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역학 끝판왕

PORSCHE 911 GT3

2021년형 포르쉐 911 GT3의 실내에선 환희에 찬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신형 모델이 구형에 비해 엔진 출력이 10마력 높아졌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독일 뉘르부르크링 북쪽 서킷처럼 험난한 트랙에서 엔진 출력이 고작 10마력 높은 차로 구형보다 랩 타임을 17초나 줄였다면 말이 달라진다. 이건 개선이라는 관점을 넘어 혁신에 가까운 변화다. 어쩌면 새로운 레벨로 접어들었다는 의미겠다. 주인공은 이번에 한국 시장에 선보인 포르쉐 911GT3다. 코드네임 992 버전. 아래로는 장거리 여행에 편리함을 강조한 GT3 투어링(국내 미출시), 위로는 좀 더 하드코어한 트랙 머신인 GT3 RS(미래에 출시할 것으로 예상) 사이에서 가장 범용적인 모델이라 설명할 수 있다. 신형 GT3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공기역학의 결정체다.

차 뒤쪽에 자리한 거대한 리어 스포일러는 일명 스완 넥디자인이 사용됐다. 마운트 부위가 백조의 머리 형상처럼 생겼다는 것으로, 밑에서 스포일러를 떠받치는 디자인이 아니라 위에서 잡고 있는 방식으로 고정된다. 이런 디자인을 선택한 것은 더 많은 다운포스를 안정적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대한 리어 스포일러만큼이나 자동차 곳곳에서 기능적 디자인을 발견할 수 있다. 뒷 범퍼 아래 디퓨저는 레이스카 만큼이나 크고 본격적이다. 911 RSR 레이스카를 통해 다년간 검증한 공기역학 디자인이 반영됐다. 자세히 보면 한 조각으로 구성된 것이라 아니라 미세한 단차를 두고 위 아래로 분리해서 와류 억제와 열 배출을 효과적으로 이뤄낸다.

911 기본형에 비해 앞 범퍼 공기 흡입구 면적을 키운 에이프런디자인도 신형의 개성을 부각시킨다. 거대한 공기흡입구 안쪽으로 각종 쿨링 장치가 자리 잡고, 좌우로 브레이크 냉각 성능에 도움을 주는 공기 라인이 자리한다. 범퍼 좌우 끝에 공기 배출 구멍은 차단막 기능을 발휘해 휠 하우스 앞쪽 공기 저항을 줄여준다. 탄소 섬유 소재 보닛에는 두 개의 구멍이 선명하다. 범퍼 정면으로 들어간 공기가 보닛 앞 쪽을 뚫고 위로 솟구치며 정면 공기 저항을 줄여준다. 사이드 스커트는 낮고 매끈하게 뻗었다. 뒷유리창 아래 세로형 그릴 벤트도 사이즈를 키워 엔진을 더 효과적으로 냉각한다. 전체적으로 공기 흐름에 맞춘 매끈한 디자인이다.

GT3의 실내는 스포츠 주행에 즐거움에 최대한 초점을 두고 있다. 운전자 중심이라는 말이 정확하다. 미끄럼 방지 레이스 텍스 소재 스티어링 휠 디자인이 기본이다. 트랙 스크린 기능이 추가된 좌우 디지털 계기반을 달았다. 계기반의 중심은 최대 9,000rpm까지 회전이 표시되는 아날로그 타코미터가 자리한다. 그 좌우에 디지털 디스플레이를 통해 911을 상징하는 5구 계기반을 표현한다. 양쪽 디스플레이는 커스텀 설정을 통해 주행에 꼭 필요한 정보만 보이도록 하는 것도 가능하다.

시승차는 전동으로 움직이는 스포츠 시트가 기본으로 달렸다. 여기서 옵션인 클럽 스포츠 패키지를 선택한다면 탄소섬유 버킷 시트와 롤케이지 장착 같은 업그레이드도 가능하다. 앞 시트 뒤로는 시트가 없고 짐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휑하게 자리한다. 선반처럼 층이 나눠져 있어서 짐을 놓기에 편하다. 하지만 별도의 고정 장치나 수납 장치가 없어서 아쉽다. 벨트나 스트랩 고정 장치를 마련해줘서 짐을 단단하게 고정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 GT3는 911 시리즈 중 두 번째로 높은 상위 트림에 속한다. 하지만 달리기 성능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일부 고급 편의장비가 빠지거나 삭제된다. 그렇다고 해도 크게 불편할 것은 없다.

포르쉐 커뮤니케이션 매니지먼트(PCM)라 불리는 중앙 집중 인터페이스를 통해 차의 각종 기능을 세세하게 설정할 수 있다. 무선 애플 카플레이를 옵션으로 선택하면 블루투스로 스마트폰과 연결해 내비게이션이나 음악 어플리케이션 같은 기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 차고가 낮아서 주차장 진출입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앞 차축에 리프팅 실린더를 달았다는 것도 흥미롭다. 버튼을 누르면 순식간에 차고가 약 40mm 정도 높아진다. 내비게이션에 위치를 저장하면 그 구간을 지날 때 자동적으로 차고가 높아지는 똑똑함도 보여준다.

시동을 걸어 GT3를 깨운다. 우렁차고 걸걸한 포효와 함께 실내에서 스피커를 통해 들리던 음악 소리가 갑자기 움츠린다. 엔진과 배기 소리가 그만큼 크다는 뜻도 있겠지만, 실제론 스피커 베이스를 완전히 삼켜버릴 만큼 걸걸하고 낮은 특유의 엔진 톤이 차 뒤쪽에서 부터 쏟아지기 때문이다. 주행 모드는 스포츠와 트랙이 전부다. 가장 안락한(?) 스포츠 모드에서 조차 서스펜션은 무척 단단해서 노면의 요철을 엉덩이로 흩고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앞 20인치, 뒤 21인치 휠 세팅과 트랙용 미쉐린 컵2타이어로 일상 주행에선 안락함이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속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이 모든 조건들이 시너지를 내면서 운전자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굽이치는 산길에서 속도를 높였다.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부터 즉각적으로 변속기와 스로틀이 반응한다. 차 꽁무니에 얹힌 4.0L 수평대향 6기통 자연흡기 엔진은 최대9,000rpm까지 회전한다. 이때 최고 출력은 510마력(48.0kg·m)을 발휘한다. 제원상 0→시속 100km 가속은 3.7초(크로노플러스, PDK 기준)이다. 가속력은 폭발적이라는 설명이 어울리지 않는다. 짜릿하게, 끝까지 멈추지 않고 뻗어나간다. 엔진이 절정으로 치닫는 소리가 6,000rpm부터 계속 이어진다. 이때 몸 구석구석이 쭈뼛거릴 만큼 황홀한 감각이다. 스펙상 엔진 출력은 대단하지만, 실제 운전자에게 위화감을 주는 스타일이 아니다. 

토크가 아주 일정하게 상승하기 때문에 어떤 구간에서든지 다루기 쉽다. 그저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출력을 즉각적으로 사용할 뿐이다. 매 변속마다 포르쉐 듀얼 클러치변속기(PDK)가 출력을 빠르고 정교하게 이어 붙인다. 레드존 근처에서 다음 단수로 변환이 번개 같이 빠르다. 신형 GT3는 이 부분에서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정밀한 변속 로직과 지능형 오버런 컷 기능이 더해져 미묘한 변속테크닉에 완벽하게 대응한다. 오히려 수동변속기 모델로는 운전자가 감히 흉내 내지 못할 반응 속도와 섀시 균형으로 잠재된 모든 능력을 뽑아낸다.

GT3에 익숙해지면 전자제어 장비의 개입이 줄어드는 트랙 모드에서도 코너로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다. 가속 페달을 밟아 하중을 뒷바퀴에 살짝 실은 상태에서도 원하는 만큼 앞머리가 정확하게 회전한다. 신형은 앞 서스펜션을 더블 위시본 방식으로 바꿨다. 이는 서스펜션 리바운드 개선뿐 아니라 구조적으로 코너에서 안쪽 바퀴가 노면 접지력을 더 높일 수 있다. 실제로 트랙에서 경험해보면 고저차가 큰 지형에서도 언덕을 오르거나 내릴 때 앞바퀴에 접지력이 줄어드는 느낌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있어도 느낄 수 없다. 속도가 높든 낮든 모든 바퀴의 접지력이 풍부하다. GT3의 코너링은 진입부터 탈출까지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다. 머리로 생각한 주행 라인을 따라, 원하는 출력과 반응을 100% 그대로 실현한다. 앞머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회전하면서부터 두려움이 사라진다.

뒤 타이어가 만드는 풍부한 접지력을 활용해 횡G를 버틴다. 클리핑 포인트에서 살짝 욕심을 부리면 엉덩이를 살짝 흔들며 한계 시작점을 곧바로 알린다. 여기서 멈추면 뒷바퀴를 다시 꾹 누르며 코너를 탈출한다. 이런 움직임이 비현실에 가깝다. 기가 차다. 가속과 회전에 이렇게 날카롭게 반응하는 차는 흔하지 한다. 게다가 다루기가 무척 쉽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상적인 움직임이다. 적어도 공도에선 그랬다. 하지만 트랙에서 한계를 쫓는 느낌은 달랐다. 공포스러울 만큼 주행 한계가 높았다. 날카롭게 느껴지는 범위가 단 며칠 만에 익숙해지고 정복할 수준이 아니다. 특히 리어휠 스티어링은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익숙해져야 할 대상이었다. 시속 80km 이상 코너에서 뒷바퀴가 앞바퀴와 같은 방향으로 방향을 틀며 타이어 접지력 한계를 비약적으로 높였다. “진짜 미쳤네!” 트랙에서 GT3와 한참을 씨름한 후에 경직된 근육을 풀며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우연히 된 건 없다. 내 경험상 포르쉐 기술자들은 언제나 원하는 목표가 확실하다. 그 기준은 높고, 선명하다. 신형 GT3도 다르지 않다. 누구의 강요나 경쟁이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 목표를 두고 발전한 제품이다. 그래서 타협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감히 완벽하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2억2000만원이라는 가격표나, 실생활에서 이 차를 타며 느끼는 다양한 불편함? 운전석 관점에선 전혀 상관없다. 오히려 감사할 뿐이다. 내연기관 시대의 종말을 앞둔 지금, 이런 차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행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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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SCHE 911 GT3

레이아웃 뒤 엔진, RWD, 2인승, 쿠페 엔진형식 수평대향 6기통 4.0L 510마력, 48.0kg·m 변속기 듀얼클러치 7단 자동 휠베이스 2,450mm 길이×너비×높이 4,575×1,850×1,290mm 복합연비 6.5km/L CO₂배출량 271g/km 무게 1,475kg 판매가격 2억 2000만 원부터


 김태영(모터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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