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짓 생각해보면 베트남은 몇몇 개의 이미지로 제한되는 듯하다. 쌀국수, 아오자이, 전통 고깔모자, 베트남전쟁, 하롱베이···. 그리고 하나 더 보태자면 길 위를 복잡하게 가득 채운 수많은 바이크들 쯤 될까. 적어도 베트남 종단 투어를 다녀오기 전까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 말이다.
잠결에 슬쩍 코끝이 달달해진다. 분명 옆 골목 식당에서 퍼지는 음식 냄새일 거다. 하긴 벌써부터 아침 손님으로 복작복작 대겠지. 호텔방의 암막 커튼을 걷어내니 아침 햇살이 방안으로 따스하게 쏟아진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국의 기록적인 한파에 연신 입으로 춥다 소리를 했던 걸 생각해보면 따듯한 남국에 와 있음이 새삼 느껴진다. 한겨울에서 여름으로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만 같은 기분이 묘하다.
도착일
베트남 호찌민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경. 호찌민에서부터 하노이에 이르는 베트남 종단 투어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투어는 베트남을 무대로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랩터라이더스와 함께했다. 인도차이나 반도 동쪽에 좌우로 길게 뻗은 베트남을 남에서 북으로 북상하는 루트, 4박 5일의 일정으로 약 1,800km를 달려야 한다. 사전에 공유된 현지 날씨 정보를 너무 내 멋대로 해석했나 보다. 북상 투어 루트로 시간에 따라 날씨가 제법 쌀쌀해질 것이라는 조언에 늦가을 정도에 대응할 장비와 여벌을 챙겼는데 이거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땀범벅이다.
한국에서 함께 출발한 랩터라이더스 송상윤 대표는 미소를 띠곤 북쪽으로 갈수록 유리할 거라며 숙소에 도착하면 근처에서 반바지를 구비해 놓는 게 어떻겠냐고 귀띔한다. 공항 로비를 나서자 푸근한 몸매의 한 남자가 반기며 마중한다. 랩터라이더스 현지 지사장이자 투어 로드 가이드, 투어팀 통역 및 의사소통, 음식 주문 담당 등 팔방미인 미스터 쿠엣(TRANG VAN QUYET). 그를 따라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그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국인 못잖은 유창한 한국어 실력과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금세 택시 안의 공기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그와 농담조 섞인 대화가 한창일 즈음 어느새 택시는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고 개인정비 시간이 주어졌다. 화물 캐리어에서 짐을 꺼내 투어를 위한 정비를 하고 있자니 이제야 투어가 시작되었구나 하는 기대감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오늘 추가로 도착할 인원은 총 세 명. 한 명은 베트남 중부에서 개인 휴가 중간에 합류하고 다른 두 명은 평일 업무를 다 마친 후 저녁 비행기를 타고 새벽에 도착한다고 한다. 투어 출발 전에만 모일 수 있으면 도착일은 개인 스케줄에 맞춰 비행 편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개인 정비 후에 근처 카페에서 연유를 넣은 베트남식 카페라테 ‘카페 쓰어 다’CAPHE SUA DA 한 잔으로 이국적 풍취를 즐겨본다. 길거리 카페에 앉아 길가에 셀 수 없이 많은 바이크들의 움직임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불규칙한 움직임 속 에서도 나름의 리듬감이 느껴진다. 이거 재미있을 것 같다.

첫째 날
호찌민 – 무이네
아침 식사 시간에 맞춰 모임 장소로 가니 어제 후발대로 도착한 나머지 인원들이 도착해있다. 주로 BMW 모토라드 남서울 지점에서 모임을 갖는다는 이들은 랩터라이더스 송상윤 대표와 이미 절친한 사이로 베트남 투어도 첫 번째가 아닐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다. 함께 인사를 나누고 브리핑을 겸한 아침 식사를 했다. 향긋한 국물 맛이 일품인 베트남 쌀국수가 들어가자 공복감이 스르르 잦아든다. 배도 든든히 했으니 이제는 출발할 차례. 개인 짐을 가지고 나와 바이크에 세팅했다.
이번 투어의 파트너는 두카티 스크램블러 식스티투. 경량 차체와 다루기 쉬운 출력 특성이 특징인 엔트리 클래스 모델로 원형 스크램블러의 데뷔 연도인 1962년에서 이름을 땄다. 장거리 투어에 다소 배기량이 적은 것 아닌가 했지만 베트남 투어 루트의 거리와 도로 환경 등을 고려해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또한 대형 바이크 브랜드인 두카티는 베트남 내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인식이 강해 어딜 가나 관심이 집중되는 반가운 부작용이 있다. 아쉬웠던 점은 수납공간이 없어 개인 짐을 둘러메거나 시트에 결속시켜야 했다는 것 정도. 물어보니 그간 요청이 있어 러기지백 옵션을 빠른 시일 내에 장착할 계획을 갖고 있다 한다. 각자 바이크 세팅을 맞춘 후 길 위로 나선다. 베트남 도로 위의 오토바이들은 마치 살아 있는 물고기 떼 마냥 이리로 모였다 저리로 퍼지기를 반복한다. 그 사이에서 조심스레 첫 발을 뗀다.

첫 목적지는 시내 외곽에 있는 두카티 사이공점. 개인에게 맞는 세팅을 위한 마지막 정비 목적의 방문으로 간단히 핸드 레버 유격이나 미러 각도 등 경정비를 마치고 본격적인 라이딩을 준비한다. 마지막 바이크의 정비가 막 끝나자 하늘이 번쩍하며 꾸르륵댄다. 길 위에 수많은 라이더들이 거의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본다. 여지없이 빗방울이 떨어진다.

우의를 착용하고 비를 빠르게 피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국지성 호우가 많은 편이라 가능한 전략이다. 그때부터 스로틀을 적극적으로 열며 복잡한 도심을 탈출을 시도한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고 하늘은 더 어두워진다. 라이더 간 상호 연결했던 블루투스 무선 통신도 희미하다. 도로엔 물이 가득 들어 차 이건 도로를 내달리는지 강을 도하하는지 모를 지경이다. 이 모든 것이 두려움보다는 모험 의지를 불태우며 새로운 차원의 라이딩 감각을 선사한다. 어드벤처. 그래 어드벤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어딘가로 떠나는 이들의 것이다.

한참을 정신없이 가다 보니 먹구름이 미러 뒤에 있다. 정비를 겸해 로컬 식당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한 후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비는 그친 듯했지만 오전 일정이 지연된 만큼 서둘러야 했다. 대도시인 호찌민을 빠져나오니 도로의 풍경이 달라진다. 쭉 뻗은 도로를 두고 작은 마을들을 지나가며 동네 사람들의 얼굴이 스친다. 눈이 마주칠 때면 눈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그렇게 여러 마을을 지나고 지나 오늘의 목적지인 무이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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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무이네 – 뚜이호아
무이네의 아침은 고요하고 평온했다. 숙소는 창밖으로 해변이 보일 만큼 바다와 가까웠다. 일출 시간은 이미 지난 지 오래지만 아침의 고요함이 남아있는 해안을 얼마간 걸어본다. 햇살은 따듯하고 파도 소리는 청량하다. 아침부터 좋은 기운 가득이다. 숙소 레스토랑에서 호텔식 아침 식사를 하고 출발시간에 맞춰 개인 정비를 한다. 오늘 오전 중으로 무이네의 자랑인 붉은 모레 언덕과 하얀 모래 언덕을 지나가며 오후에는 화강암 지대인 해안선을 따라 목적지인 뚜이호아까지 약 350km를 달릴 예정이다.

숙소를 벗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무이네의 어업 지역인 피싱 빌리지Fishing Village가 눈에 들어온다. 해안선 가득 둥근 바구니처럼 생긴 전통 배가 정박해 있고 개중에는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고기잡이 모습이 보인다. 해안가에선 잡은 생선들을 손질하는 모습과 간단히 늘어선 어물 좌판도 볼 수 있었다. 활기찬 기운과 평화로운 느낌이 좋다.

무이네를 벗어나자 주변 풍경이 사막으로 바뀐다. 붉은 모래 언덕이 저 끝까지 펼쳐져 있다. 햇볕의 열기를 그대로 머금은 아스팔트 도로와 모래밭은 벌써부터 뜨거운 입김을 토해내며 또 다른 라이딩 환경이 펼쳐진다. 마치 사막 같은 모래 언덕 너머로 푸른 해안선이 펼쳐지고 도로가에 심어놓은 야자수가 머리 위로 기분 좋게 그늘을 만든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반복되며 리듬감을 만든다. 엔진 필링과 가벼운 와인딩 로드가 기분을 더욱 업시킨다.
그렇게 라이딩의 즐거움을 만끽하던 중 공안이 우리 일행을 불러 세웠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불러 세우곤 꼬투리를 잡았다. 단속 구간은 속도제한이 갑자기 50km/h가 되는 구간이었던 것. 속도위반은 기본으로 깔고 안전벨트 미착용 따위부터 면허증이나 보험증서, 차량등록증 등 소위 건수 잡을 만한 것들을 면밀히 체크한다. 보통은 뒷돈을 쥐여주면 모른 척하고 보내주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대형 바이크를 탄 외국인 팀인 우리 일행을 잡은 공안은 눈빛부터 달랐다. 녹화 중이던 액션캠을 일일이 체크하고 공안이 단속하는 영상은 모두 삭제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속도위반과 몇몇 꼬투리 잡을 사항 그리고 괘씸죄-우리의 로드 가이드 미스터 쿠엣이 처음에는 외국인 인척 영어와 한국어로 응대했다-를 적용해 베트남 노동자 한 달 치 임금에 준하는 금액을 뒷돈으로 쥐여주고서야 일단락되었다.

뒷맛이 씁쓸했지만 이내 털어버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해 질 녘의 사막같이 펼쳐졌던 붉은 모래 언덕이 어느새 눈밭처럼 새하얗게 변한다. 외마디 탄성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터져 나온다. 저 멀리 이리저리 햇볕을 튕겨내는 푸른 파도를 배경으로 새하얀 사막이 펼쳐진다. 어쩌면 우주의 다른 행성쯤 와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 이국적인 풍경이다. 속도를 줄이고 경치를 구경하며 한동안을 여유롭게 달렸다.
한참을 달리니 빽빽한 열대우림을 지나는 와인딩이 이어진다. 베트남에 이렇게 다양한 풍경이 있다니. 이국적인 풍경이 리드미컬하게 변하며 장거리 투어의 묘미를 더한다. 완만한 업힐 와인딩은 한동안 숲을 가로지르더니 탁 트인 해안절벽으로 향했다. 절벽에 붙어있듯 아슬아슬한 굽잇길을 지나며 해안 절경이 펼쳐진다. 화강암 바위 해안이 둥그렇게 바다를 품은 빙히만VIHN HY BAY이 펼쳐지고 저 멀리 희미하게 수평선이 보인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다 시원하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
이번 투어는 베트남을 무대로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랩터라이더스와 함께했다. 랩터라이더스의 대표적인 투어 프로그램은 종단 투어와 거점 투어로 이뤄진다. 종단 프로그램은 하노이 출발 호찌민 도착 또는 호찌민 출발 하노이 도착의 여정으로 각 투어팀에 맞춰 4박 5일에서 6박 7일까지 세부 일정과 루트를 맞춤 기획한다. 거점 투어는 하노이 또는 호찌민을 거점으로 인근 유명 지역을 되돌아오는 상품이다. 북쪽인 하노이 거점은 산간의 와인딩과 기암절경 그리고 소수 민족 마을 등을 경험할 수 있으며, 남쪽은 남국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해안 코스로 구성된다. 거점 투어 역시 투어 팀에 따라 일정 조율이 가능하다. 기본적인 렌털 대상 차량은 두카티 스크램블러 식스티2로 현재 5대가 준비되며 상황에 따라 추가로 스크램블러 아이콘, 두카티 하이퍼 모타드도 선택할 수 있다. 풀 커버리지 보험을 제공하며 로드가이드도 포함된다. 자세한 사항은 본사 웹사이트 www.raptorriderstour.com 를 참조하거나 전화번호 02-535-2272 로 문의해보자.
Credit
글/사진 이민우 수석기자
취재협조 컴패스코리아(랩터라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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