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iumph
Bonneville T120
라이더에게 도화지와 펜을 주고 클래식 바이크를 그려보라고 하면 그 결과물은 분명 본네빌과 닮아있을 것이다. 클래식 바이크의 과거이자 현재를 잇고 워너비이자 레퍼런스가 되고 있는 트라이엄프 본네빌 시리즈, 그중에서도 최상위 모델인 본네빌 T120을 만났다
원래 본네빌의 기함 역할은 T100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랭엔진으로 업데이트되며 배기량을 1200cc로 올리고 T120이라는 이름을 붙었다. 이 T120이라는 이름은 트라이엄프 역사에서 처음은 아니다. 이미 1959년 650cc 트윈 엔진의 T120이 먼저 그 이름을 사용했다. 만약 두 모델을 함께 비교해 보면 60년의 역사를 뛰어넘어 쌍둥이처럼 쏙 닮아있다는 것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만큼 디자인은 누구나 떠올리는 전통적인 모터사이클의 디자인이다. 금속성의 엔진과 풍만한 연료탱크, 아름다운 디자인의 원형 헤드라이트와 계기반, 사이드미러까지 옛 모습 그대로다. 특히 엔진과 프레임 사이로 건너편이 보이는 여백의 미가 아름답다. 요즘 흔히들 네오클래식이라는 이름 아래 현대적인 재해석을 하는 것이 유행이지만 이렇게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는 것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원래 오리지널리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원하는 입맛대로 바꾸는 재해석보다 어려운 법이다.
이렇게 보편적인 디자인일수록 디테일의 완성도와 마감이 퀄리티를 좌우한다. T120은 호화 파츠를 두르고 있지는 않지만 각각의 파츠들의 완성도와 디자인의 밀도가 높다. 특히 차체 다양한 컬러의 금속과 크롬, 페인팅, 혹은 브러시 가공 등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다양한 질감을 조화롭게 처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같은 T120이라고 해도 컬러에 따라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다. 블랙 모델은 모던하고 시크한 매력을 풍기는 반면 투톤의 컬러 모델은 크롬과 컬러, 그리고 베이스를 받쳐주는 화이트 컬러까지 우아한 클래식 스타일이 더욱 강조된다. 이러한 외형과는 반대로 속은 현대적인 요소들로 채우고 있다.

엔진은 전통적인 트라이엄프의 공랭 트윈 엔진의 형태 그대로지만 엔진 헤드에 냉각수 파이프라인을 넣고 프레임에 밀착한 미니멀한 라디에이터로 수랭화를 이루었다. 완전히 전자식으로 제어되는 연료분사로 주행모드는 물론 트랙션 컨트롤도 적용된 요즘 바이크다. 열선 그립도 순정으로 장착되어 있는 것은 기대하지 못한 보너스 같은 느낌이다. 보이지 않는 곳, 그러니까 각종 커버 아래에 전자장비나 요즘 바이크들의 필수 요소들을 꽁꽁 숨겨두었다. 특히 카브레터 엔진의 모양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더미로 카브레터 형태를 장식으로 붙여놓은 것도 재밌는 특징이다.

엔진의 필링은 270도 위상차 크랭크로 고동감 넘치면서도 풍만한 사운드를 연출한다. 트라이엄프의 전통적인 사운드와는 다른 요즘에 인기 있는 사운드다. 사운드가 더 박력 있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기분 탓은 아니고 저음이 보강된 덕분이다.

현대적이지만 고전적인 주행성능
사실 요즘 바이크치고는 은근히 무겁다. 스트리트 트윈, 본네빌 T100, 본네빌 T120 순으로 타보았는데 점점 묵직한 느낌이 든다. 고전적인 구조를 그대로 사용하는데다 수랭 시스템과 더 가혹해진 환경 규제를 맞추기 위한 촉매 및 배기 시스템을 더했으니 무게의 증가는 당연하다. 그래도 엔진의 힘이 충분해서 달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조금만 더 가볍고 경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엔진의 매끄러운 회전 감각이나 굵직한 토크는 그래도 요즘 바이크를 타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주행모드는 일반적인 ‘로드’ 모드와 미끄러운 노면의 ‘레인’ 모드로 나뉜다. 초심자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지만 레인 모드는 잘 쓰지 않을 것 같은데 좀 더 다이내믹한 모드가 하나쯤 더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T120에 클래식한 스타일에 비해 고출력, 고성능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스펙 상으로도 T100에 비해 더 낮은 구간부터 더 강력한 토크가 나오고 최고출력도 80마력으로 1.5배는 강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6000rpm 이상 돌려가며 타면 꽤 빠르다. 클래식한 디자인과 별개로 성능에 대한 자신감을 충분히 가져도 될 정도로 강력한 성능이다. 하지만 의외로 성능을 쥐어짤 때 즐거워지는 타입은 아니었다. 고회전보다 저회전의 필링이 더 좋고 T100에 비해 엔진의 토크가 높아지긴 했지만 회전 상승이 빠르지 않아 체감이 덜 된다. 엔진의 회전 질량이 커지면서 스로틀 반응의 경쾌함은 오히려 떨어졌다. 처음에 라이딩 테스트를 시작하고 이러한 점들에서 큰 아쉬움을 느꼈었다.

하지만 T120의 진짜 매력은 탠덤 라이딩에서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이 타고 오르막 와인딩 로드를 부드럽게 달릴 때 풍부한 토크가 주는 여유는 확실한 차별점이다. 프런트의 더블 디스크도 2인 승차에서 특히 큰 차이를 만든다. 제동력의 여유가 느껴진다. 저속 탑 기어에서 툴툴대고 달릴 때도 풍부한 토크의 매력이 진해진다. 그래서일까? 최근에 탄 바이크 중 가장 얌전하게 타게 되는 바이크였다.

와인딩에서도 즐거웠다. 바이크가 기본적으로 다루기 편하고 토크가 고루 분배되어 있어 쉽고 빠르게 달릴 수 있다. 그냥 여유롭게 린위드로 슬렁슬렁 달리기도 좋고 조금은 공격적인 자세로 코너를 스텝을 긁어가며 공략해도 좋다. 엔진 회전수를 그리 높이지 않고 돌아도 불안함이 없기 때문에 우아하게 돌고 가속할 수 있으며 이렇게 달려도 결코 느리지 않다. 연속 코너에서는 무게와 설정 때문인지 살짝 굼뜬 움직임이 나오는 편이라 좀 더 적극적으로 바이크를 밀고 당기며 타게 된다. 너무 현대적인 바이크의 움직임도 아니고 지나치게 고전적이고 굼뜬 움직임도 아닌 그 중간지점에서 조율이 잘 되어있다. 서스펜션도 이러한 세팅에 발맞추고 있다. 브레이크도 마찬가지, 제동력의 부족함도 과격함도 없이 적절히 잘 세워준다. 전반적으로 간을 잘 맞춘 음식을 먹는 느낌이랄까? 다양한 속도 영역과 다양한 상황에서 거슬리는 느낌을 주는 일이 거의 없었다.

T100 VS T120
T120의 가장 큰 경쟁자는 T100이다. 외형은 거의 비슷하다. 엔진에 더미 카브레터의 존재와 프런트 브레이크가 싱글이냐 더블이냐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헤드라이트에도 LED 주간주행등이 더해지며 외형이 좀 더 고급스럽게 보인다. 무게는 T120이 10kg 남짓 더 무겁다. 엔진 자체의 사이즈는 동일하기 때문에 배기량 때문이라기보다는 브레이크 캘리퍼와 디스크가 한 쌍 더 더해지고 탠덤 그랩바와 메인스탠드가 기본 장착되는 등 묵직한 금속 파츠들이 추가된 탓일 것이다. 오히려 배기량이 낮은 T100이 더 경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급가속과 고속주행에서는 배기량의 차이를 확실히 보여준다. T120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약 4초 만에 가속한다. 같은 조건에서 6초 언저리가 걸리는 T100과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 6단 미션의 촘촘함도 성능에 유리하다. 최고출력이 25마력 토크가 25Nm 차이가 난다.

본네빌이 빠르게 달리는 모델이 아니니까 별 차이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모델로 여유롭게 다니는 것과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달리는 것은 달리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같을 수 없다. T120만의 장점이 바로 이 부분에 있다.
반면 T100은 전체적인 밸런스가 바이크의 생김새와 딱 맞아 들어가는 점이 좋다. 과함도 없고 부족함도 없는 느낌이다. T100 만으로도 대부분의 라이더가 클래식에게 요구하는 성능에 충분히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 두 모델의 존재와 한 지붕 아래서 경쟁하고 있다는 것에서 트라이엄프가 얼마나 세분화된 라이더의 취향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역사는 계속되어야 한다
본네빌은 10년, 아니 20년 후에도, 아니 100년 뒤 엔진이 아닌 모터를 달고 달리는 날이 오더라도 지금 과 같은 모습일까? 걱정도 되지만 본네빌 T120이 60년 전에도, 지금도 통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 걸 보면 그나마 안심이 된다. 트라이엄프는 변해야 할 것과 변치 말아야 할 것을 잘 알고 있는 브랜드다. 아마도 우리는 수십 년 후에도 변함없이 본네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과 같지만 더 멋진 모습으로.
Triumph Bonneville T120
엔진형식 수랭 4스트로크 2기통 SOHV 8밸브 보어×스트로크 97.6 × 80 (mm) 배기량 1,200cc 압축비 10.0:1 최고출력 79PS / 6,550rpm 최대토크 105Nm / 3,100rpm 시동방식 셀프스타터 연료공급방식 전자제어 연료분사식 연료탱크용량 14.5L 변속기 5단 리턴 서스펜션 (F)KYB 41mm (R) KYB 트윈 쇽 타이어 사이즈 (F)100/90-18 (R)150/70 R17 브레이크 (F)니신 310mm 더블 디스크 (R)니신 255mm 싱글 디스크 전장 미공개 휠베이스 1,450mm 시트높이 790mm 공차중량 224kg 판매 가격 1,850만 원
글 양현용
사진 양현용/ 조건희
취재협조 트라이엄프코리아 02-479-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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