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말라얀과 함께 달린 히말라야 1100km
MOTO HIMALAYA 2022
‘화성에 가더라도 이보다 큰 감흥이 있을까?’ 비현실적으로 장엄한 풍경 속을 달리며 끊임없이 감동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계지도를 펴고 히말라야 산맥이 어디 있는지 한 번에 짚어낼 수 있을까? 대충 이쯤이겠구나 하고 짐작은 하겠지만 정확히는 잘 모를 것이다. 사실 ‘평생 가볼 일이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분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히말라야 산맥에 에베레스트산이 있다’는 것 정도의 기본 상식 말고는 미지의 세계였다. 히말라야에 가게 되었을 때도 히말라야라는 것 보다는 가서 바이크를 타고 모험을 한다는 것 자체가 더 기대되었던 것 같다.
이번 투어는 유투브에서 더스티노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박지훈님, a.k.a 박쌤이 함께했다. 바이크 관련 행사에서 몇 번인가 만난 적이 있긴 하지만 함께하는 투어는 처음이었다. 그는 인생의 버킷리스트가 라다크 여행이라고 했다. 실제로 2020년 라다크투어를 준비하다 COVID-19로 인해 무산되었고 이번에 새롭게 기회가 닿은 것이다. 그만큼 이번여행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고 여행에 대한 기대도 남달랐다. 그 영향을 받아서일까? 더불어 나의 기대감도 함께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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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레, 라다크
레Leh는 라다크Ladakh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다. 인도 최북단에 위치하고 인도의 통치하에 있지만 주로 티베트 사람들이 살고 있어 외모부터 인도와는 많이 다르다. 그 크기가 대한민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큰 지역이라 이번 투어는 모두 라다크에 속한 지역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에서 레까지는 직항이 없어 델리를 거쳐 들어갔다.
“어이구 죽겠다!”
레Leh 공항에 도착해서 고작 100미터도 움직이지 못하고 내뱉은 탄식이었다. 해발3500미터에 위치한 레는 평생 해발 2000미터를 넘길 일 없이 살아온 우리에게는 그 자체로 관문이었다. 쨍한 태양과 파란 하늘, 선명한 풍경은 산뜻하지만 숨을 쉬고 있어도 숨이 막힌다. 고도가 너무 높아 산소가 희박하다. ‘이거 너무 만만하게 보고 덤빈 게 아닐까?’ 덜컥 겁이 난다. 고산병이 심해지면 일정이고 뭐고 다시 델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박쌤의 말에 고산병 약을 하나 얼른 챙겨먹었다.
다행히 레에서 첫날 일정은 간단한 오리엔테이션과 고소 적응을 위한 일정뿐이었다. 물을 많이 마시고, 많이 걷지 말고, 계단을 오르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곳을 탐험하고픈 욕심에 박쌤과 함께 가벼운 산책을 나섰다. 가볍게 30분쯤 걸었을까?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빠르게 호텔로 돌아와 두통약을 챙겨 먹고 기절했다. 오리엔테이션과 메디컬 체크를 위해 빨리 내려오라는 전화가 없었다면 그대로 다음날까지 잠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오리엔테이션 자리에는 함께했지만 사실 기억나는 게 거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했다. 고산병에는 다양한 증세가 있고 그중에 소화불량도 있었다. 그날 하루 동안 먹은 것이 거의 없었는데 그마저도 모두 게워내 버리며 최악의 컨디션으로 첫날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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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레 > 인더스-잔스카 합류점 > 레
총 주행거리 72km
간밤에 박쌤이 주고 간 소화제 덕분인지 상태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고맙게도 늦은 밤 레 시내를 뒤져서 사다 준 소화제였다. 어제는 몸 상태가 좋지 못해 오늘에야 함께 라이딩을 하게 될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번 투어의 팀원은 19명으로 2/3가 일본에서 왔고 나머지 인원으로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등 다양한 국적이 더해진 구성이었다. 구면인 모터사이클 저널리스트들도 여럿이라 안심이다. 다만 어제 밤 파랗게 질려서 고통받던 얼굴 때문에 아침 내내 안부 인사를 받느라 바빴다. 앞으로 8일을 함께 할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첫인상을 남긴 것 같아 아쉬웠다.
오전부터 첫 라이딩 준비로 부산하다. 오늘은 왕복 72km남짓의 짧은 라이딩으로 본격적인 라이딩 전 몸풀기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단 클랙슨 사용 빈도가 유난히 높은 인도의 교통상황에 익숙해지고 우리의 경우 왼쪽 주행을 먼저 몸에 익히기 위함이다. 이곳 사람들은 클랙슨을 도로 위 대화의 도구로 사용한다. 울린다고 화내는 사람은 없어도 안 울린다고 화내는 사람은 있으니 끼어들던 추월하든 내가 여기 있음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수시로 빵빵거려야 했다.
그리고 의외로 추월이 상당히 힘들었다. 이곳은 중앙선개념이 없다. 아니 애초에 중앙선이 있는 도로가 거의 없다. 그래서 추월이 필수적인데 우측 추월이 익숙하지 않은데다 앞 차량이 달리는 속도도 제법 빠르다보니 느긋한 가속력을 가진 히말라얀으로 추월하려면 한참 걸린다.
오늘의 목적지는 인더스강과 잔스카강이 한줄기로 모이는 인더스-잔스카 합류점이다. 빠른 물살 때문에 황토색으로 흐르는 평범한 강이지만 그 주변 풍광은 너무나 웅장했다. “이 강에 빠지면 파키스탄까지 흘러간다”는 인도친구의 이야기에 우리가 임진강을 타고 북한으로 흘러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것이 이번 여정에서 가장 평범한 풍경”이라는 이야기에 이후 펼쳐질 세계가 더욱 기대되기 시작했다.
가벼운 라이딩 후 몸 상태가 더욱 좋아졌다. 역시 라이더의 가장 좋은 치료제는 라이딩이라. 이른 시각에 복귀해 오후 시간에는 레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사찰 샨티 스투파Shanti Stupa에 올랐다. 이곳에서 내일 우리가 달리게 될 카르둥라로 가는 길과 산등성이가 그대로 보였다. 산스크리트어로 ‘눈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히말라야답게 8월 한여름에도 하얗게 눈이 쌓여있는 모습이 웅장하면서도 두려운 감정까지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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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레-카르둥라-누브라밸리
총 주행거리 160km
기상시간이 새벽 6시 45분으로 빨랐지만 라이딩에 대한 기대감과 3시간 반의 시차 덕분에 더 이르게 눈이 떠졌다. 오늘은 호텔로 돌아오는 게 아닌 누브라밸리의 캠프에서 숙박을 해야 하기에 짐은 지원차량에 싣는다. 드디어 본격적인 라이딩의 시작이다. 작은 도시인 레는 금세 벗어나고 이내 산길로 접어들어 어제 샨티 스투파에서 미리 봐두었던 길을 그대로 달린다.
다만 예상치 못한 것은 그때 본 길은 아주 미미한 시작이었을 뿐이란 것이다. 그로부터 한참을 고불고불 올라갔다. 여기가 정상인가? 싶다가도 올라갈 곳이 또 새로운 곳이 나오고 이번에는 정상이 맞겠지 싶었는데 아니다. 각자 다른페이스로 달리지만 길을 잃은 걱정은 없다. 어차피 길이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포장도로였지만 예상치 못하게 오프로드가 되기도 하고 고도가 높아지며 점점 기온도 떨어진다. 어느새 얼음이 살짝 얼어있는 모습도 보인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인지 완전히 짜부러진 차 한 대가길가에 전시되어 있다. 없던 집중력도 확 생길만큼 섬뜩하다. 참고로 이 히말라야 산맥의 모든 산길에는 가드레일이 거의 없다. 조금 위험해보이긴 해도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아 좋다고 느꼈다. 다만 집중력을 잃으면 바로 히말라야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높아질수록 풍경은 아름답게 변하기 때문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으려 더욱 노력해야한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카르둥라 정상에 도착했다. 해발 5,600미터의 세상에서 가장 높은 도로가 있는 고갯길이다. 기온은 영하까지 떨어졌지만 옷을 든든히 챙겨 입은 덕에 그리 춥진 않았다. 정상의 표지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10미터쯤 걸었는데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 찌릿하게 두통이 올라오고 숨이 턱턱 막힌다. 고작 몇 미터 만에 전력 질주한 것같은 몸 상태가 되다니 신기하면서도 무서워 기념사진을 포기하기로 했다. 어딘가 앉아있을 자리를 찾다가 결국 바이크 시트 위에 앉았다. 카르둥라 정상에서 머무르기로 한 시간은 15분. 그이상은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고산병 증세를 겪을 수 있다.
일행들의 출발신호가 떨어지자 투어를 선두에서 이끌어주는 아르제이 뒤에 바싹 붙었다. 당시 내 머릿속은 1초라도 빠르게 이 산을 내려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자 앞서가던 아르제이가 속도를 높인다. 뭔가 열심히 따라오니 덩달아 신나서 달리는 모습이다. 내려오는 길은 오프로드가 80%정도였다. 울툴불퉁한 길을 달리니 머리가 울려서 할 수 없이 스탠딩 자세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속도가 빠른 편이 오히려 충격이 덜하다.
히말라얀으로 오프로드에서 이렇게 달릴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달렸다. 체중과 카메라가방까지 더해진 상태로 스탠딩 포지션 주행, 그리고 전력질주로 인한 무호흡 주행 등, 돌이켜보면 고산병에 안 좋은 건 다했던 것 같다. 결국 두 사람만 한참 일찍 식당에 도착했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넉다운 되어버렸다.
얼굴은 핏기가 사라진 채 퉁퉁 부어올랐다. 한참 뒤 닥터가 혈중 산소농도를 체크하니 70%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결국 산소탱크의 신세를 져야했다. 고농도의 산소를 코로 밀어 넣자 몸 상태가 극적으로 좋아진다. 이번 투어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산소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는다.(웃음) 그리고 이렇게 기운이 없던 것은 첫날 체한 이후 스프 조금 말고는 아예 먹은 게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첫날부터 호되게 체한 덕분에 먹는 것에 대한 걱정이 커서 식사를 피한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달리려면 일단 먹어야 되겠다는 생각에 이후로는 식사를 꼬박꼬박 챙겨먹었다. 다행히 점심시간 동안 상태가 크게 호전되었다.
식사 장소부터 누브라밸리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누브라밸리는 산과 산 사이에 협곡에 사막이 있는 곳이다. 그 이색적인 풍경에 감탄하며 달렸다. 재밌는 점은 풍경만 봐도 이곳의 사막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으며 모래를 계곡으로 끌어내리고 그 모래들이 쌓여서 사막을 이룬 것. 그 과정이 주변 풍경 속에 진행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히말라야 투어는 이제 겨우 산 하나를 넘었을 뿐이다.
<다음달로 계속됩니다>
글 양현용
사진 양현용, 로얄엔필드
취재협조 로얄엔필드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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