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M 1290 SUPER DUKE R
환상적이었다. 하루 종일 달렸음에도 바이크에서 내리면서 조금 더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롤러코스터 탄 듯 오르내리는 알가베 서킷에서 내가 마음먹은 대로 달려주는 슈퍼듀크R을 타고 달리는 경험은 근래에 경험한 최고의 오락이었다.
3세대 슈퍼듀크는 기존의 프레임을 통째로 바꿔 완전한 슈퍼 네이키드로 성격까지 바꾸었다
1290슈퍼듀크R은 KTM의 슈퍼 네이키드다. KTM의 ‘레디 투 레이스’ 슬로건에 입각해 도로용 바이크지만 트랙 라이딩에도 부족함이 없는 구성을 갖추었다. 그래서 1세대부터 3세대까지 기본 모델 없이 오로지 ‘R’모델만 선보이고 있다는 것도 이러한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새로운 1290 슈퍼듀크 R을 이해하기 위해선 시간을 좀 더 뒤로 돌려 듀크의 역사를 들여다봐야 한다. 듀크시리즈는 1990년대로 접어들며 오프로드 경기와 머신의 제작에 집중해오던 KTM이 도로용 바이크로 만든 Duke 620에서 시작한다. 이때의 생김새는 오프로드 바이크에 괴상한 디자인의 헤드라이트를 달아놓은 형태였다. 이후 640과 690을 거치며 점점 발전했고 처음의 괴상함보다는 보편적인 네이키드 분위기로 바뀌어가긴 했지만 듀크의 핵심에는 늘 슈퍼모토의 느낌이 남아있었다. 2005년에 더 강력해진 2기통 엔진을 얹고 처음 등장한 990 슈퍼듀크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그리고 2014년 기존의 990슈퍼듀크를 대체하는 1290 슈퍼듀크 R의 1세대 모델이 등장했다. 당시 ‘비스트’라는 상큼한 별명과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2.6초, 200km/h까지는 7.2초 만에 가속하는 살벌한 성능으로 주목 받았다. 외모에서 슈퍼모토의 느낌은 많이 지워졌지만 바이크를 달려보면 여전히 특유의 슈퍼모토 느낌이 진하게 남아있었다. 특히 1세대 모델은 서스펜션이 슈퍼네이키드 치고는 상당히 부드럽게 세팅되어 더 그렇게 느껴졌다. 2017년에는 다양한 전자 장비 더한 2세대로 업데이트되었고 시간이 흘러 이제 풀체인지 된 3세대 모델이 등장한 것이다. 자! 이렇게 서론이 길어진 이유는 지금까지는 슈퍼모토와 네이키드 사이 어디쯤에 위치하던 슈퍼듀크R이 이번 3세대부터는 완전한 슈퍼 네이키드로 그 성격을 바뀌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프레임을 통째로 바꿔가면서 말이다.
풀체인지
언뜻 구형과 신형의 스펙과 외형은 비슷하다. 이 때문에 부분변경 모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다른 바이크다. 사실 처음에 공개되었을 때 기왕 다 새롭게 만들 거라면 새로운 디자인을 얹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실물을 직접 만지고 타보니 새로움은 충분했다.
가장 기본이 되는 프레임부터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뀌었다. 프런트 포크를 잡아주는 스티어링 축부터 시트 끝까지 촘촘히 이어지던 트렐리스 프레임은 사라지고 몇 가닥 안 되는 최소한의 파이프가 엔진을 잡아주는 형태로 바뀌었다. 기존모델과 달리 엔진이 차체강성의 일부가 되는 형태로 바뀌면서 프레임의 구조가 단순해진 것이다. 덕분에 전체적인 비틀림 강성은 기존 모델 대비 3배나 강해졌다. 30%도 아니고 3배라니, 곧이곧대로 믿기 힘든 수치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전혀 다른 주행성능을 보여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본은 2세대의 디자인을 따르고 있지만 바이크 전체를 두르는 면들을 다듬고 살짝살짝 틀어주면서 훨씬 날렵하고 근육질로 보인다. 처음 2세대 슈퍼듀크R를 보았을 때 공격적인 디자인에 감탄했는데 지금 2세대를 다시 보면 순둥이처럼 보일 정도다. 새로운 프레임에는 엔진이 조금 더 높은 위치로 결합된다. 이전에는 연료탱크 아래로 엔진이 헤드까지 다 보였지만 이제는 연료탱크에 아예 파묻힌 것처럼 헤드는 물론 실린더 쪽도 잘 보이지도 않는다. 덕분에 바이크의 무게중심이 높아지고 중앙에 더욱 집중된다. 그러고 보니 요즘 스포츠바이크는 다시 무게중심을 높이는 게 추세인가 보다.
시트에 앉아서 바라보는 모습의 변화는 가장 극적이다. 더 깨끗한 화질의 TFT화면과 새로운 그래픽의 계기반, 그리고 게임 컨트롤러 같은 버튼들이 더해진 스위치박스까지 실제 오너가 바라보는 시점에서는 완전히 다른 바이크가 되었다. 기존 모델이 니그립 할 때 허벅지 안쪽에 닿는 부위가 시트의 연장선이라 폭신하게 감겼는데 새로운 슈퍼듀크는 딱딱한 연료탱크가 허벅지 안쪽에 감긴다. 탑브릿지의 높이와 핸들 바 높이도 함께 낮아지고 시트의 쿠션도 딱딱하다. 이건 좋고 나빠진 점이라기 보단 성격이 달라진 점이다. 전체적인 세팅에서 묘하게 레이스 머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엔진도 많은 부분이 개량되었다. 스펙의 수치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보니 기존엔진을 그대로 쓰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엔진의 업데이트도 상당하다. 중량을 800g 줄이고 에어 인테이크 위에서 뿌려주는 탑 피더 인젝터와 56mm 대구경 스로틀바디로 고회전에서 토크를 향상시켰다. 인테이크 밸브는 티타늄 소재에 고속영역에서의 출력향상을 위한 램에어 시스템도 도입되었다.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유로5에 대한 준비도 마쳤다. 그리고 업데이트된 변속기의 정교함이 돋보인다. 변속기 안에서 돌아가는 기어들 하나하나가 더 촘촘하고 짜임새있게 돌아가는 느낌으로 엔진의 출력이 더욱 직접적으로 리어로 전달되는 느낌이다. 변속 시 착착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 좋다.
진정한 슈퍼 네이키드
3배의 프레임 강성의 변화는 누구나 느낄 수 있을 만큼 확실한 차이를 만든다. 슈퍼모토에서 슈퍼 네이키드로 성격이 바뀌었다 말하는 것도 바로 이 프레임 강성 때문이다. 엄청난 토크의 엔진을 유연한 프레임에 얹어 슈퍼모토의 최종진화 같은 느낌을 주던 지난 세대의 슈퍼듀크R과 달리 3세대 슈퍼듀크R은 완전히 슈퍼바이크처럼 움직인다. 코너링 스피드의 한계가 높고 불필요한 거동이 없다. 그냥 슈퍼바이크에 핸들바만 높여달아 휘두르기 좋아진 느낌이다. 기존 모델은 공용 엔진을 사용하다보니 피봇 위치 때문에 스로틀을 열면 리어가 약간 주저 않는 성향이 있었다. 하지만 엔진의 스윙암 피봇높이를 올리는 재설계를 통해 안티 스쿼트 효과를 높여주었다. 덕분에 가속을 위해 스로틀을 열 때 리어타이어의 탈출그립이 훨씬 선명해졌다. 스로틀을 열면 두툼한 토크를 터지면서 순식간에 다음코너로 날아가는 기분이다. 확실히 네이키드 바이크답게 저회전 토크위주의 세팅이라 직선주로에서 가속할 때는 기어비가 짧은 탓에 6단까지 다 쓰면서 달려야 했다. 개인적으로 알가베 서킷 직선로에서 기록한 최고속도는260km/h였다.
랩타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돌고 가속하고 제동하는 과정의 반복이지만 즐겁다
재밌다. 무엇보다 스로틀을 가지고 엔진을 완벽히 조련하는 느낌을 준다. 클래스 최강인 140Nm의 강력한 토크에도 바이크가 두려움보다 짜릿함을 주는 가장 큰 이유다. 엔진과 머릿속이 바로 연결된 것 같은 직결감으로 조작할 수 있다. 랩타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돌고 가속하고 제동하는 과정의 반복이지만 즐겁다. 엄청난 토크가 쏟아지는데도 무섭지 않다는 점이 신기하고 놀랍다. 사람마다 취향에 따라서 이전 모델이 더 마음에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신형의 안정감과 날카로운 선회력을 경험하고 난 뒤라서 이전 모델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단순히 안정적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엔진의 반응이나 브레이크 서스펜션도 발전하면서 주행의 재미요소는 더욱 극대화되었다.
트랙모드
더욱 다이내믹한 주행을 위한 슈퍼듀크의 트랙모드는 더 숙성되었다. 일반적인 주행모드 중 하나가 아니라 언제든 트랙모드에 진입하면 더 빠르게 반응하는 엔진 출력맵과 트랙션컨트롤과 ABS모드 등 자신이 맞춰둔 세팅이 바로 적용된다. 특히 트랙션 컨트롤 개입 정도를 실시간으로 변경할 수 있는데 왼쪽 그립에 새롭게 더해진 +-버튼으로 조작할 수 있다. (이 버튼은 트랙모드가 아닐 때는 크루즈 컨트롤 속도 조절에 사용한다) 그리고 트랙모드에서는 안티윌리컨트롤을 끌 수 있다. 트랙션 컨트롤이 코너에서만 개입하고 윌리는 허용하는 모드다. 여기에 후륜에는 개입을 하지 않는 슈퍼모토 ABS까지 켜면 전자장비의 개입은 최소화 된다. 주행할 때는 마치 아무런 개입도 없는 것처럼 탈 수 있지만 실은 최소한의 전자장비가 언제든 실수를 커버하기 위해 뒤에서 대기하고 있다. 주행의 재미와 안전을 동시에 챙길 수 있어서 상당히 선호하는 기능이다.
Autódromo Internacional do Algarve
포르투갈 남부 포르티마오에 위치한 알가베 서킷은 고저차가 심하고 블라인드 코너가 많고 다양한 스타일의 가속과 감속 그리고 코너링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4.648km의 제법 큰 규모의 서킷이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오르내리는 고저차가 주행의 즐거움을 더하는데 9번 코너를 지나 언덕을 넘어 내려갈 때는 무중력을 느끼게 한다. 또한 마지막 15번 코너는 내리막 고속코너로 맹렬한 기세로 내려갔다가 스트레이트에서 다시 오르막이 나오는 독특한 구조다. F1테스트가 진행되고 WSBK가 열리는 곳이다.
브리지스톤S22 SDR
이번 슈퍼듀크R에는 브리지스톤과 협력으로 제작된 S22 SDR이 기본 타이어로 채택되었다. 프런트 타이어는 종전의 S22와 동일하지만 리어타이어를 슈퍼듀크의 강력한 토크에 대비해 숄더를 강화한 전용 모델이다. 리어타이어 모델명 뒤에 SDR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정감 있는 핸들링과 한계가 점진적으로 다가오는 알기 쉬운 그립특성으로 궁합이 아주 좋았다. 특히 사이드 컴파운드는 트랙주행에도 부족함 없는 그립을 보여주면서도 쉼 없이 이어지는 트랙세션에도 하루 종일 한 쌍의 타이어로 주행이 가능할 만큼 내구성이 좋았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윌리머신?
지금까지 모터바이크 저널리스트로써 여러 브랜드의 시승이벤트를 참석하며 다양한 모델을 테스트했지만 뉴모델 테스트에서 별도로 윌리 세션을 마련해주는 브랜드는 KTM뿐이다. 슈퍼듀크R은 트랙모드에서 안티 윌리 컨트롤을 해제할 수 있다. 이 상태에서도 코너에서 트랙션 컨트롤은 작동하지만 프런트가 공중에 뜨는 윌리 상태는 허용하는 것이다. 이 상태의 1290슈퍼듀크는 기어단수와 상관없이 빠르게 가속하면 당연하다는 듯 프런트휠이 올라온다. 내가 의도하거나 자연스럽게 되는 윌리와 의도치 않은 타이어의 미끄러짐은 기가 막히게 구분해서 개입을 한다. 여러 대의 카메라가 백스트레이트의 가속이 시작되는 구간을 겨냥하고 있다. “기대를 저버릴 수 없지!” 애써 클러치를 튕길 필요도 없다. 손목을 크게 비틀어 풀스로틀을 하는 것만으로 프런트 휠이 공중을 가른다. 마치 이륙하는 비행기처럼, 트랙을 활주로로 만들어버린다. KTM오피셜 페이지에는 슈퍼듀크 3대가 편대 비행하듯 윌리 상태로 달려가는 모습을 업로드했다.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다.(웃음)
등을 허락한 맹수
트랙세션은 20분 주행 후 10분 휴식 그리고 다시 20분 주행, 마치 내구레이스라도 하듯 쉬지 않고 달렸다. KTM의 엠버서더인 제레미 매퀼리엄스와 파익스피크 3회 우승에 빛나는 크리스 필모어가 함께 했다. 그들은 함께 달리고 때로는 앞서 리드하며 페이스를 이끌어줬다. 랩이 쌓이고 몸에 익을수록 슈퍼듀크가 정말 다루기 편하고 강력한 바이크임을 깨닫는다. KTM은 이번 1290슈퍼듀크R에는 비스트3.0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1세대 슈퍼듀크를 타고 비스트라는 별명과 무지막지한 성능에 비해 다루기 쉬운 바이크 특성에 반전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 강력해지지만 더 말을 잘 듣는다. 날뛰는 야생의 맹수가 아니라 주인의 마음을 잘 아는 잘 길들여진 맹수. 마이크 타이슨처럼 호랑이를 애완동물로 키워보고 싶었던 적이 있다면 사람이라면 1290 슈퍼듀크R을 적극 추천한다. 지난 몇 해 동안 최강의 네이키드 자리에 있던 슈퍼듀크지만 최근 강력한 경쟁자들의 등장으로 그 위치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위치는 그리 쉽게 흔들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다시 한번 1290 슈퍼듀크R만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KTM 1290 SUPER DUKE R
엔진 형식 수랭 4스트로크 V형 2기통 DOHC 4밸 보어×스트로크 108 × 71(mm) 배기량 1301cc 압축비 13.5 : 1 최고출력 180hp 최대토크 140Nm 시동방식 셀프 스타터 연료공급방식 전자제어 연료분사식(FI) 연료탱크용량 16ℓ 변속기 6단 리턴 서스펜션 (F)텔레스코픽 도립 (R)싱글쇽 싱글스윙암 타이어 사이즈 (F)120/70 ZR17 (R)190/55 ZR17 브레이크 (F)320mm더블디스크 (R)240mm싱글디스크 전장×전폭×전고 미발표 휠베이스 1497mm 시트높이 835mm 건조중량 189kg 판매가격 2,960만 원
글 양현용
사진 Romero S., Campelli M.
취재협조 KTM 코리아 www.kt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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