 시승했다. 당시에 기억을 떠올려보면, 86의 등장은 자동차 시장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대배기량 고성능 엔진이나 값비싼 카본으로 장식한 자동차가 아니었음에도 우리가 바라는 현실적인 스포츠카의 결정체. 동시에 순수한 스포츠 드라이빙 정신을 바탕으로 운전자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기회를 주는 자동차의 부활이었다. 토요타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86이란 이름도 1983년 등장했던 경량 스포츠 쿠페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 만화 <이니셜 D>를 통해 전 세계로 유명해진 후지와라 두부 가게 배달 자동차. 굽이치는 산길에서 1990년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등장한 최고의 일본 스포츠카들과 경주를 벌이며 연승 전적을 이뤄낸 주인공이 몰던 차가 바로 ‘AE 86’이었다. 1980년대 등장한 86과 2012년에 등장한 86은 실제론 전혀 다른 시대에 살며, 완전히 다른 자동차 시장의 소비자를 공략했다. 하지만 낮은 배기량 엔진과 앞 엔진 뒷바퀴 굴림(FR) 구동계, 수동 변속기를 갖춘 소형 쿠페라는 일관된 컨셉에서 정신적후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12년 등장한 86에서 다시 10년이 지난 지금, 풀 모델 체인지로 업그레이드된 GR 86이 다시 우리 앞에 등장했다.

    여전히 컴팩트한 차체와 담백한 편의 장비

    GR은 토요타의 모터스포츠 브랜드 가주 레이싱(GAZOO Racing)의 약자다. 이들이 바라는 GR의 철학은 모터스포츠 경험에서 얻은 데이터를 양산차에 접목해서 제품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다. 한마디로 GR 86은 이전보다 레이싱 DNA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소형 경량 FR 스포츠 쿠페의 본질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신형의 외관은 이전보다 볼륨감이 있다. 전작의 단순한 캐릭터 라인에서 벗어나 기교를 더한 디자인으로 박력 있는 모습이다. 수치로 보면 일반적인 해치백 정도 크기지만, 차고가 낮아서 요즘 자동차 같지 않게 컴팩트해 보인다. 전체적인 구조는 FR 스포츠카의 전형적인 롱노즈 숏데크 형태에 충실하다. 이전 모델의 86로고가 수평대향 엔진(복서)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라면, 신형은 GR이라는 브랜딩에 좀 더 적극적이다. 한국에 정식 출시한 모델은 수동변속기(MT)를 기본으로 기본과 프리미엄, 두 가지 트림으로 구분된다. 이전과 다르게 자동변속기 모델이 빠졌기 때문에 대중성을 포기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만큼 마니아적인 특성을 가진 제품 특성을 확실하게 겨냥했다고 풀이된다.

    이번에 시승한 프리미엄 모델은 기본 편의장비를 충실하게 갖춘다. 18인치 휠과 215/40 R18 미쉐린 PS4 하이 그립 타이어를 장착했다. GR 브랜드를 통해 공식 튜닝 파츠도 선택할 수 있다. 프런트 범퍼, 사이드 스커트, 리어 범퍼와 디퓨저, 리어 스포일러같이 공기역학적 부품들은 장착공임까지 포함해 꽤 합리적인 가격(65만~110만원)에 제공된다. GR 브레이크 패드와 엔진 퍼포먼스 댐퍼처럼 기능적인 부품도 70만~160만원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 실내의 느낌도 이전과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운전자를 둘러싼 실내는 드라이버와의 일체감을 염두에 두고 개발됐다. 수직으로 선 대시보드와 낮은 시트 포지션이 긴장감을 이끌어낸다. 운전자의 손이 닿는 스티어링과 기어 레버, 주차 브레이크 레버도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기에 딱 알맞은 위치에 있다. 이전 모델과 비교해 시트 포지션이 분명히 좋아졌다. 특히 운전자 무릎 좌우 공간이 개선되어서 힐-엔-토 같은 운전 테크닉을 구현할 때 대시보드에 무릎을 쓸릴 일이 줄었다.

    실내는 모든 모델이 블랙 컬러를 기본으로 한다. 가죽과 부분 스웨이드로 만들어진 개선된 스포츠 시트도 달린다. 계기반은 아날로그 없이 7인치 풀 TFT 방식으로 변했다. 중앙 모니터가 8인치로 업그레이드됐다. 여기엔 차의 세부 설정 조정뿐 아니라 애플 카플레이, 안드로이드 오토도 지원한다. 8개 스피커를 갖춘 오디오, 풀 오토 에어컨디션, 7개 에어백, 사각지대 감지 모니터와 후/측방 경고 시스템, 스티어링 연동 코너링 라이트 같은 장비도 편의성이 강화된 부분이다. 출시 가격이 이전 모델과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더 이상 ‘깡통’이라고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차를 장시간 타보면 단점도 발견하게 된다. 스피커는 만족스러운 음질을 구현하지 못했다. 실내 곳곳에 저렴해 보이는 플라스틱이 시선을 끌었다. 플라스틱 덩어리가 끼워 맞춰진 흔적으로 가득한 실내는 요즘 소비자의 눈높이와 분명 거리가 있다. 15cm 이상 잡아 올려야 단단하게 고정되는 주차 브레이크도 사용할 때 꽤나 신경쓰인다. 목 받침이 없는 뒷좌석은 애초에 사람이 탈만한 공간은 아니다.

    뛰어난 핸들링과 믿음직스러운 섀시 

    GR 86의 클러치 페달은 이전 모델처럼 여전히 가볍다. 클러치를 밟으면서 ‘GR’버튼을 누르면 시동이 걸린다. 엔진소리가 가볍다. 무겁고 압도적인 사운드가 아니라 가볍고 경쾌한 일본차 특유의 소리다. 이전 모델은 1단이 들어갈 때 싱크로가 ‘쿵’ 하고 엉덩이를 때렸다. 반면 신형의 기계적 감각은 훨씬 부드럽다. 아이들부터 저속주행까지 크게 불쾌한 진동과 사운드가 거의 없다. 저속에서 승차감은 부드럽고 스티어링 휠은 가볍게 움직인다. 신형의 가장 큰 변화는 엔진 배기량이다. 수평대향 4기통 직분사 자연흡기라는 큰 방향성은 유지하면서 기존 2.0L(D-4S)에서 2.4L로 배기량을 키웠다. 그 결과 7000rpm이라는 최대 회전수는 동일하게 가져가면서 최고출력을 231마력(ps)까지 올렸다. 최대 토크도 기존 (20.9kg·m)보다 개선된 25.5kg·m이다. 클러치를 붙인 직후에는 엔진이 개선된 것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가속이 시작되고 일상적인 회전 구간에 들어서면서 엔진 힘이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다. 각 단수는 오버랩 구간도 적당하고, 변속 과정이 신경질적이지 않다. GR 86의 장점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저중심 설계와 안정적인 무게 배분이다. 일반적인 직렬 4기통 대신 수평대향 4기통을 사용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차의 무게 중심을 아래로 끌어내리고 가운데로 몰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신형의 경우 플랫폼을 스바루 글로벌 플랫폼으로 바꾸면서 전체적인 높이가 10mm 낮아졌다. 부품 하나가 아닌 플랫폼 전체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만큼 회전 구간에서 불필요한 롤링이 줄어든 셈이다.

    수동 기어는 정확하게 물리는 느낌으로 들어간다. 연속적으로 시프트다운을 하자 머플러를 통해 86의 거친 숨이 들려오는 것도 잠시, 가속과 함께 경쾌한 엔진 사운드가 비례하며 올라간다. 86 특유의 리듬은 존재하지만 그동안 알고 있던 복서 엔진의 거친 사운드는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출력이 늘어났다고 해도 231마력의 출력이 넉넉한 것은 아니다. 특히 터보 엔진이 유행처럼 변하며 2L 급으로 300마력 언저리 출력을 모두가 뽑아내는 현 시장 상황에선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GR 86은 가속력에 치중하는 차가 아니라 그 속도를 코너링으로 완벽하게 전환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다. 노면을 읽고 반응하는 능력이 수준급이다. 손과 발, 그리고 엉덩이로 노면 정보들이 정확하게 전해진다. 특히 코너에서는 드라이버가 운전을 잘 하는지 아닌지를 투명한 피드백으로 확인시켜준다. 가속과 감속, 코너링 때 타이어의 남은 그립과 사용한 그립이 정확하게 느껴진다. 215mm 사이즈의 스포츠 타이어로 이렇게까지 코너링 한계가 높은 차는 드물다. 차의 특성과 한계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비틀림 강성이 이전보다 50%가량 향상된 섀시는 서스펜션의 반응을 확실하게 이끌어낸다. 기어 레버 하단에 위치한 자세제어장치(ESP) 해제, 트랙 모드 버튼을 이용하면 자동차의 움직임이 한결 자유로워진다. 코너를 빠르게 들어가 언더스티어가 발생할 때 ‘타이어가 미끄러지고 있다’는 것을 점진적으로 느끼고 제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코너링 때 가속 페달의 양에 따라 뒷바퀴가 슬쩍 밖으로 흐르는 오버스티어가 발생할 때도 움직임을 느끼고 제어할 시간이 충분히 있다. 스포츠 드라이빙에 능숙하든 그렇지 않든 누구나 쉽게 이런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토요타가 이 차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목표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이 차에 진짜 재미는 ESP를 완전히 해제하고 본격적으로 달릴 때 드러난다. 코너 입구에서 강한 제동과 함께 스티어링 휠을 휘감으면 뒤가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드리프트로 연결된다. 엔진 출력의 한계로 2단이상의 기어 영역에서 드리프트를 유지하긴 어렵지만, 1단과 2단에서 오버스티어는 확실한 반응으로 이 차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물론 이런 운전 과정은 실제론 결코 위협적이지 않다. 모든 움직임이 여유롭고, 또 자연스럽다. 간단한 조작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한계를 넘나들 수 있다. 의도적으로 뒤를 흘리고자 클러치 킥(Clutch Kick) 테크닉을 쓸 때에도 LSD가 확실하게 출력을 받아 뒷바퀴를 미끄러트린다.

    GR 86은 이처럼 다양한 테크닉에 효과적으로 반응한다. 그리고 운전이라는 과정에서 얻는 재미를 충실히 표현한다. 평범한 운전자에게 운전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스포츠 드라이빙 경험과 운전 기술을 연마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이전 모델에 비해 주행 성능을 대폭 발전시키기 보다는 완성도를 높이는데 힘썼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요즘 시대에 순수한 운전 재미와 흥분을 주는 ‘현실적인 FR 스포츠카’는 손꼽힌다. 요즘 시대에 보기 힘든, 운전자를 성장시키는 자동차다. 그런 관점에서 이 차는 스포츠카(스포츠 드라이빙)에 경험이 적은 입문자에게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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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YOTA GR 86

    레이아웃 앞 엔진, RWD, 2+2인승, 쿠페  엔진형식 수평대향 4기통 2.4L, 231마력, 25.5kg·m  변속기 6단 수동  휠베이스 2,575mm  길이×너비×높이 4,265×1,775×1,310mm  복합연비 9.5km/L  CO2배출량 174g/km  무게 1,285kg  판매 가격 4,030만원(기본) / 4,630만원(프리미엄)


     김태영(모터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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