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라이더와 함께
GS TROPHY 2020 IN NEW ZEA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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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험로 주행, 창의적인 스테이지
DAY 5
장소 푸나카이키 해변(Punakaiki Beach)
날씨 맑음, 구름 21ºC
코스 총 주행거리 360km – 고속도로 180km, 산악지형 180km
스페셜 스테이지 1 에미레이트 챌린지 / 2 랩(Rab) 챌린지
뉴질랜드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구름 낀 아침을 맞이하였다. 그만큼 더 습한 상태에서 침낭과 텐트를 말아 넣는 것이 찝찝한 하루였다. 담당 마샬은 “오늘 이전과는 다른 산악지형을 주행하게 될 것이고 돌이 많으니까 주의하는 게 좋아.”라고 험난한 하루를 예고했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속으로 진입했다. 확실히 날카로운 돌과 급한 경사로 이루어진 코스로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하였다. 밤사이 습기도 많이 내려 노면이 미끄러운 상태였다.
가장 후미에서 달리던 중 프런트 타이어 펑크로 인해 멈춘 권혁용 참가자를 발견했다. 이미 마샬과 선두 팀은 멀어진 상태였고 전화도 먹통이었다. 하지만 안전 브리핑 때 펑크 키트가 시트 아래에 있다는 것을 듣고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수리하고 다시 움직였다.
첫 번째 스테이지는 산속에서 진행되었다. 한 명씩 릴레이로 코스를 주파하는데 업힐 중간에 게시되어 있는 항공권의 비행기 번호, 시간, 좌석 정보를 외워 피니시 라인에 위치한 채점자에서 말하는 것이었다. 개별이 아닌 세 명이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면 되기 때문에 한 가지씩만 말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김현욱, 윤연수, 권혁용 참가자 순서로 출발했는데 김현욱 참가자와 나는 빨리 달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코스 도중에 있는 항공권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출발한 권혁용 참가자는 항공권을 발견한 곳에서 멈춰 서서 정확히 외운 뒤 출발해 모든 정보를 말했고 그 덕분에 팀의 실격을 막을 수 있었다. 이후로도 많은 바위와 도강으로 이루어진 코스 때문에 체력과 주행스킬을 요구했지만 큰 문제없이 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캠프에 도착하자 스페셜 스테이지가 기다렸다. 2020 GS 트로피를 후원한 아웃도어 브랜드인 랩(Rab) 챌린지였다. 출발선에서 마련된 텐트로 달려간 뒤 부츠를 벗고 텐트 안에 있는 침낭 속으로 완전히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처음 위치로 돌아오는 레이스였다. 참가자 세 명이 릴레이로 진행하며 총 소요 시간으로 순위를 매겼다. 한국인의 빠른 발과 순발력으로 막힘없이 달렸고 빠른 시간 안에 주파한 것 같아서 기뻤다.
한국 팀은 4위를 유지했고 여전히 상위권에 위치했다는 것을 상기하며 끝까지 노력하자고 파이팅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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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 땅, 갑작스러운 비
DAY 6
장소 테카포 호수(Lake Tekapo)
날씨 맑음, 구름 8-20ºC
코스 총 주행거리 440km – 고속도로 330km, 오프로드/산악지형 110km
스페셜 스테이지 1 Rent-a-Ride / 2 포토 콘테스트
6일째도 마찬가지로 5시 30분에 아침을 먹고 7시에 출발을 시작했다. 이제는 텐트나 침낭 정리하는 시간이 10분 내외로 아주 익숙해졌다. 오늘은 440km를 달려야 하기 때문에 아침부터 서둘렀다. 북섬과 다르게 남섬은 일교차가 컸기 때문에 체온 관리가 중요했다.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작은 카페와 오프로드 체험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첫 번째 스페셜 스테이지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라이더 한 명이 코스를 주행하고 다른 한 명은 라이더를 따라 달렸다. 첫 번째 라이더가 코스를 돌고 돌아오면 바로 다음 라이더가 코스로 진입했다. 알고 보니 이번 스테이지는 두 명의 라이더가 주행시간이 같도록 하는 미션이었고 따라 달리는 나머지 한 명은 라이더가 주행 중 장애물에 걸리거나 실수로 라바콘을 넘어뜨렸을 때 도와줄 수 있는 것이었다.
첫 번째 주행은 김현욱, 두 번째 주행은 내가 맡았고 권혁용 참가자는 따라 달리며 시간관리와 헬퍼 역할을 했다. 한국 팀은 이런 유형의 스테이지가 있을 것을 예상하고 ‘독도는 우리 땅’ 노래에 맞춰 시간을 측정하는 연습을 해왔다. 따라서 김현욱 참가자가 주행할 때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르며 시간을 측정했고 내가 달릴 때 그대로 따라 불렀다. 나는 정확한 박자로 노래를 부르려고 하다 게이트 하나를 놓치는 실수를 했다. 김현욱은 3분 9초, 나는 3분 6초로 단 3초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게이트 하나를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순위를 예상하기 어려웠다. 실수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한국 팀이 연습한 종목이 출제되었고 잘 해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고속도로를 330km 달려야 하는 일정이었는데 어둑어둑하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동반하자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준비했던 방풍 재킷을 꺼내 입고 달렸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점심 장소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로 몸을 녹이는데 날씨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때 한국 팀을 이끌던 마샬이 다가와 “이제 오프로드를 100km 정도 달리고 나면 캠프에 도착할 수 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 걱정이야. 그리고 우리는 후발주자로 출발했기 때문에 절대적인 시간도 많이 부족한 상태야. 그래서 너희의 의견을 물으려고 해. 시간이 늦더라도 오프로드를 경험하고 싶니? 아니면 아쉽지만 공도로 캠핑장까지 이동할래?”라고 물었다. 사실 우리의 의견을 묻는다곤 했지만 이미 다들 추운 날씨에 지쳐있는 상태였고 마샬도 그런 것 같았다. 한국 팀은 날씨가 궂은 상태니까 안전한 선택을 했다.
캠핑장까지 공도로 또 한참을 달리다 보니 날씨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먹구름은 어디 가고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었다. 새로운 오프로드 코스를 경험하지 못했지만 남들보다 일찍 들어가서 씻고 쉴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반짝이는 청록색 테카포 호수 앞에 텐트를 설치하고 다른 라이더들을 기다렸다. 먼저 출발한 라이더들은 GS 트로피 중 가장 즐거운 오프로드 코스였다고 말하며 자랑했다. 하지만 오프로드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아는 사실이 있다. 즐거움을 강조하는 코스는 대부분 험준하고 힘들다는 것이다.(웃음) 저녁식사와 함께 점수가 공개되었는데 첫 번째 스테이지에서 내가 게이트를 빼먹은 탓인지 하위권 점수를 받았다. 두 번째로 진행된 포토 콘테스트는 14위로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종합 순위는 5위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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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진 바이크, 아쉬운 전략
DAY 7
장소 애스파이어링 산, 남섬(Mt. Aspiring, South island)
날씨 맑음, 구름 12-24ºC
코스 총 주행거리 375km – 고속도로 195km, 오프로드/산악지형 180km
스페셜 스테이지 1 아크라포비치 챌린지 / 2 게이트 클러치 스타트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것은 같지만 눈을 뜨고 텐트 밖에 나왔을 때 바깥 풍경은 모두 달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멋진 아침은 테카포 호수였다. 아침이 오고 있지만 별들은 여전히 떠있었고 호수가 신비로운 하늘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오늘은 마지막 출발 순서였고 모든 라이더들의 짐을 트럭에 싣는 일을 해야 했다. 텐트와 침낭, 매트, 여분의 장비, 개인 소지품 등 모든 물건이 들어있는 대형 가방 140개를 트럭에 올리는 것이다. 아침부터 가방을 던지며 몸이 풀렸다.
남섬은 북섬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인간의 구조물이 잘 보이지 않고 광활한 대자연을 그대로 만끽할 수 있다. 또한 북섬보다 고저차가 심한 코스로 주행하다 보니 간간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멋진 전망이 펼쳐진다.
금빛 풀들을 양쪽에 끼고 30분쯤 달렸을 때 첫 번째 스테이지에 도착했다. 코스 자체는 단순했다. 참가자 3명 모두가 정해진 오프로드 슬라럼 코스를 릴레이로 달리고 걸린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었다. 어려운 코스가 아니었지만 앞선 라이더들이 땅을 파거나 넘어져서 노면이 불규칙했다. 나, 김현욱, 권혁용 순으로 출발했고 모두 실수 없이 빠르게 마무리했다.
다들 F 850GS와 익숙해진 것인지 평균 속도가 올라갔고 주행 자세가 편안해 보였다. 매일 3-400km를 달리다 보니 뜻밖의 훈련 효과를 얻고 있었다. 또한 노면도 어렵지 않아서 한국 팀 전원이 라이딩을 즐겼다. 점심은 오프로드 코스에서 나오자마자 있는 식당에서 먹었고 한국 팀과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는 브라질 팀을 만났다. 서로 첫 번째 스테이지는 어땠는지 물어보고 오늘 느낌은 어떤지, 서로 못생겼다는 농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점심을 먹고 또다시 시작된 오프로드를 달리다 내리막에 줄지어 멈췄다. 앞쪽에서 두 번째 스페셜 스테이지가 벌어지고 있었다. 세 명의 라이더가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바이크를 밀어서 시동 걸면 되는 것이었다. 1분간 여러 번 시도할 수 있으며 출발점부터 성공한 거리를 측정한다. 오프로드 주행 중에는 시동을 꺼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다시 시동을 거는 상황에서 배터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에 설득력 있는 스테이지였다. 앞선 팀들은 기어 포지션을 어떻게 할 것인지 라이더 한 명이 올라탈 것인지 두 명이 올라타고 한 명이 밀 것인지 고민했다. 한국 팀은 네덜란드 팀이 4단 기어로 최단거리를 기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4단 기어로 시도하기로 했다. 내가 바이크에 오르고 권혁용, 김현욱 참가자가 밀었다. 처음 시도한 뒤 실패하자마자 뒤로 밀어서 출발점으로 돌아갔고 다시 탄력을 받아 시도했지만 끝내 걸지 못했다. 기어가 너무 높았던 탓인지 바퀴가 돌더라도 엔진을 깨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털어내기 위해 팀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마샬 바로 뒤에 붙어서 달렸다. 6일 동안 맨 뒤에서 달리더라도 멋진 풍경을 똑같이 즐겼지만 선두에서 달리는 상쾌함과 재미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단순한 것인지 금방 기분이 나아졌다.(웃음) 그래도 한국 팀은 첫 번째 스테이지를 잘 마무리한 덕분에 한 단계 올라 종합 4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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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뒤집을 마지막 기회
DAY 8
장소 코로넷 피크, 남섬(Coronet Peak, South Island)
날씨 맑음, 구름 18-23ºC
코스 총 주행거리 265km – 고속도로 155km, 트랙, 오프로드 110km
스페셜 스테이지 1 젤리캔 챌린지 / 2 파이널 파쿠르
GS 트로피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8일째 날의 주행거리는 비교적 짧았다. 저녁에 최종 결과 발표와 마지막 파티가 예정되었기 때문이다. 두 개의 스페셜 스테이지가 있었고 마지막 스테이지는 ‘더블 스코어’로 순위 변동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평소처럼 모든 라이더가 오전 7시부터 출발했다. 구름이 다소 있는 날씨라서 화려한 일출은 없었지만 비교적 따뜻한 기온 덕분에 포근했다.
공도를 한 시간 가량 달려 오프로드에 진입했고 퀸즈스톤이 내려다보이는 레마카블 산맥에 올랐다. 평균 해발 2,300m로 이루어진 산맥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강이 나왔고 깊은 곳은 1미터가 넘는 듯했다. 몇몇 라이더들은 도강 중 넘어져 바이크에 들어간 물을 빼느라고 애를 쓰는 것 같았다. 다행히 한국 팀은 무리 없이 주파했고 첫 번째 스페셜 스테이지에 도착했다.
첫 번째 스페셜 스테이지 브리핑을 들으러 갔더니 현재까지 1위를 유지하고 있던 남아공 팀이 말을 걸었다. 본인들이 첫 번째 주자로 도전했고 풀숲 안에 숨어있던 바위를 보지 못해 크게 넘어졌다고 했다. 너무 큰 바위였기 때문에 남아공이 끝나고 코스에서 빼냈지만 좌측 길을 조심하라며 조언해 줬다. 서로 경쟁하는 입장임에도 우리를 걱정하며 조언해 주는 모습이 고마웠다.
젤리캔 챌린지는 한 명의 라이더가 바이크를 운전하고 다른 한 명이 10리터 용량의 연료통 두 개를 들고 뒤에 탄다. 출발 신호에 맞춰서 연료통을 실은 바이크와 세 번째 참가자가 함께 출발한다. 라이더는 코스를 돌고 되돌아오다가 중간지점에 동승자를 내려주고 그곳까지 달려간 나머지 한 명이 연료통을 나눠들어 계곡을 건너 되돌아오면 된다. 라이더, 동승자를 포함해 모든 인원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을 체크한다. 김현욱이 라이더, 권혁용은 동승자, 내가 달리기를 맡았다. 평소 바이크 주행이나 달리기 훈련을 많이 한 덕분에 빠른 시간 안에 스테이지를 해결했다.
이후 고속도로로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달렸다. 도착해서 바라본 마지막 스페셜 스테이지는 한국 팀에게 아주 유리했다. 마련된 코스를 릴레이로 가장 빠르게 주파해야 했고 발을 땅에 대거나 넘어지거나 라바콘을 넘어뜨리지 않아야 했다. 한국 팀은 권혁용, 김현욱, 윤연수 순으로 출발했다. 모두 개인 주행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너무 긴장한 탓이었을까 한국 팀 중 한 명이 코스를 이탈하는 실수를 했고 지켜보던 모든 라이더와 마샬들이 탄식을 숨기지 못했다. 그래도 다른 실수 없이 빠른 시간 안에 주파하며 GS 트로피의 스페셜 스테이지가 끝났다. 이어서 차량을 반납하고 마지막 밤을 보낼 텐트를 설치했다.
저녁시간이 되고 최종 순위를 발표했다. 합산 점수를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맨 아래 순위부터 호명하여 한국 팀은 몇 위인지 알 길이 없었다. 22등, 15등 10등, 7등까지 호명했는데도 한국 팀은 불리지 않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고 최종 결과 한국 팀은 5위에 위치했다.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코스를 이탈한 것 때문에 순위가 많이 밀렸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좋은 성적이었고 너무 기뻤다. 시상식이 끝나고 모두가 모여 춤추고 노래 부르며 마지막 밤을 불태웠다.
GS 트로피, 막을 내리다
한국 팀은 지난 9월에 선발된 뒤,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모여 훈련했다. GS 트로피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바이크를 꾸준히 타고 끌고 정비하며 열심히 준비했다. 뉴질랜드로 떠나기 전까지 체력훈련을 감행했고 부상을 입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준비한 GS 트로피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우리는 함께 준비하며 많은 것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가까워졌는데 뉴질랜드에서의 여정 동안 더욱 찐한 전우가 되었다. GS 트로피를 다녀오면 한동안 캠핑은 생각도 나지 않을 줄 알았다. 또한 바이크도 원 없이 탔기 때문에 얼마간은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팀원들도 같은 마음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에 도착한지 이틀 만에 모토 캠핑을 구상하고 있으며 2022 GS 트로피 국내 선발전 종목을 고민하고 있다. GS를 좋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미치진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GS에 제대로 미친 것 같다.
글 윤연수
사진 BMW모토라드
취재협조 BMW모토라드 www.bmw-motorra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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