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는 까막눈에 가까웠다. 하고 있던 일이 독일 회사와 관련된 일이기에 유일한 연결고리였고, 독일에 대해서는 “독”자도 모르고, 나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년병이었다. 업무 경력을 쌓아가면서 만난 독일인들을 통해 고정관념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차가운 독일의 이미지가 깨지기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게 독일행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당시에 내가 타고 있던 모터바이크가 독일제였다. 이거 왠지 모를 기분 좋은 조합이다.
쿤스트의 독일 리포트 #01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나는 독일에 있었다.
독일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자동차, 축구, 히틀러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살기 시작하면서 경험한 독일은 하나로 정의할 수 없었다. 다양성이 존재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큰 포용력이 존재했다. 독일 사람들은 말한다.
너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다 옳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다름을 모두 인정한다.
독일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모터바이크 관련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나가기 전에 약간은 우리와 다르기도 하고 비슷하기도 한 몇 가지 이야기로 시작하고자 한다.
모터바이크 천국 독일
독일에 살면서 느낀 점은 실로 다양하지만 넓은 땅과 중소 규모의 도시 구조를 잘 활용한 덕에 독일은 자동차 또는 모터바이크로 하는 여행에 최적화된 루트를 곳곳에 가지고 있다. 국도변을 여러 테마에 어울리게 잘 정리해 두고 그것들은 한 카테고리에 묶어 이름을 붙어 관광 목적을 위한 도로를 많이 만들어 두었고 이로 인해 라이더들에게 투어를 떠나게 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을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로만틱 가도 (Romantische Straße)는 그중의 일부일 뿐. 다양한 루트를 하나씩 정복해 나가는 것도 즐거운 재밋거리다.
로만틱 가도란?
독일의 아름다운 중부도시 뷔르츠부르크에서 시작해서 남부 노이슈반슈타인성이 있는 퓌센까지 이어지는 약 410여 킬로의 여행 도로
라이더를 위한 선물
독일에 처음 도착해서 받은 가장 큰 문화적 충격을 받는 곳은 도로 위였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뒤에서 따라 주행하고 있으면 인간미가 느 껴지지 않고 로봇이 운전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철저하게 지켜지는 교통 법규. 추월차선과 주행차선, 저속 운전 차선을 정확하게 지키 고 양보하는 문화가 정립되어 있어 모터바이크를 고속도로에서 운행해 도 안심했었고 눈치 보지 않고 1차선에서 최고 속도를 낼 수 있으며 자 동차들은 알아서 2차선으로 피해준다. 중요한 건 그 문화 틈새에서 어느새 그들과 같이 교통 법규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나 자신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
고속도로 및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릴 수 없는 우리의 실정 때문인지 독일에서 모터바이크를 타면서 경험해본 아우토반은 라이더를 위한 일종의 배려와 폭넓은 선택지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여행을 떠나는 라이더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여행의 과정인 루트인데,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고속도로와 라이딩의 재미를 더하는 일반 국도와 함께 잘 버무리면 최적의 여행 루트를 만들 수 있다. 편하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라이더에게는 선물 같은 것이다. 거기에 독일의 고속도로는 무료라는 점도 여행을 떠나기 좋아하는 나에게는 또 하나의 큰 혜택.
독일에서 모터바이크를 처음 구매하고 등록하면서 한 가지 결정할 것 이 있었다. 이것은 물론 차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이지만 추운 겨울에는 바이크를 타지 않는 내게는 너무나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바로 번호판을 원하는 개월 수만 등록할 수 있다는 것. 보통은 모터바이크 라이더나 컨버터블과 같은 오픈카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주로 이 제도를 이용해서 컨버터블은 계절이 좋은 기간만 등록하기도 한다.
등록된 번호판을 처음 받은 날, 이것이 독일이라는 나라가 보여준 탈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발휘해준 융통성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현재 나의 바이크에는 03|11이라는 숫자가 추가로 적혀있다. 내가 원하는 시기인 3월부터 11월까지만 유효하도록 등록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등록을 하면 약간의 세금과 보험료 감면 효과도 있지만 내가 정말 필요 없는 시기에는 등록을 하지 않아도 되는 무언가 내 생각이 바이크 등록에도 반영될 수 있다고, 인정받고 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또 하나. 번호판의 글귀도 지정할 수가 있었는데 내 모터사이클에 새겨진 번호 판의 VG는 Viel Glück(영어로 Good Luck)의 약자로 어디인지 모를 미지의 행선지로 여행을 떠나는 나 스스로에게 행운을 빌어준다. 끝으로 번호판에서의 숫자는 나의 연식을 나타낸다.
괜한 웃음이 스며드는 독일 스타일 유머
독일의 유머는 지루하기 그지없다. TV 프로그램을 보고 있자면 그 이질감은 더 크게 느껴진다. 내가 독일어를 못해서 그러는 것은 절대 아니다. 케이블 TV를 해지하고 싶을 정도로 재미가 없어서 요즘 도이치카벨이라는 케이블 회사와 해지를 위해 싸우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릴 지경이다. 국적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유머 코드가 다르다는 것은 이해가 가능한 상황. 하지만 라이더의 세상에선 적어도 예외가 아닐까 생각한다.
독일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해마다 열리는 BMW 모터라드 데이즈에 참석하고 있다. 이곳에 가면 특이한 바이크들이 넘쳐나지만 역시 독일스러운 바이크는 맥주 통을 지고 있는 R 1150 GS가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이방인인 나에게는 재밌는 풍경 중에 하나로 꼽힌다. 브라켓을 보나 장착된 모습을 보면 이마저 정말 독일인답게 제대로 작정하고 제작해서 달았다는 느낌이다.
커스텀 바이크 축제에 들러서는 “Junge Frau zum Mitreisen gesucht ”이라는 스티커에 독일 아저씨 라이더들과 배를 잡고 웃은 적도 있다. 한글로 풀어보자면 “같이 타실 여성분 급구”로 왜 이렇게 내 이야기 같은지 하는 공감에 한 표를 던졌고, 그걸 보고 웃고 있는 나를 보고 껄껄 웃으며 “우리 생각은 다 똑같아 그치?” 하는 독일 아저씨도 기억이 난다.
독일의 라이더들이 생각하는 인류의 발전은 그간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달랐다. 인류가 걷기 시작하고 무기를 사용하고…, 그리고 바로 바이크에 올라타서 라이딩! 하하! 독일 라이더들의 센스에 내가 웃을 줄이야. 내가 유머감각이 떨어져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 인정해야 되는 것인지 독자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 저 스티커가 탐이 나서 기념품 가게를 뒤지고 또 뒤졌지만 끝내 구할 수 없어 아쉬웠다. 하지만 이러한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것은 독일에서 바이크를 타는 재미중 하나이다.
Credit
글/사진 쿤스트
2012년 독일로 이주해 평범한 직장을 다니는 코리안 라이더. 유유자적 경치 구경을 하면서 안전을 우선시하는 라이딩 타입. 독일에서 홀연히 은퇴할 때까지 일하며 모터바이크 문화와 캠핑을 천천히 즐겨 보는 게 작은 꿈이다. 그리고 독일, 유럽 전역에 걸쳐 셀 수 없이 많은 자동차/모터바이크 관련 박물관과 행사 참석을 계획하고 있고 느릿느릿 하나씩 이뤄가고 있다. 앞으로 독일 유럽에서 열리는 재밌는 이벤트들과 멋진 투어 코스, 라이더들이 궁금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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