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 배가 되다. 두카티 파니갈레 V2

    DUCATI
    PANIGALE V2

    두카티는 전통적으로 2기통 엔진으로도 출력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경쟁해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어 온 브랜드다. 이러한 트윈 엔진 슈퍼바이크의 바통을 이어받은 파니갈레 V2를 만나기 위해 스페인 헤레즈 서킷을 찾았다. 959에서 V2로의 진화, 과연 이름 말고 무엇이 바뀌었을까?

    지난달에 열린 두카티 월드 프리미어DWP를 통해 소개한 파니갈레V2의 미디어 테스트가 스페인의 헤레즈 서킷에서 열렸다. 차량 발표 전에 이미 헤레즈 서킷에서 열리는 정체 모를 신모델의 프레스 런칭에 참가가 정해졌었다. DWP가 끝나고 이번 테스트 모델이 V2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약간의 실망감이 들었다. DWP 이전부터 확실하게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발표 당시에도 가장 화제를 모은 스트리트 파이터 V4의 테스트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미디어 테스트는 트랙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모토 GP의 무대이기도 한 스페인의 헤레즈 서킷을 달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파니갈레 V2는 959파니갈레와 비슷할 것이라고 예상된 만큼 주행성능에서는 딱히 큰 기대가 없었다. 하지만 테스트 당일, 매 세션이 끝날 때마다 입가의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이렇게 재밌다니!

    파니갈레 V2

    이름의 파니갈레는 두카티 본사가 있는 동네 이름 ‘보르고 파니갈레’에서 따온 것으로 1199 이래로 두카티의 슈퍼바이크에 붙이는 모델명이다. 뒤에 붙은 V2는 당연하게도 V형 2기통 엔진을 의미한다. 아무래도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름 짓는데 많은 고민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두카티의 트윈 엔진은 그 레이아웃 때문에 L 트윈이라고 하지만 구조로 보면 V 트윈 엔진에 속하고 파니갈레 V4와의 연속성을 위해 V2로 지은 것이다. 기존에 전혀 없던 것을 완전히 새롭게 만든 것은 아니고 959 파니갈레의 엔진과 섀시를 기본으로 V4와 같은 디자인을 얹어서 만들었다. V2가 플래그쉽 모델인 1299가 아닌 959로 만들어진 이유는 1299는 V4로 완전히 대체되었기 때문이며 유로 5 대응에도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두카티 슈퍼바이크 DNA

    기본적인 차체의 구성은 959파니갈레와 거의 같다. 그래서 달라진 점을 먼저 살펴보자. 우선 외부 페어링 디자인을 V4 스타일로 바꾸었다. 날카로운 눈매의 헤드라이트와 두 개의 레이어로 입체적인 형상의 사이드 패널 등 디자인은 V4와 꼭 닮아있다.

    하지만 전후 램프를 제외하면 막상 V4 것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건 별로 없다. 베이스가 다른 차량이기 때문에 거의 다 새롭게 만들어졌다. V2의 차체가 더 슬림하고 길이도 짧아서 V4보다 차체의 날렵함이 강조되며 오히려 V4보다 더 예뻐 보인다. 연료탱크는 기존의 959을 그대로 사용하지만 전체적인 디자인과 잘 어울린다.

    여기에 컴팩트한 사이즈의 배기 시스템과 고급 모델에만 쓰던 싱글 사이드 스윙암이 조합된다. 이게 스타일면에서 신의 한 수다. 뭐 그리 큰 차이인가 싶지만 파니갈레 V2를 보다가 959 파니갈레를 보면 둘의 간극이 확실히 느껴진다.

    계기반 역시 흑백의 LCD 계기반에서 파니갈레 V4와 같은 컬러 TFT를 사용한다. 컬러 그래픽으로 보여지는 화면은 바이크의 세팅을 간편하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인성도 뛰어나다. 계기반은 주행 시 가장 많이 보는 부분이기에 라이더에게 주는 만족감의 차이는 더 크게 다가온다. 이와 같이 전체적으로 959파니갈레의 곳곳에 있던 염가 버전의 느낌이 완전히 사라졌다. V2가 V4에 비해 부족한 건 실린더 2개와 59마력 그리고 날개(윙렛) 뿐이다.

    시트 위 첫인상

    시트에 앉는 것만으로 달라진 인상을 받는다. 일단 쿠션이 좋아진 시트는 엉덩이를 착 감싸고 시트 전후 공간이 넓어지며 직선주로에서 187cm에 100kg 남짓의 거대한 덩치를 한껏 웅크릴 때 엉덩이 뒤 공간이 여유가 생겨서 편하다. 차체가 폭이 좁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릎 사이가 꽉 차는 느낌은 없지만 다리 사이에서 바이크를 가지고 놀기 좋다. 컴팩트한 차체 사이즈 덕분에 미들급 이하의 소형 스포츠 바이크를 타는 느낌도 든다. 물론 그들과는 비교불가의 고급스러움이 곳곳에 배어있지만.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1199파니갈레 때부터 이어지는 순정 사이드 스탠드는 풋패그 아래 숨어있는 형태라 레이싱 부츠의 매끈한 뒤꿈치로 밀어서 펴는 게 상당히 힘들다. 매 세션이 끝나 패독에 돌아오면 두카티 미케닉들이 서둘러 스탠드 펴는 걸 도와준다. 이미 문제를 다 인지하고 있다는 건데 몇 세대를 거치도록 여전히 안 바뀌는 것은 왜일까? 엔진의 가벼운 반응만큼이나 회전의 관성과 끈기가 없는 편이라 출발할 때 회전수를 조금 높여야 한다는 점도 약간 불편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V2에게 아쉬운 점은 이게 다였다.

    두카티 매직

    두카티는 파니갈레V2에 가장 확실한 마법을 걸었다. 순정 타이어는 도로용 스포츠 타이어인 로쏘 코르사II가 기본 장착되지만 트랙 테스트 바이크는 프런트에 소프트 컴파운드인 슈퍼코르사 SC1을, 리어에 미디움 컴파운드의 SC2를 조합했다. 파니갈레 V2에 피렐리 디아블로 슈퍼 코르사를 조합하면 단언컨대 세상에서 가장 다루기 쉬운 슈퍼바이크가 된다. 레이스 기술을 그대로 담은 슈퍼 코르사의 압도적인 그립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노면을 꽉 붙잡아주고 V2는 경쾌한 핸들링 감각으로 훌쩍 누워서 들어가면 원하는 대로 라인을 그려준다.

    V2는 엔진 출력이나 배기량 등 모든 면에서 리터급으로 취급되는 모델이 되었지만 핸들링은 미들급, 아니 쿼터급에 비견될 만큼 가볍고 경쾌하다. 959보다 차체를 앞으로 살짝 기울이고 무게중심은 조금 높여 핸들링의 민첩함을 더했다. 작은 변화지만 주행 시 느껴지는 차이는 크다. 코너 진입부터 더 빠르게 기울고 선회도 더 날카롭다. 컴팩트한 차체에 저항 없이 기울어 빠르게 돌아나가고 시원한 가속으로 이어지는, 마치 쿼터급처럼 코너를 돌고 리터급답게 가속한다. 959에 비해 서스펜션의 기본 세팅이 조금 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바뀌었는데 바이크의 움직임을 좀 더 이해하기 쉬웠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전자 장비가 앞에 나서는 일 없이 조용하게 서포트 해주며 라이더가 한계를 넘는 것을 절묘하게 막아준다. 덕분에 처음 달리는 트랙임에도 웜업 세션부터 꽤 재밌게 탈 수 있었다. 블라인드 코너가 별로 없고 바이크는 타기 쉬우니 더 빠르게 적응된다.

    코스도 바이크도 몸에 완전히 익고 나서 레이스 모드로 바꾸었다. 더 활발해진 스로틀 반응이 느껴지고 전자 장비의 개입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주행 중에 개입이 있었나?’라고 테스트를 마치고 주행을 복기해 보니 딱 한 번 13번 코너(로렌조 코너)에서 메인 스트레이트로 빠져나오며 풀 뱅킹 상태에서 직선로를 향해 스로틀을 전개할 때 램프가 깜빡임을 본 것이 기억하는 전부였다. 이처럼 실수로 한계를 넘으려 할 때 자연스럽게 그 실수를 커버해 주기 때문에 조금 더 과감하게 바이크를 다룰 수 있게 만들어준다. ABS는 물론 트랙션 컨트롤과 엔진 브레이크 컨트롤 등도 관성 측정 장치IMU 기반으로 바뀌었다. 이제 차량의 기울기와 움직임을 분석해 작동하고 특히 트랙션 컨트롤은 코너링 중에는 출력 조절이 더 섬세하게 제어되며 개입하는 순간 느껴지는 위화감이나 불안감이 확실히 덜하다.

    최고 출력은 155마력, 기존의 959에 비해 5마력이 늘었다. 동일 배기량으로 유로 5에 대응하면서도 토크와 출력을 모두 올렸다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일이다. 분명 베이비 파니갈레로 부르고 미들 웨이트로 분류하지만 이미 두카티 999의 출력은 뛰어넘었고 1098의 160마력에 육박하는 성능이다. 직선로를 빠져나와 2단에서 풀 스로틀로 열면 자연스럽게 프런트가 떠오르며 핸들바에 무게감이 사라진다. 동시에 윌리 컨트롤이 출력을 절묘하게 제어해 모든 힘을 가속에 쏟아붓는다. 스트레이트에서 가속할 때 힘이 넘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V4에 비하면 딱 가속에 필요한 만큼만 힘을 낸다.

    트랙과 도로, 양면에서의 즐거움

    슈퍼바이크를 타는 목적이 현존하는 최강의 머신을 소유한다는 데 있다면 파니갈레 V2는 형님격인 파니갈레 V4를 비롯해 요즘 슈퍼바이크에 비해 스펙 면에서는 조금 부족함이 있다. 하지만 평소에는 일상에서 즐기다가도 가끔 슈트를 갖춰 입고 트랙에서 무릎을 긁어가며 달리기에 딱 알맞은 바이크였다. 이 섹시한 디자인은 어디서든 아름답게 빛날 것이며 세워진 바이크를 바라볼 때마다 뿌듯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풀 패키지의 전자장비는 라이더의 안전을 챙겨주며, 두카티 트윈 엔진의 매력적인 엔진 필링은 달리는 즐거움을 더할 것이다. 여기에 두카티 코리아에서 수시로 트랙데이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으니 타 브랜드에 비해 트랙 주행의 기회가 많다는 점도 중요한 사항이다. 슈퍼바이크로 고갯길만 찾아다니는 것은 진짜 재미의 반밖에 모르는 것이다.

    V4 VS V2

    2년 전 발렌시아에서 열렸던 파니갈레 V4 테스트에서 첫 세션이 끝났을 때 입속이 바싹 말라버렸던 기억이 난다. 매 순간 과잉에 가깝게 나오는 파워는 재미와 공포감이 혼재된 스릴을 선사했다. 그래서 스로틀을 열 때마다 피학적 쾌감만큼이나 엄청난 스트레스도 함께 주었다. 과연 전자 장비 도움 없이도 제대로 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V2를 타고 달리는 동안 공포심은 들지 않았고 주행의 재미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바이크를 조종하고 있다는 실감이 크고 바이크에 끌려다니는 굴욕감 없이 즐길 수 있게 한다. 넘치는 파워의 V4와는 확실히 다른 매력이 있다. 두카티 슈퍼바이크의 매력은 오롯이 담고 있으면서 주행의 재미를 찾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파니갈레 V2는 V4에 비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바이크였다.

    헤레즈 앙헬 니에토 서킷
    circuito de jerez – angel nieto

    현재 모토 GP가 열리는 가장 중요한 서킷 중 하나이며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서킷이 생기기 전인 1990년까지는 F1도 열렸던 곳이다. 트랙의 이름은 2017년 세상을 떠난 스페인의 전설적인 레이서 앙헬 니에토(1947-2017)를 기리기 위해 2018년부터 앙헬 니에토 서킷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스페인의 발렌시아 서킷은 70년대에 앙헬 니에토와 경쟁하던 리카르도 토르모의 이름이 붙어있다.) 서킷은 총 길이 4,428m이며 두 개의 짧은 직선주로에 1랩당 13개의 코너가 있다. 그중의 절반은 90도 이상으로 방향을 바꾸는 깊은 코너라 차량의 출력보다는 테크닉과 코너링 퍼포먼스가 중요한 트랙이다. 헤레즈 서킷의 가장 마지막 코너이자 가장 치열한 순위 다툼이 벌어지는 13번 코너에는 이번에 은퇴를 선언한 호르헤 로렌조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로렌조의 국제 대회 데뷔가 이 헤레즈 서킷이었으며 이 코너에서도 멋진 추월을 선보인 바가 있다. 이에 로렌즈가 아주 잘 나가던 시절인 2013년, 그의 26번째 생일에 헤레즈 서킷으로부터 선물로 코너의 이름을 수여받게 되었다.

    DUCATI PANIGALE V2
    엔진 형식 수랭 4스트로크 L형 2기통 데스모드로믹 4밸브   보어×스트로크 100× 60.8mm   배기량 955cc   압축비 12.5 : 1   최고출력 155hp / 10,750rpm   최대토크 104Nm / 9000rpm   시동방식 셀프 스타터   연료공급방식 전자제어 연료분사식   연료탱크용량 17ℓ   변속기 6단 리턴   서스펜션 (F)텔레스코픽 도립 (R)싱글쇽 스윙암   타이어 사이즈 (F)120/70 ZR17 (R)180/60 ZR17   브레이크 (F)320mm더블디스크 (R)245mm싱글디스크   전장×전폭×전고 미발표   휠 베이스 1436mm   시트높이 840mm   건조중량 176kg   판매가격 가격미정


     양현용
    사진 두카티
    취재협조 두카티 코리아 www.ducati-korea.com

    본 기사를 블로그, 커뮤니티 홈페이지 등에 기사를 재편집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웹사이트 내 모든 컨텐츠의 소유는 모토라보에 있습니다.

    지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