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상을 위한 RS, 두카티 멀티스트라다 V4 RS

    멀티스트라다 V4에 RS 배지가 붙었다. 누군가는 투어러에게 안락함을 찾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이상을 원하기 마련이다. 멀티스트라다 V4 RS는 더 짙어진 레이싱 DNA로 레이스 트랙과 투어링 사이의 경계를 허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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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S(RACING SPORT)

    두카티와 같은 폭스바겐 그룹의 아우디는 기존 모델에 레이싱 스포트라는 뜻의 RS를 붙여, 사실상 완전히 다른 고성능 모델을 만들어낸다. Born on the track, built for the road(레이싱 트랙에서 태어나, 일반 도로를 달리기 위해 만들었다)라는 슬로건을 토대로 극대화된 주행 성능과 뛰어난 실용성을 동시에 갖춘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바로 그 ‘RS’ 배지를 두카티의 대표적인 투어링 바이크, 멀티스트라다 V4에 붙였다.

    V4 Desmosedici stradale

    멀티스트라다 V4 RS(이하 RS)는 지금껏 멀티스트라다 V4 시리즈에 탑재되던 V4 그란투리스모 엔진과 달리, 데스모세디치 스트라달레 엔진이 탑재됐다. 배기량은 1,103cc로 일반 모델 대비 55cc 작지만, 데스모드로믹 밸브가 적용된 ‘진짜’ 파니갈레 엔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최고출력은 10마력 높은 180마력을 발휘하며 그 시점은 기존보다 2,000rpm 가량 높은 12,250rpm에서 분출된다. 즉, 초중반의 토크는 비교적 낮고, 고회전에서는 더욱 짜릿한 출력을 내는 슈퍼바이크의 특성이 강조된 것이다. 압축비는 14:1로 일반 모델보다 4mm 더 큰 50mm 전자식 스로틀 바디를 탑재했다.

    파익스 피크와 RS

    사실 두카티는 멀티스트라다 라인업에 전후 17인치 휠을 탑재한 파익스 피크 모델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RS의 등장이 다소 의아했다. 두카티는 파익스 피크라는 힐 클라임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것을 기념하며 새로운 세대의 멀티스트라다를 공개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라인업에 추가된 모델이다. 고성능 파츠를 무장하고 전후 17인치 단조 휠과 숏 스크린 등으로 스포츠 주행에 초점을 맞췄다. 따라서, RS의 등장 당시에는 이름만 다른 모델이 아니냐는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두카티는 새로운 고회전 엔진, STM EVO-SBK 드라이 클러치, 더 많은 경량 파츠 등으로 ‘RS’의 가치를 증명해 버렸다. 두 모델을 두고스포츠 성능이라는 잣대로 비교한다면 한 치의 의심 없이 RS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RACING DNA

    RS의 시동을 걸면 지금껏 멀티스트라다에서 들어보지 못했던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이는 다름 아닌 STM사의 EVO-SBK 드라이 클러치 소리다. 클러치 레버를 당기면 다판 클러치가 서로 떨어지면서 ‘찰찰찰찰’ 소리를 내는데 이는 V4 엔진의 배기음을 압도할 정도로 존재감이 크다. 드라이 클러치는 구조상 클러치 케이스 안으로 오일이 순환되지 않기 때문에 유체에 의한 슬립과 저항이 없고, 그만큼 습식 클러치 대비 더 높은 최고출력을 전달한다. 드라이 클러치는 0.1초를 다투는 최정상급 레이스인 모토 GP나 WSBK에서는 당연히 사용되는 튜닝 파츠이며, 비교적 높은 가격과 짧은 수명 때문에 양산형 바이크에서는 보기 힘든 파츠이기도 하다. 이를 아는 라이더에겐 특유의 ‘찰찰찰찰’ 소리가 심장을 간질인다. RS는 일반 모델 대비 2.5kg 가벼운 티타늄 서브 프레임이 적용됐다. 혹시나 라이더가 눈치채지 못할까봐 측면에 티타늄이라고 친절하게 각인을 박아뒀다. 은색 프레임에 RS로고가 새겨진 화이트 카울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굳이 겉으로 표현하거나 과장하지 않아도 강한 아우라가 느껴진달까?

    여기에 일반 모델 대비 2.7kg 가벼운 전후 마르케지니 단조 휠이 장착되었고 메인스탠드, 열선 그립, 열선 시트 등 본격적인 주행에 불필요한 편의장치는 과감하게 덜어내어 경량화했다. 싱글 사이드 스윙암으로 레이스 머신의 분위기를 내고 리어 시트 뒤에 붙은 리어 랙도 기존과 다른 디자인과 소재를 적용해 스포티한 분위기를 완성했다. 카본 윈드 스크린, 카본 비크, 카본 프런트 펜더, 카본 핸드 가드 등을 더해 경량화에 진심이었던 파익스 피크보다도 3kg 가볍고, 일반 모델보다 7kg 가볍다.

    트랙 워밍업

    먼저 레이스 트랙에서 주행을 시작했다. 나름(?) 투어링 바이크인데 레이스 트랙에서 테스트한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이상하다. 상체를 꼿꼿하게 세우고 넓게 벌어진 핸들 바에 손을 올릴 때 까지만 해도 ‘이 모델을 레이스 트랙에서 테스트하는 게 맞나’라는 의구심이 스친다. 고민이 더 커지기 전에 슈트를 입고 트랙으로 들어섰다.

    330mm더블디스크에 레드 컬러 스티레마 캘리퍼가 더해졌다

    엔진은 대략 8,000rpm까지 한없이 부드럽게 회전하며 차량중량 225kg의 거구를 가볍게 이끈다. 실질적인 토크는 동일한 rpm을 기준으로 일반 모델보다 낮지만, 비교적 가벼운 차량중량과 경량화된 구동계가 더해져 훨씬 경쾌하게 느껴진다. 전방에 17인치 단조 휠이 적용된 만큼 핸들 조작에 의한 반응성이 상당히 좋다. 여느 어드벤처 바이크처럼 무게 중심이 높기 때문에 좌우로 빠르게 기울일 수 있고, 여느 어드벤처 바이크와 달리 과격한 움직임에도 불안정해지지 않는다. 이 마법 같은 일이 가능한 건 올린즈 스마트 EC 2.0 전자식 서스펜션 덕분이다. 밀리세컨드 단위로 바이크의 현재 상태와 노면 컨디션을 파악하여 최적의 댐핑을 제공한다는데 그 감각이 한없이 끈적하다. 타이어는 노면을 끈끈하게 붙잡고 엔진의 출력을 고스란히 아스팔트로 전달한다. 아니 전달한다기보다 직결된 느낌에 가깝다.

    유연함을 곁들인 강력함

    솔직히 트랙을 처음 달릴 때만 하더라도 머릿속에 5,600만 원이라는 부담스러운 가격표가 떠다녔는데 그새 사라졌다. RS가 주는 뛰어난 완성도와 안정감이 라이더를 더 높은 한계로 유혹한다. RS에는 오프로드 모드가 삭제되고 레이스, 스포츠, 투어링, 어반 총 네 가지 모드가 있고, 모드마다 입맛대로 커스텀이 가능하다. 레이스 모드에 진입해 풀 파워, DTC 오프, ABS 1, DWC 오프, 서스펜션은 프런트와 리어 모두 가장 강하게, EBC는 1로 설정했다. 더 이상 RS는 라이더를 배려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여줄 준비를 마쳤단 뜻이다.

    출발과 함께 회전수를 높이면 프런트 휠이 가볍게 떠오른다. 1단 기어에서는 당연한 일이겠거니 하며 여유롭게 2단 기어를 넣었는데 다시 프런트 휠이 번쩍 들린다. ‘이게 무슨 일이지’ 싶어 3단 기어를 넣었더니 어김없이 프런트 휠이 들썩인다. 새로운 데스모세디치 스트라달레 엔진은 라이더가 윌리를 하겠다는 액션을 더하지 않아도 차량 중량 225kg, 휠베이스 1,592mm의 거구를 가볍게 들어올린다. 그리고 3단 기어에서 이미 180km/h를 넘긴다. 압도적인 가속력 때문에 나도 모르게 상체를 숙이게 되고 카본 윈드 스크린에 작게 뚫린 구멍으로 전방을 바라보게 된다. 사실 이 구멍은 와류를 억제하기 위한 장치인데 상체를 숙여보니 그 구멍만이 전방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어깨로 넘어오는 바람을 막는 스크린은 스모크 실드로 처리했음에 감사해야 할까? 미친 가속감에 미소가 지어진다.

    전방 330mm 더블디스크와 브렘보 스티레마 모노블록 캘리퍼가 제동력을 책임진다. 브렘보 래디얼 마운트 마스터 실린더는 검지 하나로 리어 휠의 상승 각도를 제어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때로는 프런트 타이어가 한계에 닿아 미끄러지기도 하는데 그 모든 상황이 슬로 모션처럼 또렷하게 느껴지고 두려움 없이 제어할 수 있다. 부드럽고 유연한 움직임 덕분에 코너를 진입하고 탈출하는 과정에서도 스스로의 한계를 조금씩 깨부수며 페이스를 높일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두려움보단 즐거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빠르게 달리기 위해 설계된 슈퍼바이크는 타이트하게 조여진 느낌을 준다. 어딘가 부드럽고 유연하다는 건 대체로 느슨한 감각일 확률이 높고, 이는 레이스 트랙에서 손해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적절한 유연함은 최상위 레이서를 제외한 대부분의 라이더가 자신의 기량을 펼치기 좋다.

    안전한 투어러

    서울 시내에서 도심 테스트도 진행했다. 정확히는 멀티스트라다 고유의 영역을 얼마나 잘 갖췄는가를 확인했다. RS는 전후 레이더 센서를 탑재해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블라인드 스팟 디텍션을 제공한다. 북악 스카이웨이의 타이트한 코너 속에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켜면 선두 차량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급격하게 말린 코너 탓에 전방 차량이 순간적으로 자취를 감추기도 하는데 RS는 당황한 기색 없이 부드럽게 가속해 선두 차량을 다시 잡는다. 스스로 기대감을 낮췄던 탓일까? 개인적으로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난코스에서까지 완성도 높은 성능을 자랑했다. 만약 도심을 벗어난 외곽으로 투어를 떠난다면 상당히 용이한 기능일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RS는 후방 레이더 센서를 통해 후방에서 달려오는 다른 차선의 차량을 인식하고 사이드 미러에 노란 램프를 점등시킨다. 이때 라이더가 해당 방향으로 방향지시등을 켜면 노란 램프를 깜빡이며 위험을 경고한다. 사실 두 가지 기능 모두 조금 느긋한 페이스로 달릴 때 유용한 기능이다. RS는 분명히 레이스 트랙에 초점을 강하게 두고 완성되었지만, 멀티스트라다가 가진 특유의 안전성은 철저하게 놓치지 않았다는 의미다.

    중독

    RS와 함께 강렬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침대 위에 누웠다. 우리는 가끔 인상적인 일을 겪고 나면 잠들기 전에 그 생각에 잠기곤 한다. 13,000rpm까지 빠르게 회전할 때 들리는 배기음과 가속감. 변속할 때마다 들리는 드라이 클러치 사운드가 메아리처럼 몸속에서 울려 퍼진다. 몰려오는 피로감에 빠르게 잊고 잠들려던 하던 찰나, 옆에 있던 와이프가 말했다. “왜 실실 웃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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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CATI MULTISTRADA V4 RS

    이 모델을 선택할 이유아쉬운 점이 있다면
    외모부터 느껴지는 RS의 특별함
    압도적인 코너링 성능
    건식클러치의 짧은 내구성

    엔진형식 수랭 V-트윈 4기통 데스모세디치 스트라달레
    보어×스트로크 81 × 53.5(mm)
    배기량 1,103cc
    압축비 14:1
    최고출력 180hp / 12,250rpm
    최대토크 118Nm / 9,500rpm
    시동방식 셀프 스타터
    연료공급방식 전자제어 연료분사식(FI)
    연료탱크용량 22ℓ
    변속기 6단 리턴
    서스펜션 (F)전자식 48mm텔레스코픽 도립 (R)전자식 싱글쇽 스윙암
    타이어사이즈 (F)120/70 ZR17 (R)190/55 ZR17
    브레이크 (F)330mm더블디스크 (R)265mm싱글디스크
    전장×전폭×전고 미발표
    휠베이스 1,592mm
    시트높이 840-860mm
    차량중량 225kg(연료제외)
    판매가격 5,600만 원


    윤연수
    사진 양현용
    취재협조 두카티코리아 ducati-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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