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IUMPH
SCARMBLER 1200 XE
우리가 스크램블러라는 장르에 대한 기대치가 100이라면 브랜드들은 그것을 목표로 만들어 90~95 정도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트라이엄프 스크램블러 1200 XE는 목표부터 기대치 100을 훌쩍 넘긴 게 분명하다. 그 결과물 역시 기대를 한참 넘어서기 때문이다.
지난해 스크램블러 1200이 발표되었을 때 무척 즐거웠다. 요즘 가장 핫한 스크램블러 장르에 어드벤처 바이크 쌈 싸 먹는 오프로드 성능의 조합이라니. 보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구성이다. 작년 트라이엄프 코리아의 공식 출범으로 트라이엄프 바이크가 더 이상 그림의 떡은 아닌 상황이라 더 관심이 갔다. 게다가 지금까지 타본 적 없는 바이크라 더 궁금했다.
본네빌 시리즈 전통을 이어받은 디자인은 탁월하다. 부드러운 곡선들로 구성된 바디에 쇽업소버가 늘씬하게 뻗어있는 모습은 경쾌한 이미지에 더불어 그 존재감을 더한다. 큼직한 프런트 휠이 한눈에도 오프로드 분위기를 느끼게 하며 옛날 모토크로스 실루엣도 엿보이고 과거의 랠리머신 같기도 하다. 이를 트라이엄프는 ‘어드벤처 스크램블러’라고 정의한다. 참 절묘한 이름이다.

높은 완성도
최근의 트라이엄프 바이크들에게서 놀라는 점은 완성도가 무척 높다는 것이다. 차량을 꼼꼼히 살펴보면 부품 하나하나의 완성도가 고르게 평균 이상이다. 특히 손끝에서 느껴지는 질감이 참 좋다. 그래서 이 바이크의 실물을 처음 봤을 때 느낀 솔직한 감정은 ‘흙에서 굴리기 아깝다’였다. 그만큼 높은 감성과 품질을 자랑한다.


시트에 앉으면 의외로 크기가 작게 느껴져서 전장이 2.3미터가 넘는 거대한 바이크로 느껴지지 않는다. 시트 높이는 870mm로 어드벤처 바이크로 생각하면 일반적인 수준이다.(스크램블러 장르 중에서는 가장 높다.)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높이로 아마도 많은 라이더에게 이 바이크를 사는데 가장 큰 관문이 될 것이다.


무게중심은 차체 중앙에 위치하는 느낌, 요즘 바이크처럼 무게중심을 극단적으로 낮춘 것은 아니고 무게중심이 높아 오뚝이처럼 훌쩍훌쩍 쓰러지는 성향도 아니다. 모든 상황에서 균형을 잡기에 수월했다. 차체의 실제 무게는 200kg를 훌쩍 넘기는 묵직한 편이지만 다루기 부담스럽지 않았다. 다만 촬영을 위해 좁은 길에서 유턴해야 하는 일이 많았는데 한 번에 돌리는 게 쉽지 않았다. 조향각은 적당한 편이지만 휠베이스가 상당히 길기 때문에 회전반경도 제법 크다.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작게 느껴지던 이 바이크의 실제 크기가 실감되는 순간이다. 그 이외에는 크기가 불편함을 주진 않았다.

엔진은 경쾌하게 돈다. 다만 토크나 최대 파워는 배기량에서 기대하는 성능에는 약간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클래식 모델임을 다시 상기하면 납득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약 4초가 소요되며 토크가 고르게 퍼져있어 자극적인 면은 적고 컨트롤은 쉬운 편이다.

고사양 파츠로 무장하다
47mm 대구경 프런트 포크는 쇼와 풀어저스터블 타입이며 리어는 피기백 타입의 올린즈 트윈 쇽업소버를 장착했다. “올린즈는 언제나 옳다!”는 주장은 이번에도 적중했다. 오프로드와 온로드 모두에서 노면을 움켜쥐는 반응이 느껴진다. 작동 저항이 적고 묵직한 차체 무게 덕분에 바퀴가 구르는 느낌이 우아하다. 요철 구간에서의 충격 흡수 역시 “아!”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좋다. 전후 250mm의 긴 트래블 덕분에 앞뒤로 움직이는 피칭 모션은 큰 편이다. 그런데 이런 낭창임이 불편하게 다가온 적이 없다. 시종일관 탄탄하면서도 매끄럽게 움직이는 서스펜션 덕분이다. 올린즈를 순정으로 채용하면 아무래도 비용의 상승 요인이 되겠지만 이 투자는 결코 아깝지 않은 피드백을 준다.

브레이크 디스크는 320mm, 캘리퍼는 슈퍼바이크에나 쓰이던 브렘보 M50 모노 블록 캘리퍼다. 처음 이야기했던 ‘기대를 넘어서는 과함’은 여기서도 느껴진다. 근데 역시 아깝지 않다. 제동력이며 답력의 컨트롤 모두 완벽하게 좋기 때문이다.

오프로드 테스트
타이어가 흙을 밟으면서 XE의 진짜 매력이 드러난다. 21인치 프런트 휠과 250mm의 긴 트래블의 서스펜션, 그리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높은 지상고는 험로 주파력을 타사의 스크램블러는 물론 어드벤처 바이크들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이보다 높은 성능을 가진 듀얼퍼퍼스를 꼽아보라면 글쎄? KTM의 어드벤처 R 시리즈나 혼다 아프리카 트윈과 비교해야 하는 수준이라면 감이 올 것이다. 설마 그렇게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조금만 달려보면 결코 허풍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의외로 오프로드 부츠를 신고도 힐그립이 잘 되는 편이라 하체의 홀딩도 쉽다. 핸들바 높이나 너비도 적당해 바이크를 다루기 쉽게 만든다. 주행 중 저회전 토크는 괜찮은 편인데 아이들링 근방은 토크가 희박하다. 앞에 장애물이 있는 험로에서는 클러치가 연결되기 무섭게 시동이 툭 꺼진다. 아이들링에서 살짝만 벗어나도 토크가 충분한데 아이들링에서는 유독 힘이 없다. 지난번에 테스트한 타이거 800도 비슷했던 걸로 보아 브랜드 특성인 것 같다. 그래서 험로에서는 회전수를 미리 살짝 띄우면서 타는 것이 안심이 된다. 모굴 코스처럼 울퉁불퉁한 곳을 지날 때 이 정도면 배가 긁히려나 싶어 긴장하게 되는데 아무런 소리나 저항이 발밑에서 느껴지지 않고 지나친다.

주행모드 중 오프로드 모드의 트랙션 컨트롤은 적당히 미끄러지는 듯 미끄러지지 않으면서 트랙션을 잘 유지시켜주며 누구나 쉽게 오프로드를 달릴 수 있게 해준다. 세팅이 꽤 절묘하다. XE 전용의 오프로드 프로모드는 트랙션 컨트롤과 리어 휠의 ABS를 해지해 더욱 다이내믹한 주행을 할 수 있다. 온로드에서는 조금 아쉽게 느껴졌던 출력도 오프로드에서는 차고 넘친다. 그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신나게 달릴 수 있었다.

그렇게 신나게 달리다 잠시 쉬기 위해 오른쪽 다리를 내렸다가 깜짝 놀랐다. 우측의 머플러가 다리 안쪽에 닿으면 꽤나 뜨끈해서 데일 정도는 아니지만 놀라기는 충분하다. 스크램블러가 그렇지 뭐, 라고 합리화하며 다리를 왼쪽으로만 내리기로 한다. 한 가지 마음이 불편했던 점은 처음에 느꼈던 대로 이 예쁜 바이크를 오프로드에서 굴리기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다른 바이크로 탈 때보다 넘어질까 더 조심했다. 특히 이게 내 거 라면 더욱 더럽히기 싫을 것 같다. 흙이 묻어도 예쁘다는 점은 변함없지만 왠지 바이크에게 더 미안한 느낌이 든다. 물론 차체 곳곳에 넘어질 것을 꼼꼼하게 대비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지만 내 마음은 그랬다.(웃음)

스타일과 성능을 만족시키다
그야말로 2019년 모터사이클 마켓에서 가장 핫한 장르인 클래식과 어드벤처를 완벽하게 하나의 바이크에 담아냈다. 자유분방한 패션과도 어울리며 도심에서 활약하다가 주말에는 진지한 어드벤처 바이크와도 겨룰 수 있는 성능으로 모험을 떠날 수 있다. 이쯤이면 거의 만능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가장 취향을 저격하는 설정이다. 지금까지 경쟁자들이 대중성이라는 선을 긋고 그것에 부합하는 모델을 만드느라 시도하지 못한 것을 트라이엄프는 XE를 통해 제대로 선을 넘었다. 그만큼 XE는 소수를 위하는 모델이 되겠지만 그만큼 동경할만한 모델이기도 하다. 그리고 좀 더 다양한 취향의 사람들을 위한 XC도 준비되어 있다. 더 낮고 만만해서 아마 더 즐겁게 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기대를 벗어난 것은 성능뿐만이 아니다. 국내 출시 가격은 2,380만 원, 가벼운 마음으로 타기에는 꽤나 묵직한 금액이다. 바이크를 타기 전에는 비싸다고 느꼈고 타고 난 뒤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로썬 대체 불가능한 독보적인 영역의 바이크이기 때문이다.
TRIUMPH SCARMBLER 1200 XE
엔진형식 수랭 4스트로크 2기통 보어×스트로크 97.6 × 80(mm) 배기량 1200cc 압축비 11 : 1 최고출력 90hp / 7,400rpm 최대토크 110Nm / 3,950rpm 시동방식 셀프 스타터 연료공급방식 전자제어 연료분사식(FI) 연료탱크용량 16ℓ 변속기 6단 리턴 서스펜션 (F)47mm 텔레스코픽 도립 (R)트윈쇽 스윙암 타이어사이즈 (F)90/90-21 (R)150/70 R17 브레이크 (F)320mm 더블디스크 (R)255mm 싱글디스크 전장×전폭×전고 미발표×905×1,250(mm) 휠 베이스 1,570mm 시트높이 870mm 건조중량 207kg 판매가격 2,380만 원
글 양현용
사진 양현용/신소영
취재협조 트라이엄프코리아 www.triumphmotorcycl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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