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리프트 이상의 진화, 포르쉐 뉴 카이엔

    신형 카이엔은 이전과 많은 부분이 다르면서도
    동시에 본질을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다.











    프리미엄 SUV의 전성시대다. 프리미엄 SUV는 세련된 디자인과 뛰어난 공간 효율성, 첨단 편의 장비를 갖추면서도 뛰어난 오프로드 주파 능력과 동시에 날렵한 스포츠 주행성까지 가능한 차를 의미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동안 여러 대의 프리미엄 SUV를 경험하면서, 미묘하게 각 차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부는 진화라는 목적때문에 ‘편하고 좋은 차’라는 본질에서 약간 벗어나 있었다. 가끔은 너무 당연한 기본기조차 실현되지 않는 모습이다. 예컨대 M사의 초호화 SUV는 첨단 전자제어 기술을 강조했지만, 실내 내장재가 완벽하게 고정되지 않아서 신경이 쓰였다. 손가락으로 내장재 곳곳을 가볍게 눌러보면 마치 30년은 된 학교 교실 바닥처럼 ‘삐그덕’ 거리기도 했다. A사의 스포츠 SUV는 어찌나 모터스포츠 감각을 제대로 구현했는지 화끈한 가속력과 코너링에 모든 것을 집중했다. 반대로 승차감은 대단히 신경질적이다. 통통 튀는 노면 충격을 그대로 운전자에게 전달해서 내 요추 뼈 3번과 4번이 서로 분리될 것처럼 느껴졌다. 엄밀히 말해 세상에 모든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자동차는 없다는 게 정답이다. 따라서 SUV가 아무리 ‘만능’을 강조해도 어딘가는 빈틈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보수적인 관점에서도 사용자가 단점을 거의 찾기 어려운 자동차가 가끔 있다. 포르쉐 뉴 카이엔이 그랬다.




    새로운 디자인과 고도로 디지털화된 인터페이스


    지난해 한국에 새롭게 선보인 신형 카이엔은 3세대의 부분 변경 버전이다. 보통 페이스리프트라고 부르는 부분 변경은 출시 후 3~4년 정도가 지나 신차 효과가 줄어들 때 등장한다. 첨단 편의 장비를 추가하고 디자인을 일부 업그레이드하면서 상품성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반면 신형 카이엔은 ‘브랜드 사상 가장 광범위한 업그레이드’라는 포르쉐의 설명처럼, 제품 안팎으로 많은 변화를 담았다. 국내에는 카이엔과 카이엔 쿠페, 카이엔 터보 GT 등 3종으로 출시되었고, 파워트레인에 따라 가솔린 기본형, E-하이브리드, SE-하이브리드, 터보(터보 GT)로 구분된다. 그중 이번에 시승한 모델은 기본형으로 카이엔 시리즈의 본질에 충실한 모델이다. 뉴 카이엔의 외형은 잘 다듬어졌다. 전체적으로는 구형과 비슷하다. 카이엔 오너나 신형에 관심 있는 소비자가 아니라면 정확하게 무엇이 다른지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반면 구형과 신형 두 차를 한자리에서 비교한다면 신형이 더 세련되고 잘 정돈된 디테일을 가진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신형은 보닛에 각을 강조하는 파워 돔 디자인으로 좀 더 도시적인 느낌이다. 매트릭스 LED 헤드라이트와 3차원 디자인 테일라이트, 번호판이 뒷 범퍼 하단에 위치하면서 좀 더 성숙한 분위기를 내는 리어 엔드가 특징이다. 신형의 매트릭스 LED 헤드라이트는 이전 포르쉐 다이내믹 라이트 시스템(PDLS+)에서 발전한 결과다. 그리고 이번엔 모든 카이엔에 기본 사양이다. 고해상도 HD 매트릭스 LED 헤드라이트는 두 개의 고화질 모듈과 헤드램프 당 3만2천 개 이상의 픽셀로 구성되어 하이빔 라이트를 원하는 부분에만 비출 수 있다. 쉽게 말해 앞서 달리는 자동차 운전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어두운 곳에서 운전자 시야를 극대화한다. 개별 맞춤형 옵션도 강화됐다. 시승차의 ‘몬테고 블루 메탈릭’ 컬러 외에도 11개 이상의 외장 컬러를 선택할 수 있다. 포르쉐 맞춤형 컬러 옵션인 ‘페인트 투 샘플’을 선택하면 과거제작된 수만 가지 색상 중에서도 원하는 컬러를 고를 수 있다. 휠은 기본이 20인치, 최대 22인치를 선택할 수 있으며 색상과 디자인에 변화를 주어 25종을 제공한다. 물론 포르쉐 옵션 품의 가격은 언제나 컨피규레이터에서 선택하기 전에 심호흡이 필요하다. 시승차에 달린 22인치 익스클루시브 디자인 스포트 휠은 710만 원을 추가로 지불한 것이다.







    신형의 실내는 새롭게 설계된 디스플레이와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디지털 경험이 중심에 있다. 포르쉐는 신형 카이엔에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완벽한 균형을 추구했다. 운전자가 자주 사용하는 기능은 스티어링 휠 주변에 배치하고, 변속기 레버는 최신 911에서처럼 작은 스틱 모양으로 만들어 대시보드에 달았다. 운전이란 과정을 직관적이고 단순화하려는 노력이랄까? 운전석에 12.6인치 풀 디지털 계기판이 달리고 옵션으로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선택할 수 있다. 계기반은 커브드 형태라 시인성이 좋으면서도, 동시에 위쪽 실드 커버가 없어서 깔끔해 보인다.대시보드에 통합된 12.3인치 중앙 디스플레이는 포르쉐 커뮤니케이션 매니지먼트(PCM)를 통해 차의 다양한 기능을 제어한다. 무선 애플 카플레이는 사용하기 편리하고, 스마트폰 앱과 연결성을 최적화한다. 카이엔 최초로 10.9인치 디스플레이가 조수석 옵션으로 제공된 점도 특징이다. 자동차의 각종 주행 데이터나 오디오 제어, 기타 영상 콘텐츠 스트리밍도 지원한다. 조수석 모니터는 실제 포르쉐 오너에게만 활성화되는 ‘마이 포르쉐 앱’을 등록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엔 모든 기능을 테스트해보지 못했다. 어쨌든, 이 보조 디스플레이는 운전석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특수 필름처리가 되어 있어서 주행 때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




    편안한 승차감과 여전히 믿을 수 있는 핸들링 감각



    새로운 카이엔은 기본형부터 섀시의 안정성과 균형이 확실히 좋아졌다.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을 포함한 스틸 스프링 서스펜션은 기본 사양,이며 쇽업소버를 2 밸브 구조로 만들어 리바운드와 컴프레션 스테이지를 분리해 최적의 타이어 접지력을 발휘한다. 에어 서스펜션과 조합되는 쇽업소버는 2 챔버, 2 밸브로 부드러운 승차감과 단단한 댐퍼 반응을 뚜렷하게 구분한다. 온로드나 오프로드, 주행 모드에 따라 더 넓은 영역에서 대응한다는 의미다. 시승차는 액티브 에어 서스펜션을 추가하고 오프로드에서 차고 높이를 3단계로 조절할 수 있었다. 이 서스펜션은 저속 주행에서 승차감을 확보하면서도 급한 핸들링이나 코너링 진입 시 롤을 현저하게 줄이는 똑똑함을 보여준다. 기본형의 3.0L V6 터보 엔진은 최고 출력 360마력(51kg·m)을 발휘한다. 터보랙이 심하게 느껴지는 구간 없이 저속부터 일정하게 가속 페달에 반응한다. 제원상 가속력은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6초이고, 최고 속도는 시속 248km다. 요즘 프리미엄 SUV 기준으로 아주 인상적인 주행 성능은 아니다. 하지만 2톤이 넘는 SUV가 운전하기 쉽고, 자연스러운 핸들링 감각을 유지한다는 것에 새삼 놀란다. 스포츠 주행에서는 어느 한 부분 넘치거나 모자람 없이 군더더기 없는 주행 성능을 발휘했다. 엔진 출력뿐 아니라 초반 스로틀 반응을 이해하기 쉬웠으며, 네 바퀴 굴림과 액티브 서스펜션, 폭 285mm 광폭 타이어가 만들어내는 안정적인 접지력으로 탈출 가속 때 언제나 안정감이 느껴졌다. 심지어 비가 내리는 날 구불거리는 산길 코너에서 뒷바퀴가 살짝 미끄러지는 순간에도 무섭기보다는, 네 바퀴 굴림 구동력 배분이 빠르고 정교하다고 느꼈다. 다운 시프트 때 작게 “펑! 펑!”거리는 배기 사운드가 운전자의 기분을 살짝 띄워줬다.





    신형 카이엔, 특히 3.0L 기본형을 경험하면서 만족스러웠던 것은 뛰어난 기본기였다. 실내 마감처리부터가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손잡이, 대시보드, 센터콘솔 커버나 작은 액세서리 하나까지도 완벽하게 자리를 잡았다. 누르거나 만져보면 누구나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방음이 잘되는 자동차 안에서 내장재 잡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었다. 거주성도 만족스럽다. 앞, 뒤 공간의 여유도 그렇고, 시트 등받이 각도가 편안함을 만들어냈다. 승차감이 가장 좋은 노멀 모드에서 앞에 비해 뒷좌석 승차감이 약간 단단했지만, 22인치 휠을 장착한 것치고는 승차감이 예상보다 부드러웠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경계를 넘어 잘 조화를 이뤘다는 점도 칭찬할만하다. 공조 장치 제어나 스피커 볼륨처럼 자주 쓰는 기능은 아날로그 버튼으로 표현하면서도, 디스플레이에서 조절하는 다양한 기능을 어렵지 않게 세분화한 점이 특징이다. 최신형 독일 자동차의 인터페이스가 나날이 복잡해지는 것에 비해, 카이엔은 모든 기능을 쉽게 찾아서 사용할 수 있다. 센터패시아 패널에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합친 햅틱 기능으로 직관적인 피드백을 구현해 시선을 크게 뺏기지 않는 점도 마음에 든다. 고속 주행 시 들리는 로드 노이즈나 윈드 노이즈를 잘 억제하고 있으며, 동시에 모든 도어 사이에 넓은 면적의 웨더 스트립을 사용해 외부와 실내를 잘 분리하면서도 문 닫는 감각까지도 고급스럽게 만들었다. 신형 카이엔은 이처럼 자극적인 변화보다는 기본기를 다듬고 그동안의 자동차 제작 노하우를 최대치로 끌어낸 자동차다. 이 차는 첨단 편의장비로 사용자의 시선을 끌려고 하지 않는다. 흠잡을 데 없는 완성도로 누구나 만족시킬 프리미엄 SUV다.









    PORSCHE CAYENNE

    레이아웃 앞 엔진, 4WD, 5인승, SUV
    엔진 V6 3.0L 터보
    최고 출력 360마력/5,400~6,400rpm
    최대 토크 51.0kg·m/1,450~4,500rpm
    변속기 8단 자동
    휠베이스 2,895mm
    길이×너비×높이 4,930×1,983×1,670mm
    복합연비 7.5km/L
    무게 2,195kg
    기본 가격 1억3,310만 원부터










    김태영(모터 저널리스트)
    사진 양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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