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E ADVENTURE.
DUCATI MULTISTRADA 1200 ENDURO
레이스를 기반으로 빠르고 섹시한 이탈리안 모터바이크를 만들어 오던 두카티. 그 전통의 매끈하고 섹시함 대신 거칠고 터프한 옷으로 갈아입고 진짜 어드벤처를 시작한다. 트랙 위에서 도로로 이제 오프로드 위로 무대를 확장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의 두카티를 만날 시간이다
두카티 멀티스트라다 1200은 시티 커뮤터, 투어러, 스포츠, 오프로드의 4가지 콘셉트를 한 대에 담는다는 4 in 1콘셉트를 기본으로 파격적인 성능과 독특한 디자인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두카티 투어링 스타일을 새롭게 정의했다.
기존의 듀얼퍼퍼스와는 차별화되는 디자인과 슈퍼바이크로부터 물려받은 엔진의 강력한 성능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도심에서도, 투어에서도 심지어 레이싱 슈트를 입고 트랙 주행에서도 즐거운 듀얼퍼퍼스였다. 다만 그중 오프로드 콘셉트 영역에는 약간의 의문을 남겼다.
피렐리와 협업을 통해 만든 전용 듀얼 타이어인 스콜피온 트레일을 장착했지만 17인치 프론트 휠의 오프로드 주파 능력은 한계가 명확했다. 오프로드를 달리기에는 반짝이고 예쁜 외모도 마음에 걸림돌이었다. 마치 빨간 스포츠카를 끌고 험한 오프로드를 들어가는 것만큼 정신 나간 짓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2015년 이탈리아 EICMA 쇼에서 19인치 프론트휠을 장착한 멀티스트라다 엔듀로를 공개했다. 진정한 의미의 4 in 1 멀티퍼퍼스가 된 것이다.
이 모든 변화들의 포커스는 오로지 ‘오프로드를 달리기’ 라는 목표 하나에 집중하고 있다
엔듀로의 정체성 찾기
변화가 19인치 휠을 장착하는 것에서만 그친 것은 아니다. 이름 뒤에 자신 있게 ‘엔듀로’를 붙일 수 있을 만큼 오프로드 주행을 위해 최적화했다. 기본적인 엔진과 프레임, 등화류와 계기반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면에서 변화가 이뤄졌다.
멀티스트라다의 상징적인 비크는 더 크고 넓어지고 알루미늄 사이드커버를 장착하며 한눈에도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스윙암은 35mm 더 길어지고 강성이 강화된 더블사이드 스윙암을 채택했으며 프론트 휠 옵셋도 앞으로 15m m 빼며 휠베이스도 1594mm가 되었다. 도하능력을 위해 배기구 위치를 높여 새롭게 설계한 배기 시스템을 달았고 세미액티브 방식의 서스펜션은 스트로크를 30mm를 더한 200mm로 늘렸다. 스텝은 알루미늄에서 철재로 변경되고 넓어졌으며 기어 레버 역시 철재로 전도 시 접히는 타입으로 변경되었다.
시트는 형상부터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엔진 둘레는 투박하지만 든든한 느낌의 스키드플레이트가 감싸고 있다. 이 모든 변화들의 포커스는 오로지 ‘오프로드를 달리기’ 라는 목표 하나에 집중하고 있다.
이 진화의 과정에서 빅 엔듀로 장르에서는 후발주자인 만큼 경쟁자를 철저히 분석했다. 30리터 연료탱크, 튜브리스 타입의 크로스 스포크 휠, 전후 타이어 사이즈, 높이 조절식 리어브레이크 레버 등에서 BMW R 1200 GS 어드벤처를 꼼꼼하게 벤치마킹하고 있음이 쉽게 드러난다. 전반적인 디자인에서 기존의 두카티들이 가진 부드러운 선과 섬세한 라인보다는 선 굵고 터프한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탈리안 혈통답게 꼼꼼한 디테일을 더해 높은 완성도로 마무리했다.
시트에 앉은 자세에서는 국내 순정 사양의 로우시트 (850mm시트고)와 5cm 높아진 핸들바의 조합이 조금은 어색하고 스탠딩 자세가 오히려 편하다. 지난해 출시한 멀티스트라다 테스트 때도 로우시트가 불만이었고 이번에도 처음에는 로우시트가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오프로드를 달리고 난 후에는 로우시트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3400만원짜리 바이크를 쉽사리 던지고 싶진 않으니까(웃음).
온로드 테스트
10리터나 확장된 30리터의 거대한 연료탱크의 볼륨감 덕분에 정면에서 보면 위압감이 상당하다. 어쨌든 역사상 가장 크고 무거운 두카티가 되었고 휠베이스도 길어진 탓에 조금 둔해졌을 것으로 예상했다. 주행 전 다리 사이에 감각부터가 확실히 묵직했다. 하지만 주행감각은 배신감이 느껴질 만큼 경쾌했다.
핸들링 감각은 기존의 멀티스트라다보다 더 가볍게 느껴진다. 리어타이어 폭이 170이 되면서 기울임 저항이 줄고 경쾌해진 것이 전체적인 무게와 덩치에서 오는 둔함을 넘어선다. 기울임에 저항감 없이 훌쩍 쓰러지는 타입으로 바뀌었는데 한번 방향을 잡아 돌아가기 시작하면 안정감도 탁월하고 장애물의 등장이나 코너가 깊어지는 구간에서의 라인 수정도 가뿐하다. 이때 자세를 유지시켜주는 코너링 ABS의 어시스트도 아주 탁월하다.
노멀의 멀티스트라다에 비교하면 주행 자체에서 여유로운 느낌과 편안함이 들지만 막상 함께 달리면 결코 느리지 않을 것 같은 묘하게 차분한 주행감각이다. 하지만 호쾌한 가속성능은 여전하다. 어지간히 배짱이 좋지 못하다면 스로틀을 전부 열기 힘들 만큼 파워가 폭발하는 느낌이 살벌하다. 풀 가속에서 프론트 휠은 윌리콘트롤(DWC)이 노면을 떠나지 못하게 붙잡지만 3단까지도 연이어 허공을 가른다. 실제 가속성능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사운드와 진동 그리고 엔진의 토크가 폭발하는 느낌에서 체감되는 속도감은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 두카티 바이크의 매력이자 중독성 있는 필링이다.
기대 이상의 오프로드 성능
그럼 기대하던 오프로드 성능은 어떨까? 길가의 샛길을 발견하곤 주행모드를 엔듀로로 변경, 숲 속 오솔길로 달렸다. 엔듀로 모드에서는 100마력으로 낮아진 출력덕분에 스로틀조작이 부담스럽지 않다. 순정타이어인 스콜피온 트레일2는 온로드 위주의 세팅이지만 흙길에서도 적당한 그립을 만들어준다.
오프로드에서 19인치 프론트 휠로의 변경으로 인한 장점은 바로 드러난다. 군데군데 박힌 돌들이 만드는 요철과 나무뿌리 자갈 등이 즐비하다. 과연 돌파할 수 있을까. 불안감을 떨치며 스로틀을 열면 놀라울 만큼 큰 충격 없이 지나친다. 휠도 휠이지만 이 거대한 바이크를 사뿐사뿐 달리게 해주는 서스펜션 성능에 감탄하게 된다. 최저지상고가 31mm 높아졌는데 어지간해서는 스키드 플레이트도 닿지 않는다.
회전은 매끈하게 상승하지만 리어의 트랙션은 분명하게 느껴지는 점도 오프로드에서 스로틀을 과감하게 열 수 있는 비법이다. 엔듀로 모드의 기본 세팅에서 트랙션콘트롤(DTC)은 개입 정도가 level2 (총 8단계 중)로 낮아지는데도 언덕을 오를 때 타이어가 온로드 위주다 보니 꽤 개입이 잦고 종종 힘이 빠지는 구간이 있다. 하지만 리어가 흐르지 않게 그립을 꾸준히 만들어준다. 산길이 아닌 평지에서 테스트해보니 스로틀을 거칠게 열면 슬립과 그립 사이에서 최대한 트랙션을 확보하며 가속하는 느낌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블록패턴 타이어 (피렐리는 새로운 멀티스트라다 엔듀로를 위해 스콜피온 랠리도 개발했다)를 끼우면 좀 더 즐겁게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중량이 많이 나가는 빅 엔듀로에게 언덕은 올라가는 편이 쉽고 내려오는 게 좀 더 어려운데 이는 무게 때문에 완만한 내리막에서도 속도가 쉬 붙어버리기 때문이다. 엔듀로 모드에서는 리어 브레이크 락을 허용하고 프론트 브레이크는 ABS가 작동하기 때문에 안전하고 쉽게 속도를 컨트롤할 수 있었다. 오프로드에서 고속으로 달리다가도 심적인 부담 없이 급제동할 수 있다는 것에서 전자장비의 발전이 고맙다. 이 밖에도 언덕길에서 출발할 때 도움을 주는 차량 홀드 콘트롤(VHC)은 온로드 뿐만 아니라 발착지가 불안한 오프로드에서 출발할 때 더 유용했다.
좌우의 알루미늄으로 마감된 페어링은 주행 중 나뭇 가지 등에 쉽게 상처가 나는 것을 방지하는데 효과적이다. 튼튼한 엔진가드와 알루미늄 사이드케이스가 가벼운 전도에서 바이크를 보호할 수 있다. 사이드백 역시 지면에 닿는 부분은 플라스틱 범퍼로 보호되고 있다. 디자인에서부터 미리 넘어질 것을 고려하는 점도 기존에 두카티에는 없던 콘셉트라 신선하다.
하지만 그 혈통을 숨길 수없는 법, 아무리 터프해졌어도 여전히 반짝이고 예뻐서 넘어지는 것에 대한 심적인 부담감은 크다. 늘어난 무게 역시 오프로드에서는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균형을 잘 잡아가며 달리면 무게를 넘어서는 출력이 한계를 깨주지만 오프로드에서 바이크를 끌고 돌려야 하는 상황에서 무게의 벽이 확 다가온다. 무게 자체는 경쟁모델들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무게중심이 높은 편이라 기울어짐에 민감하다. 무거워진 이유는 납득하지만 조금만 더 가벼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실전분위기 물씬 풍기는 디자인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멋지다
엔듀로에서 빛을 발하는 DVT
멀티스트라다 엔듀로에 장착된 160마력의 테스타스트레타 11˚ DV T엔진은 슈퍼바이크로부터 물려받은 테스타스트레타 엔진 밸브 오버랩을 11˚로 설정해 토크위주로 세팅하고 가변밸브를 장착해 전 회전영역에서 고르게 토크를 뿜는다. 여기에 대기어를 3T 늘리고 1단 기어비를 새롭게 설정해 저회전 토크의 장점은 더욱 극대화 되었다. 기어 1단에서 2000rpm으로 시속 16km/h (멀티스트라다는 2000rpm에서 20km/h)가 나온다. 덕분에 저속으로 움직일 때에도 반클러치 조작이 필요 없을 만큼 토크가 충분하다. 기존에 없던 끈끈한 토크감이며 무게가 늘어났지만 더 가볍게 움직이는 느낌이 드는 이유다. 이는 온로드에서 저속 콘트롤에도 유리하지만 오프로드에서 요철 등을 만났을 때 아주 큰 장점이 된다.
ENDURO
멀티스트라다 엔듀로는 슬쩍 모양만 바꾸고 이름만 그럴싸하게 붙여놓은 가짜가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오프로드를 잘 달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설계하고 테스트해서 만든 진짜 오프로더였다. 언제부터 두카티가 이렇게 오프로드를 잘 달렸지 싶을 만큼 뛰어난 성능이다. 하루종일 달리는 내내 정말 즐거웠다. 흙길위에서 진정으로 빛나는 바이크였다. 디자인도 단순히 자연 속에 녹아들기보단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묘한 이질감이드는 점이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그렇다면 만약에 오프로드를 타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떨까? 엔듀로라는 이름과는 별개로 오프로드를 달리지 않더라도 여전히 매력적인 바이크다. 실은 상당수의 듀얼퍼퍼스들이 흙길을 한 번도 밟지 않는다. 온로드 주행도 파워풀한 성능을 기반으로 재밌을 뿐 아니라 장거리를 편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두카티의 최신 기술이 모조리 적용되어있다. 게다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실전 분위기 물씬 풍기는 디자인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멋지다. 하지만 한번쯤 오프로드에 도전해보길 바란다. 이 멋진 바이크로 온로드만 달린다는 것은 매력의 반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니까.
credit
글 양현용
사진 이민우/양현용
취재협조 두카티대구 두카티코리아 www.ducati-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