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 듣는 악동 KTM 390 DUKE


    교통량이 많은 도심 속을 자유롭게 달린다. 넓은 대로부터 좁은 골목길, 공사로 인해 울퉁불퉁한 노면 등 다양한 상황에서도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무조건
    강력하고 덩치가 크고 고급스러운 게 좋은 바이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줬다. 바로 390 듀크다.





    뜬금없지만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생각해보자. 플레이스테이션, 팽이, 유희왕 카드, 딱지, BB탄 총, 스케이트보드 등 다양하다. 유치원생 때부터 중고등학생 때까지 나이가 들면서 관심사가 바뀌었고 그에 맞춰 새로운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돌이켜보면 무조건 비싸고 고급스러운 게 늘 최고는 아니었다. 390 듀크도 마찬가지다. 면허를 갓 취득했을 땐 배기량이 크고 강력한 모델이 최고라고 여겼기 때문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에서의 390 듀크는 콤팩트하고 다루기 쉬우며 경쾌한 주행 성능이 너무나 매력적인 바이크다.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390 듀크는 2013년에 출시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기존에 있던 125듀크와 200 듀크에 이어 상위 모델과의 간극을 메워주는 모델이었고 동급 타 브랜드에 비해 높은 수준의 파츠를 갖췄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7년, 현재 KTM의 패밀리룩인 LED 헤드라이트와 날렵함이 강조된 페어링을 적용했고 고속주행보다 토크 위주로 엔진을 설계하여 매력을 더했다. 이번에 출시한 390 듀크는 높아진 환경 규제에 맞춰 유로 5를 대응했고 외형 디자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퀵시프터가 순정 옵션으로 제공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 외의 출력이나 편의장치, 전자장치에도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이렇게만 보면 단점처럼 보이지만 과연 그럴까?


    KTM 패밀리룩을 나타내는 LED 헤드라이트가 그대로 적용되었다

    WP의 43mm 도립식 포크는 초기 댐핑은 부드럽고 강한 제동에도 잘 버텨주는 세팅이다


    상위 모델인 890 듀크 R이나 1290 슈퍼 듀크 R이 떠오르니 근본 있는 디자인이라는 느낌이다. 이것이 패밀리룩이 주는 이점이다



    익숙함과 고급감

    390 듀크의 2021년 신형 컬러는 실버와 화이트 두 가지다. 시승 차량은 무광 실버였는데 휠과 차대는 오렌지, 프런트 펜더 연료 탱크, 서브 프레임은 유광 블랙을 사용했다. 2017년부터 동일한 외형 디자인이지만 새로운 컬러감으로 신형의 느낌을 잘 살렸다. 어느 컬러 하나가 과하다는 느낌 없이 조화롭다. 특히 무광 실버의 사이드 페어링은 이미지로만 봤을 땐 과연 잘 어울릴지 의문이었는데 바이크의 날렵함을 부각시키고 실물의 조형미가 상당하다. 전면 디자인도 이전 모델과 동일한데 벌써 4년이 지난 덕인지 기괴하게 보이던 첫 느낌은 깔끔하게 사라졌다. 오히려 상위 모델인 890 듀크 R이나 1290 슈퍼 듀크 R이 떠오르니 근본 있는 디자인이라는 느낌이다. 이것이 패밀리룩이 주는 이점이다.




    휠, 서스펜션, 브레이크 시스템 등 주행 성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파츠들도 변하지 않았다. 기존과 동일한 디자인의 17인치 휠이 장착되었고 WP의 43mm 포크와 프리로드 조절이 가능한 리어 쇽이 그대로 적용됐다. 브레이크는 전방에 320mm 디스크와 브렘보 자회사인 바이브레의 4피스톤 캘리퍼 장착되었다. 이 밖에 TFT 계기반과 전자식 스로틀, 2채널 ABS 등도 기존부터 모두 갖추고 있던 스펙이다. 느낌이 오는가? 390 듀크는 다른 브랜드들이 2021년 유로 5를 대응하는 뉴 모델을 출시하며 갖추기 시작한 요소들을 이미 몇 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었다.


    높은 완성도와 부드러움

    390 듀크의 시트고는 830mm로 동일하다. 수치상 발착지성이 좋은 수준은 아니지만 149kg의 가벼운 건조중량 덕분에 대부분 안정적으로 다룰 수 있다. 또한, 순정 세팅 자체가 기본적으로 프리로드를 조금 조여놓은 상태라서 필요하다면 프리로드를 풀어서 발착지성을 높일 수 있다. 핸들 바는 쿼터급에 알맞은 수준으로 과장되지 않았다. 참 별것도 아닌 것 같아도 클러치와 브레이크 레버가 조절식인 점이 반갑다. 일체형 레버의 경우 라이더가 바이크에 맞춰서 주행하는 느낌이라면 조절식은 라이더의 손가락 길이와 원하는 답력에 맞게 세팅할 수 있다. 사소한 디테일인데 주행 감각에는 큰 영향을 준다. 이전과 동일한 TFT 계기반은 시인성이 좋고 핸들 바 좌측의 직관적인 스위치 뭉치로 조작할 수 있다. 반응성이 좋아서 ABS 모드와 KTM MY RIDE 등을 빠르게 조작할 수 있다. 또한, 새롭게 추가된 퀵시프트(옵션)도 계기반 내에서 설정할 수 있다.


    TFT 풀컬러 디스플레이는 주행 속도, 주행 거리, 기어 포지션, ABS 모드 상태 등을 표시한다

    실버 컬러 차량은 서브 프레임이 블랙으로 적용되었고 시트는 날렵한 디자인에 비해 푹신한 착좌감을 제공한다



    출발과 동시에 느껴지는 건 ‘부드러움’이다. 이전 세대에서 맛봤던 경쾌한 가속감이 다소 다듬어진 감각이다. 개인적으로는 살짝 아쉬움을 느낀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내 변속과 함께 감탄을 자아냈다. 옵션으로 추가된 퀵시프트의 작동감이 매우 우수하다. 어느 rpm이든 스로틀을 조금만 감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변속된다. 과거에는 최대 토크가 분출되는 7,000rpm까지 엔진을 열심히 돌려가며 가속했는데 그때보다 훨씬 일찍 변속하면서 여유롭게 달리게 된다. 간혹 속도를 줄였다가 다시 가속할 때 ‘왜 이렇게 답답하지?’ 싶은 마음도 들었는데 저속 토크가 좋다 보니 기어를 내리지 않고 4단이나 5단을 맞물려놓은 탓이었다. 서스펜션의 초반 느낌은 부드러운데 핸들링을 빠르게 가져가 보면 꽤 탄탄하다. 새롭게 적용된 콘티넨탈의 콘티모션 Z 타이어가 쫀쫀하게 아스팔트를 붙잡는다. 시승 당시 외기 온도가 10도 이하였는데 조금만 주행해도 열이 오르고 미끄러짐이나 불안감이 적었다.


    재미있는 장난감

    확실히 고급감이 좋아진 건 알겠다. 하지만 내가 알던 390 듀크의 원래 진가는 보이지 않았다. ABS 슈퍼모토 모드를 설정하고 rpm을 끝까지 채워가며 달리기 시작했다. KTM은 대부분 모델들을 한계 rpm 기준 2/3를 넘어설 때 최대 토크가 발휘되도록 설계한다. 따라서 390 듀크도 라이더의 실력에 따라 임프레션이 극명하게 갈려 왔다. 너무 부드럽고 약하다는 의견과 쿼터급 치곤 넘치는 토크가 매력적이라는 의견이었다. 바로 그 후자의 감각을 이제야 느낄 수 있었다.

    리어에는 230mm싱글디스크와 바이브레 액시얼 캘리퍼가 조합되었다

    엔진의 측면부를 지나가던 매니폴드가 전방을 거쳐 하단으로 낮게 깔린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다

    핸들 좌측 스위치 뭉치의 버튼으로 다양한 기능을 사용할 수 있고 야간에는 백라이트가 들어와 시인성이 좋다



    부드럽게 느껴지던 초반에 비해 후반 영역은 짜릿하다. 게다가 퀵시프트가 더해져 가속감은 이전과 비교 불가다. 1단부터 rpm을 차곡차곡 쌓으며 달리다 보면 어느새 적립된 속도가 상당하다. 가벼운 무게와 1,357mm의 짧은 휠베이스에도 불구하고 고속주행의 안정감이 상당하다. 1단은 기본이고 2단에서도 클러치를 사용하면 프런트휠이 떠오른다. 동급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토크감이다. 기어비는 1단부터 4단까지 촘촘한 편이고 5단부터 크루징을 위해 길게 늘어진 세팅이다. 사실 4단 최고회전수에서 제원상 120km/h 정도의 속도를 내기 때문에 도심주행 중 부족함이 없다. 감속 시에는 rpm을 보정하며 리어 휠에 과도한 토크가 걸리는 것을 방지하고 그 이상의 토크가 걸리면 슬리퍼 클러치가 무마시킨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안정적이라서 반갑기도 심심하기도 하다. ABS 슈퍼모토 모드를 설정하면 리어 ABS가 해제될 뿐만이 아니라 프런트 ABS의 개입 시기도 늦춰진다. 그만큼 더 강한 제동이 가능하고 리어 휠이 떠오르기까지 한다. 이때 프런트 포크의 댐핑은 쉽게 한계를 보이지 않는다. 라이더의 의도에 맞춰 서서히 눌리며 버티다가 리어 휠이 완전히 들린 상태에서 브레이크 레버를 더 당겼을 때 버텀 러버가 ‘툭’ 하고 닿는다. 인위적으로 한계를 테스트하지 않는 이상 전체적으로 잘 조율된 느낌이다. 혹시나 노면이 미끄러워 프런트가 락이 되는 순간 그 즉시 ABS가 빠르게 개입하며 수습하니 부담이 없다.

    훌륭한 교보재

    390 듀크는 겉보기와 같이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2017년 당시 모델부터 타브랜드의 경쟁 모델보다 몇 발자국 앞선 성능을 갖춰왔기 때문에 현재에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느낌이다. 또한, 이제서야 LED 라이트를 적용하고 전자식 스로틀, 조절식 ABS 등을 적용한 경쟁 모델들을 비웃듯 퀵시프트를 마련했다. 물론 옵션으로 추가해야 하지만 소프트웨어만으로 쉽게 적용할 수 있고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한 번 더 앞서나갈 수 있는 무기로 보인다. 과거에는 배기량으로 나뉜 클래스에 따라 한계가 명확했다. 하지만 현재에는 상위 모델에 버금가는 기능과 성능을 쿼터 클래스에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그만큼 390 듀크는 이전보다 더 강력해졌고 완성도가 높아졌다. 악동 같던 인상은 여전하지만 차분한 면이 더해져 누구에게나 더욱 매력적인 녀석이 되었다.




    KTM 390 DUKE
    엔진형식 수랭 4스트로크 단기통 DOHC
    보어×스트로크 89 × 60(mm)
    배기량 373cc
    압축비 미발표
    최고출력 44hp / 9,000rpm
    최대토크 37Nm / 7,000rpm
    시동방식 셀프 스타터
    연료공급방식 전자제어 연료분사식(FI)
    연료탱크용량 13.4ℓ
    변속기 6단 리턴
    서스펜션 (F)43mm텔레스코픽 도립 (R)싱글쇽 스윙암
    타이어사이즈 (F)110/70 17 (R)150/60 17
    브레이크 (F)320mm싱글디스크 (R)230mm싱글디스크
    전장×전폭×전고 미발표
    휠베이스 1,357mm
    시트높이 830mm
    건조중량 149kg
    판매가격 800만 원


    윤연수
    사진 양현용
    취재협조 KTM코리아 kt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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