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의 눈매로 시대를 내다보다. 스즈키 하야부사

< 나윤석의 식스휠 세상 >

SUZUKI HAYABUSA

“하도 많이 읽어서 닳아가는 잡지를 보면서 매일매일 꿈을 꿨었다. 내 다음 바이크는 무엇으로 결정할까? R1? 하야부사? 결국 내 선택은 하야부사였다.”

2000년을 앞둔 1999년, 세계는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안고 있었다. 21세기에는 세상이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반면 ‘밀레니엄 버그’라는 컴퓨터 버그가 전 세계의 컴퓨터들을 동시에 셧다운시키며 세상이 혼돈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둘 다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을 지금 우리는 알고 있지만.

1999년은 모터사이클 시장도 달아올랐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실체가 있는 열광이었다는 점이었다. 그 주인공은 두모델의 모터사이클이었다. 바로 미들급 체중에 리터급 최강의 파워를 얹어서 경쾌한 핸들링과 극강의 마력 대 중량비를 실현한 YZF-R1과 모터사이클 최고속 경쟁에 종지부를 찍어버린 하야부사 GSX 1300 R이었다.

몇 해 전 이사하면서 잃어버리기 전까지 가장 많이 반복해서 읽었던 모터바이크 잡지 기사도 1999년에 실렸던 R1과 하야부사의 비교 시승기였다. 모터사이클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딸래미가 ‘아빠, 이 책은 왜 여기만 닳았어요?’라고 물어보았을 정도로 계속 읽었던 기사였다. 핑크빛 레드-화이트의 R1도 파격적이었지만 황금색 하야부사가 주었던 충격은 더욱 컸다. 게다가 모터사이클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육감적인 곡선을 테마로 하는 디자인, 그리고 GSX-1300R이라는 모터사이클 공식의 이름 이외에 ‘하야부사’라는 이름을 따로 부여 받은 것 등에서 하야부사는 카타나 이후로 스즈키가 선보인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것을 그냥 느끼게 하였다.

하도 많이 읽어서 닳아가는 잡지를 보면서 매일매일 꿈을 꿨었다. 내 다음 바이크는 무엇으로 결정할까? R1? 하야부사? 결국 내 선택은 하야부사였다. 서른을 갓 넘겼던 젊은이로서 궁극의 스포츠바이크인 R1이 끌리지 않았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미들급 체중에 리터급 출력이라는 R1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조합이었다. 그러나 하야부사는 달랐다. 당시 사상 최고의 출력이었던 175마력과 그보다 더 충격적인 디자인이 주는 존재감으로 하야부사는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만드는 특별한 것을 갖고 있었다. 결국은 바이크는 가슴으로 타는 물건이 아닌가. 물론 내가 극단적 레플리카보다는 스포츠 투어링의 성향을 갖고 있었던 면도 작용했다. 결국 나의 선택은 하야부사였다.

지금은 다소 퇴색했지만 당시 모터사이클의 메카였던 퇴계로에서 새 하야부사를 인수했다. ‘그래, 사람이 타라고 만든 물건인데 나도 탈 수 있어’라고 내 자신을 다독거리며 하야부사와의 첫 출발을 시작했다. 막히는 퇴근길의 퇴계로에서 나는 첫 번째 충격을 만났다. 그것은 하야부사는 공회전 – 1단 기어에서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를 냈던 것. 600cc 미들급과는, 그리고 리터급 레플리카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속도였다. 1단 공회전으로도 앞차를 향하여 돌진하는 하야부사를 제어하기 위하여 클러치를 잡아야만 했다. 그제야 175마력보다 더 무서운 오버리터 하야부사의 거대한 토크를 실감할 수 있었다. 14kg급의 토크는 사실 소형 승용차보다도 높은 토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퇴계로를 벗어나 남산 순환로로 접어들자 팔목을 살짝만 비틀어도 엔진 회전수에 관계없이 앞차들이 자꾸 뒤로 밀려나가는 워프의 광경이 펼쳐졌다. 오르막?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하야부사의 엔진은 저회전부터 물밀듯이 몰려오는 토크로 상당히 다루기가 편했다. 조금 익숙해졌다고 ‘세상에 이렇게 편한 바이크가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주 조금 더 스로틀을 돌리자 나를 내동댕이치고 혼자 달려나가려는 하야부사의 무서움을 만났다. 방심은 금물이었다. 저회전에서도 툴툴거리지 않는 평탄한 토크 커브가 다루기 쉬웠지만 손목 하나로 3단에서도 시속 200km를 넘기는 절대 출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제로 200km가 7초. 방심했다가 당하고 난 뒤에 몸서리를 치는 평탄하지만 무서운 출력이었다.

하지만 하야부사가 주었던 가장 큰 충격은 조종 성능이었다. 하야부사 이전의 초고속 머신이었던 CBR1100XX 슈퍼 블랙버드나 가와사키 ZZR1100는 빠르기는 하지만 코너링과는 거리가 먼 폭주기관차들이었다. 하지만 하야부사는 달랐다. 의외로 다루기 쉬운 조종 특성으로 코너를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달려나갔다. 모터바이크의 R1과의 비교 시승에서 코너링을 다룰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물론 어느 한계 이상의 뱅킹에서는 불현듯 버티는 느낌과 함께 드러나는 무게감으로 방심했다가는 큰 코 다칠 우려가 없지 않았지만 일반 도로 와인딩에서라면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루기 쉬운 하야부사의 특성은 평탄한 출력 곡선과 긴 휠 베이스가 만드는 무자비한 가속성이었다. 지금이야 안티 윌리 컨트롤과 같은 전자 장비가 있지만 당시에는 조금만 스로틀을 거칠게 다루면 고출력 레플리카의 앞바퀴는 번쩍 하늘로 치솟았었다. 하지만 하야부사는 앞바퀴가 들리는 대신 뒷바퀴가 땅을 파고드는 감각으로 트랙션을 더해가면서 맹렬하게 가속을 즐길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정말 빠르게 달리기가 쉬웠다. 하야부사를 베이스로 한 드래그 머신들이 많은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존재감이다. 라이더 본인이 만끽하는 바이크의 디자인은 아무래도 핸들 주변과 계기반의 디자인일 것이다. 스폰지테두리나 딱딱한 플라스틱으로 간소하게 갖추어졌던 대부분의 모터사이클과는 달리 하야부사는 카본 룩의 가니시로 마감된 대형 2연장계기반과 별도의 아날로그 수온계와 연료계, 그리고 중앙의 디지털트립 컴퓨터 등 스포츠 세단을 연상시키는 계기반과 고급스러운 탑브리지 마감으로 완성도를 더했다. 단순히 빠르기만 한 바이크가 아니라 ‘고급, 고성능을 추구한 결과 빠르게도 되었다’라는 느낌의 존재감이 최고였다. 또한 좌우 듀얼 배기에서 뿜어지는 은은한 중저음의 여운은 멀리서도 ‘하야부사가 온다!’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사운드에서도 아우라가 넘쳐났었다.

하지만 새로운 컨셉과 새로운 도전의 대가는 분명 있었다. 하야부사는 완벽한 모델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수차례에 걸친 리콜로도 결국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던 캠 체인 텐셔너의 문제였다. 리콜 처리를 받았음에도 결국 내 하야부사도 엔진이 망가지는 최악의 경우를 당했다. 또한 한두 번의 급제동에도 끓어오르는 제동력의 부족 문제도 고질병이었다. 구매 직후 매시호스로 브레이크 라인으로 교체하고 브레이크 패드를 교환하는 등 브레이크 튜닝을 꾸준히 진행했지만 결국은 전체 시스템에 있었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허벅지를 쓰라리게 만드는 뜨거운 열기는 고성능을 감안하면 참을 수 있었다. 여름이면 조금 더 두꺼운 라이딩 기어를 입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기술적으로는 완성도를 더했지만 2세대 하야부사는 내 기억 속에는 없다. 육감적인 라인을 해친 군더더기들이 즐비한 디자인과 배기량을 더해 출력은 늘었지만 시대의 흐름과는 역행했던 중량의 증가, 그리고 브렘보 캘리퍼를 사용하고도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았던 제동력 등 2세대 하야부사는 1세대를 덧대어 보강하려는 수준에 불과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히 바라건대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하야부사는 원래의 존재감으로 되돌아갔으면 좋겠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는 1대 하야부사의 품격과 시장의 흐름을 새롭게 창조하는 비전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기술적인 완성도를 보완하는 차원이 아닌 깔끔하게 백지에서부터 시작하여 설계의 차원으로부터 완성도를 높이는 원천적인 진화를 기대한다. 삼세번이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되는지도 모른다.

나윤석 칼럼니스트

제품 전략가 출신으로 현재 자동차 칼럼니스트 및 전문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그는 다양한 바이크를 경험한 6 휠러이기도 하다. 현재 자동차, 모터사이클, 스쿠터, 전기 자전거 등의 다양한 교통수단을 소유하고 도심형 개인 모빌리티 솔루션에서 이륜차의 미래를 확인하고 있다.


글 나윤석 칼럼니스트 
사진 양현용, 스즈키 모터사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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